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9

작성일 2009-02-20 첨부파일


왜 시력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일까?

망막질환으로 실명의 위험에 놓인 환자들을 언제 수술해야 할 지 결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망막박리처럼 진단 후 빠른 시기에 수술을 해야 시력소실을 막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말입니다. 다른 외과분야와 마찬가지로 수술로 얻을 수 있는 장점과 단점들을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합니다.


황반원공(macular hole)이란 어르신들에게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망막(retina)의 중심부(황반)에 구멍이 생기는 질병으로 심한 시력의 소실을 가져옵니다.

황반원공의 1단계는 시력이 0.5-0.8로 떨어지고, 선이 조금 휘어져 보입니다. 이 때 눈 속을 보면 망막에 특징적으로 지방갈색소(lipofuscin)로 되어 있는 노란점이 보입니다. 이 노란점은 아직 구멍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생길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고등과 같습니다.

이 경고등이 회색빛으로 꺼지면 2단계에 진입한 것입니다. 이때는 시력이 조금 더 떨어집니다. 그러다가 3단계에 들어서면 시력이 0.1-0.2 정도로 매우 감소합니다. 보통 500μm 정도의 구멍이 생기는 단계인데, 세상을 온통 어둠속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입니다.

구멍이 클수록 떨어져 나간 망막세포들이 많으므로 시력이 더 많이 저하됩니다. 저절로 구멍이 막혀서 시력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물며, 90% 이상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진행이 되어 중심시력이 소실됩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보면 보통 1단계에 들어선 경우 40%에서 6개월 이내에 2단계로 넘어가며, 2단계로 넘어온 경우 대부분 3단계까지 자동으로 진행이 됩니다. 3단계까지 온 3명 중 1명은 4단계까지 진행을 하게 되지요.

모든 외과적 질환이 수술 전 상태가 좋을수록 수술 후 결과가 좋은 것처럼 망막질환에서도 수술 전 시력이 좋을수록 수술 결과는 좋습니다. 그렇다면 망막원공을 발견할 경우 단계에 상관없이 빨리 수술을 해야 실명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매우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교과서적인 정답은 조금 다릅니다.


특히 1단계라면 수술을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1단계에서 유리체절제술을 시행한 경우와 하지 않은 경우를 비교해 보았더니 2단계로 넘어가는 비율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3, 4단계(사진)는 시력도 이미 너무 많이 떨어졌고, 지체할 경우 시력이 더 소실될 뿐 아니라 회복도 더 어려워지므로 가능하면 빨리 수술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2단계입니다.

2단계에 들어선 황반원공은 대부분 3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2단계에서 수술을 하자고 하기가 선뜻 내키지 않습니다. 아마도 2단계에서는 아직 시력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르신들도 이 정도의 시력저하는 연세 때문에 그럴 수 있다며 당연시 합니다.

그래도 그런 어르신들을 설득해서 수술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던 병아리 시절에 교과서에는 제 눈을 의심하게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환자의 시력이 0.5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몇 번이나 확인해 보아도 참으로 이상합니다. 2단계는 대부분 3단계로 넘어가 버리고, 넘어가 버리면 수술을 해도 시력의 호전이 많지 않는데 말입니다.

“선생님. 왜 책에는 기다리라고 되어 있습니까? 나빠질 것이 분명한데요. 시력이 좋을 때 수술을 해야 수술 후에 좋은 시력을 유지할 수 있지 않습니까?”

“네 생각이 그렇다면 시력이 아직 좋은 때 일찍 수술을 해라.”

스승님의 답변이 너무 싱거운 것 아닌가요? 저는 지금까지 낑낑거리며 고민하던 문제인데요. 아무튼 제가 홀로서기를 시작할 때 제 신념에 따라 황반원공 2단계를 조금 일찍 수술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시력이 0.5 이상일 때 말입니다. 예상한 대로 수술 후 결과가 좋았습니다만 몇 가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문제는 지금까지 망막수술의 대가들이 경험하고 느꼈던 그런 문제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그것을 ‘두려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의사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그런 두려움 말입니다.

그 중에 하나는 수술 자체에서 올 수 있는, 예상치 못한 합병증입니다. 아무리 수술이 잘 된 것 같아도 결과는 딱 맞아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변수가 있기 때문인데, 우리의 눈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들, 환자의 상태가 상처의 회복에 미치는 보이지 않는 영향들이 그것입니다. 물론 외과의사라면 이러한 것쯤은 예상범위 안에 있는 일이며,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예상 밖의 해결하지 못할 불가피한 합병증은 ‘두려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환자와 의사의 신뢰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황반원공 수술 후 환자는 2주-4주간 엎드려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엎드리는 것은 어르신들께 매우 힘든 부분입니다. 그런데 시력이 좋을 때 수술을 하면 시력의 호전이 별로 많지 않아 만족이 떨어집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수술 전에 많은 시간을 들여 이해시켜 드려야 하며, 수술 후에도 계속되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요즘 의료체계에서 한 사람에게 이렇게 시간을 할애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시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수술을 했다면, 그 결과가 시력이 좋은 상태에서 수술했을 때 보다 좋지 않더라도, 수술 전과 비해 시력의 향상이 많으므로 환자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력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라고 합니다. 마치 적군이 내 앞으로 조금 더 다가올 때까지 사격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랍니다. 그러나 저는 묻고 싶습니다. 그 환자들을 정말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냐구요. 그 질문은 다시 제게 돌아옵니다. 좋은 시력이 있는 눈을 수술해서, 더 나빠질 경우를 생각해 보지 않았냐는 뜻입니다. 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고민을 하다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시던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를 믿는다.” 라고 하셨습니다.

아직도 저는 이 부분에 갈등을 합니다. 정말 환자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인지 말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라는 것 또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믿음을 얻는 한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어르신들이 별로 만족을 하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나 비교적 시력이 좋은 2단계를 잘못 수술할 경우 오히려 수술 후 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시력이 좋을수록 시력의 호전이 많지 않습니다. 시력의 호전이 많지 않더라도 수술을 해야 시력을 유지할 텐데, 힘든 수술을 권유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시력이 나쁠 때 하면 수술 후 시력이 별로 호전이 없어도 그만이고, 호전이 많으면 좋은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