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8

작성일 2009-02-18 첨부파일



가스(gass)가 5년 동안 관찰한 것은?

세계 최고의 안과 배스컴 팔머 눈연구소(bascom palmer eye institute)에는 망막의 거장 가스(j donald m. gass, 1928-2005)가 있었습니다. 40세(1968)의 가스는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황반원공(macular hole, 사진)의 비밀을 파헤쳐 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유리체절제술이라는 망막수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그가 내린 항우울제와 비타민 처방은 이유 없는 시력의 저하로 우울해지신 어르신들의 고통을 꽤 덜어드렸으며, 일부에서는 시력이 좋아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약물들이 망막의 혈액순환을 개선시켜 황반원공의 진행을 막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는 의미 없는 약을 처방함으로 환자들의 희망을 거짓으로 끌어내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대신 황반원공이란 병의 자연경과를 알게 된다면 새로운 치료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수많은 고민 끝에 이러한 생각을 자신을 믿고 따른 환자들에게 솔직히 설명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기다림 또한 실명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년에 걸쳐 아무 처방 없이 자신들의 눈을 관찰하겠다는 가스의 계획에 참여한 환자가 64명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중에는 유리체절제술이 개발된 이후의 환자들도 있으므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술을 받지 못한 환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환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스는 63명의 환자들 모두 황반부에 구멍이 점점 커지면서 한 눈이 실명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양안 황반원공으로 두 눈이 모두 실명된 경우였습니다. (ophthalmology 2001)

초기의 몇몇 환자들은 5년이 지난 후에 가스에게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선생님, 혹시 좋은 치료방법이 나왔나요? 그런데 가스가 5년간 발견한 것이라고는 황반원공을 그대로 두면 결국 모두 실명으로 진행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마도 가스의 수심어린 얼굴을 본 환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선생님, 아직 치료방법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언젠가 좋은 치료방법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가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진행하여 실명으로 가는 병이라면 반드시 비밀을 풀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가 환자들을 꾸준히 관찰한 후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황반부에 구멍이 생기기까지 어떤 일정한 단계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1단계에서는 황반부의 중심 아래 부분이 살짝 들립니다. 2단계는 들려진 황반부의 위쪽에 바늘 같은 구멍이 생깁니다.

3단계는 황반부의 망막이 분리가 됩니다.

4단계는 황반부 위쪽에 있던 유리체가 떨어져 나갑니다. 그 단계가 두 달 만에도 올 수 있고, 5년에 걸쳐 느리게 올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당시 망막을 검사하는 전문적인 장비들이 부족했던 시절에 이러한 단계를 구분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당시에 발견했던 내용이 최근 빛간섭단층촬영(oct)이라는 최첨단 검사 장비를 통해서 검사를 했을 때도 거의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그 후로 이 질병의 치료시기를 결정하고, 수술방법을 찾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단계를 처음 발표한 것은 그가 환갑(1988) 때였습니다. 그가 5년 동안 발견한 것은 이 병이 결국 실명한다는 사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미궁 속에서 치료의 실마리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질문을 던지던 초기의 환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었던 이 의사야말로 그들이 신뢰해야 할 의사라고. 적어도 자신들의 후대에서 황반원공으로 실명을 하는 일은 없도록 하려면 이런 의사의 계획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비록 내게 실명을 가져올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