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5

작성일 2009-02-03 첨부파일



큰 별이 지다- 야수오 타노 교수를 기리며

2009년 1월 31일은 안과계의 큰 별이 떨어진 날입니다. 큰 별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사카대학병원의 망막전문의이자 안과과장이며 부원장인 야수오 타노(田野 保雄, yasuo tano, 1948-2009) 교수를 말합니다. 그는 최고 망막전문의들의 모임인 줄스-고닝 클럽(club jules-gonin)의 회장이기도 합니다.

2008년 12월 5-6일 부산에서 개최된 제3회 아시아태평양망막학회(apvrs, asia-pacific vitreoretinal society)에서 그 분을 뵈었는데 이렇게 슬픈 소식을 듣고 나니 인상의 무상함이 느껴집니다. 13개 나라에서 온 50명과 국내에서 참가한 50명의 망막전문의들은 진지한 토론의 장을 열었습니다. 그 때 아태망막학회 회장인 타노 교수는 다리가 좀 불편해 보였는데, 지팡이를 짚고, 건강한 웃음을 띄며, 유머 넘치는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그가 처음 홍콩에서, 그 다음에 중국청도에서 아태망막학회를 열었을 때만 해도 규모가 너무 작았는데 이번 부산학회는 매우 성대하고 알찼다고 기뻐했습니다.

2001년 미국눈과학자모임(arvo)에서 처음 그분을 만났습니다. 세브란스 권오웅 교수님의 제자라고 하자 머리를 뒤로 넘긴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 부드러워지며 “앞으로 같이 잘 해 봅시다” 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같이 뭘 잘 해 볼지 몰랐지만 아무튼 그 말은 젊은 병아리의 출발을 축하하는 기분 좋은 말이었습니다. 그 후로 전 세계의 망막의사들이 모이는 미국안과학회에서 백인의사들과 함께 매번 좌장을 맡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아시아계 의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타노라는 이름은 제가 망막전임의로 있던 2000년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황반원공(macular hole)*이란 병을 수술할 때 망막의 가장 안쪽 층인 2μm의 두께의 내경계막을 벗겨야 결과가 좋다는 이론이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고배율 현미경을 통해 눈을 부릅뜨고 봐도 잘 보이지도 않는 얇고 투명한 막을 스승님은 미세집게만으로 잘 벗겨내셨지만 병아리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배운 대로 ‘잡지 않은 듯 잡기를’ 시도하지만 조금만 실수하면 비닐 세 겹 (100μm) 정도 밖에 안 되는 망막을 찢어버리게 된다는 생각에 손은 더 떨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병아리를 위해 준비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이아몬드 가루들이 뿌려진 미세한 면봉 모양의 기구(diamond-dusted membrane scraper)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이것으로 망막의 표면을 가볍게 몇 번 문지르면 얇은 막이 그 아래 신경조직의 손상이 없이 벗겨집니다. 일단 벗겨지면 그 경계면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미세집게로 잡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 기구가 바로 타노 교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 후 타노라는 이름이 붙은 미세한 망막 수술 기구들을 만날 때마다 그 분의 천재성이 놀라웠습니다. 간혹 미국학회에서 뵐 때마다 그 분이 보이면 쫒아가서 스승님의 이름을 팔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타노 기구를 쓰고 있는 유저로서 그 분의 얼굴을 뵐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 후로 안과저널을 볼 때 타노라는 이름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황반하출혈*이 생기면큰 수술 대신에 간단히 c3f8 라는 팽창가스를 눈 속으로 주사한 후 3일 정도 고개를 숙이게 하여 피를 주변부로 이동시키는 치료법에도 그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았더니 타노 교수는 일본안과학회지(jjo)의 편집장이며, 안과 최고의 연구학회지(iovs)와 미국안과학회지(ajo)를 포함하여 10개가 넘는 영문 안과학회지의 편집인이었습니다. 그는 1974년에 첫 논문을 저술한 후 35년간 180편의 영어와 240편의 일본어 리뷰저널을 저술하였고, 총 700편이 넘는 논문의 저자로 참여하였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practical ophthalmology(실용안과학)과 macular surgery(황반수술)를 포함하여 총 70개 이상의 책과 장을 저술 또는 편집하였습니다. 그 외에 vitrectomy (유리체절제술, machemer & aaberg), diabetes and its ocular complications (당뇨병과 합병증, william benson), retinal detachment (망막박리, michels & wilkinson)라는 중요한 책을 번역하여 자국어로 쉽게 망막지식을 습득하도록 하였습니다.

1948년 일본의 효고(hyogo)현에서 태어난 그는 오사카 의대를 졸업 후 1975년에 오사카 대학병원과 마츠야마(matsuyma) 적십자병원에서 전공의를 마쳤습니다. 1977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배스컴파머 눈연구소와 듀크대 눈센터에서 망막펠로우쉽을 마쳤습니다. 그는 최초로 유리체절제술을 성공한 마케머(robert machemer) 교수의 제자 중 하나였으며, 일본에서 유리체절제술을 최초로 시행한 사람들 중에 한명입니다. 1980년에 일본으로 돌아와 오사카대학병원의 망막을 담당하였으며, 1981년에 오사카대학에서 박사학위(d.sc.)를 받았습니다. 그가 안과과장이 된 1991년부터 오사카대학병원 안과의 망막분야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으며,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였습니다. 황반변성에서 약물치료 뿐 아니라 황반의 위치를 바꾸어 주는 황반전위술(macular translocation)을 시행하였습니다. 또한 망막수술 기구를 고안하고 개발하였으며, 2001년 일본 인공시력과제의 책임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당시 유명한 망막전문의들을 대상으로 남긴 유명한 강의 중에 vitreous society(유리체학회)의 19차 연례회에서 했던 pyron lecture가 있습니다. 강의의 제목은 “합병증은 나를 외롭게 만듭니다(complications make me feel lonely)"였습니다. 이 정도의 인물이니까 그런 강의도 했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 연례회는 그가 44세인 - 저 보다 한 살 밖에 많지 않은 - 1992년이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조금은 우울할 수 있는 내용의 경험담이었지만 실명의 기로에 서 있는 환자와 함께 하는 망막의사들만의 외로움을 유머와 함께 잘 전달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2001년) the vitreous society와 the retina research foundation은 그에게 gertrude d. pyron award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는 외로움을 이겨내었을 뿐 아니라 망막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황반원공(macular hole) :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망막의 중심부에 구멍이 생기며 실명을 하게 되는 병으로 노화와 관련이 있음

*황반하출혈(submacular hemorrhage) :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망막의 중심부(황반부) 아래쪽에 피가 고이는 경우로 황반변성과 같은 질병에서 발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