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6

작성일 2009-02-10 첨부파일



황반질환의 아버지 도날드 가스(j donald m gass)

2009년 2월 us news가 선정한 최고의 안과는 미국 동남부 끝자락에 위치한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대학의 배스컴 팔머 눈연구소(bascom palmer eye institute)입니다. 최고의 병원으로 선정된 존스 홉킨스대학병원의 윌머(wilmer) 눈연구소는 벌써 5년째 배스컴 팔머에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마치 암 치료 분야의 최고는 텍사스대학의 엠디 앤더슨 암센터이고, 최고의 정형외과병원은 뉴욕의 특별수술병원(hospital for special surgery)이며, 최고의 호흡기질환병원은 덴버의 국립유대인건강병원(national jewish health)인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베스컴 팔머의 초기 구성원들이 윌머 출신이라는 점은 윌머의 명성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윌머가 아니라 이곳에서 중요한 역사를 썼던 것입니다. 이곳에서 유리체절제술이라는 망막수술을 처음 성공적으로 시행하였고, 에이즈 환자의 급성망막괴사가 헤르페스바이러스 때문임을 밝혔으며, 각막(검은자) 주위 흰자(윤부)를 이식하여 각막의 흉터를 막았고, 미숙아망막병증 치료에 선도적인 역할을 시작하였으니까요.

그러나 이비인후과가 18위, 신경외과가 39위, 노인과가 45위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순위에도 없는 병원에서 배스컴 팔머가 이렇게 최고의 안과병원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최근 그곳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별로 어렵지 않다는 듯 “가스(gass) 때문일 지도 몰라.” 라고 대답하는군요. “그분은 이미 돌아가셨잖아.” “그래도 아직 그곳에는 가스의 채취가 묻어있거든.”

가스(j donald m. gass, 1928-2005)는 근대안과학의 선구자이며, 황반질환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가스의 추모식에서 플린(harry flynn)은 스승에 대해 “그 분이 처음 말했고, 최고를 말했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연자였던 야누찌(lawrence yannuzzi)는 “그가 언급한 질병은 a(apmppe) to z(azoor)* 였다.”고 하였지요. 실제로 망막교과서 구석구석에서 가스라는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망막분야를 굳건히 세운 선구자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1976년부터 무려 7년간이나 미국안과회장을 맡아 당시 유럽에 뒤지던 안과의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렸습니다. 최근 미국 백내장굴절학회(ascrs) 소속 33,000명의 전 세계 안과 의사들은 20세기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10대 안과의사로 가스를 선정하였습니다. 황반연구회(macular society)에서는 가스를 기념하는 메달을 만들어 중요한 연구업적에 그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하였습니다.

가스의 아버지는 테네시 흉부질환병원(middle tennessee chest disease hospital)의 유명한 결핵전문 흉부외과의사(gass rs)였습니다. 가스가 밴더빌트(vanderbilt) 대학을 졸업한 후 해군에서 3년간 근무할 때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밴더빌트 의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후(1957), 아이오와(iowa) 의대에서 인턴을 마치고, 존스 홉킨스대학병원의 윌머 눈연구소에서 전공의과정을 마쳤습니다. 그가 미군병리연구소(armed forces institute of pathology)에서 선택한 안병리 과정은 남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인데, 이것은 그에게 새로운 망막질환들에 대한 계속적인 흥미와 연구소재를 제공하였습니다. 35세(1963년)에 새로 생긴 배스컴 팔머 안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한 후 44세(1972년)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베스컴 팔머에서 자신이 만난 방대한 질병들을 모으고 분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형광안저조영술에서 나타난 영상을 안병리 결과와 비교하며 연구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새로운 형태의 망막질환을 만나면 원시적인 방법으로 끈질기게 매달렸습니다. 그 원시적인 방법이란 망막의 사진을 찍고, 눈의 변화를 오랜 기간에 걸쳐 자세히 관찰하며,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잘 기록해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30대에 발표한 ‘망막색소상피의 장액성 박리(1966)’와 ‘신경상피의 원반형박리의 병리기전(1967)’과 같은 논문은, 60세 이상 실명의 첫 번째 원인인 나이관련황반변성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32년간을 이곳에서 보내는 동안 12개의 책을 공저하였으며, 270개의 심층분석논문(peer-reviewed jouRNAl)을 썼고, 중요한 업적들로 인해 많은 상과 메달을 받았습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질병 중에는 니코틴산 황반병증, 망막과 망막색소상피의 과오종(hamartoma), 맥락막 골종, 산재성 편측 아급성 신경망막염과 같은 질환들이 있습니다. 42세(1970년)에 저술한 ‘황반질환의 입체도감(stereoscopic atlas of macular diseases)'은 황반*을 기술한 최초의 저서이며, 1977, 1987, 1997년에 꾸준히 개정되었고,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 당시 명확한 구분이 되지 않은 채 진단되고 있었던 망막질환들을 입체사진과 함께 명쾌하게 기술하였습니다. “잘 모르는 망막질환이 있으면 환자에게 죄송하다고 말한 후 옆방에 가서 그 책을 펼쳐 놓고 찾아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1995년 그는 밴더빌트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40년 전 자신이 젊었을 때부터 시행했던 원시적인 방법의 연구를 계속하였습니다.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마지막 10년 동안 부드러우면서도 겸손한 망막연구자와 교수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원시적인 연구방법은 배스컴 팔머를 새 세상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배스컴 팔머에서 가스의 향기를 느끼고 온 그 친구도 언젠가 세상을 놀라게 할 큰일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보면 꿈을 꾸게 되고, 꿈은 놀라운 일을 하도록 만들어주니까요.


* 황반(macula) :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망막의 중심점으로 시력을 결정하는 곳

* apmppe(급성후부다발성판모양색소상피증, acute posterior multifocal placoid pigment epitheliopathy, 사진)/ azoor(acute zonal occult outer retinopat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