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17

작성일 2009-05-06 첨부파일


21세기 난장이 기술자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서서히 눈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고대 그리스의 ‘난장이(nanos)’들은 ‘아주 작은 기술(nanotechnology)’자들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10억분의 1m (nm) 밖에 되지 않는 이들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대륙을 절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리들에게 속삭입니다.

다행하게도 20세기 말에 난장이 기술자들과 접촉을 시도한 학자들은 이제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2008년 초 미국 mit에서 발행되는 테크놀로지리뷰(technology review)에서는 최근에 개발된 나노기술 분야 중 주목해야 할 5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이것을 살펴보는 것은 과연 난장이 기술자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을 어떻게 의료계에 초대할 것인지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먼저 e-잉크로 만든 전자책입니다. 기존의 전자책과 차이가 있다면 딱딱하지 않고, 두껍지 않으며, 크게도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비닐 파일 바인더와 비슷한 이 책은 둘둘 말고 있다가 읽을 때에 펼쳐서 볼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폴리머비전(polymervision)과 영국의 플라스틱로직(plasticlogic)사가 개발하였습니다. 전자회로를 그리는 공정에서 빛으로 기판에 흔적을 남기는 반도체 제조 공법 대신에 전기가 통하는 나노물질의 잉크로 인쇄하는 방식입니다. 저장용량이 크고 문자와 소리 뿐 아니라 영상까지 표현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투명망토 기술입니다. 우리의 눈은 사물에서 반사되는 빛을 봄으로 그 사물을 인식합니다. 만약 빛을 반사시키지 않는 물질이 있다면 눈으로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빛을 100% 흡수만 한다면 물질은 검게 보입니다. 사물을 아예 보이지 않게 만들려면 빛을 반사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빛이 자유롭게 지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눈 속의 유리체도 빛을 반사시키지 않으면서 들어오는 빛을 그대로 투과시키므로 투명합니다.

듀크대학 팀은 마이크로파를 이용하여 물질을 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스미스(smith) 교수는 입자를 향해 직진하는 마이크로파의 각도를 지속적으로 조금씩 틀어 입자와 부딪히지 않고 반대편으로 가게 만들었으며, 반대편에서 오는 마이크로파 역시 같은 방법으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결국 마이크로파는 입자와 부딪히지 않게 됨으로 입자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기름방울이 붙지 않는 프라이팬입니다. 연잎에는 미세한 돌기들이 있는데 그 사이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물방울의 표면장력이 깨뜨리지 않고 공 형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물방울이 굴러 떨어질 때 먼지도 함께 끌어가서 연잎을 깨끗하게 유지시킵니다. 사진에는 파란 물방울과 연잎 표면의 돌기를 확대한 모습이 있으며 검은 막대는 5μm입니다.

mit의 맥킨리(mckinley) 교수는 이러한 특징을 모방하여 프라이팬의 표면 구조에 미세한 돌기 구조를 만들고 그 사이에 공기가 끼어들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프라이팬 표면이 기름방울과 직접 접촉하는 면적이 줄어들며, 공기분자는 기름방울이 표면으로 퍼지지 않도록 표면장력을 유지하게 도와줍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연잎처럼 ‘자가세척’이 가능한 모니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무한 자기장 반도체입니다. 지난 반세기를 이끌어온 반도체들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지만 조만간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기존의 반도체는 전자 입자의 흐름인 전류를 막았다 통과시켰다 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했습니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아가왈(agarwal) 교수가 개발한 것은 전류 대신 파동을 이루며 전류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전기장을 제어하는 방식입니다.

안티몬, 게르마늄, 텔루리움(tellurium)으로 구성된(ge2sb2te5) 직경 30-50nm, 길이 10μm의 금속막대는 충격을 받으면 전기장을 통과시키던 일정한 분자구조의 결정체에서 전기장을 통과시키지 않는 비결정체로 변합니다. 이 방식은 기존의 플래시 메모리에 비해 전력 소모는 1/10이지만 속도는 1000배입니다.

마지막으로 전기를 만드는 바이러스입니다. mit의 벨처(belcher) 교수는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자외선을 쪼이면 빛을 내는 전기섬유를 만들었습니다. 빛 에너지는 전기에너지로 바꿀 수 있으므로 저장도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먼저 바이러스를 유전공학으로 조작하여 표면에 특정 단백질을 많이 만들게 합니다. 이 단백질은 자외선을 받고 빛을 내는 나노미터의 반도체 물질 수 백 개를 붙이는 데 필요합니다. 바이러스는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일정한 형태로 정렬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압력을 가하면 섬유형태로 변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이러스 섬유는 각종 휴대용 전원장치로 활용할 수 있으며, 휴대용 전자제품의 모양대로 천을 짤 수도 있습니다. 바이러스 섬유로 옷을 만들면 각종 전자 장비를 움직이며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쯤 되면 21세기 난장이 기술자들의 실력을 조금은 감 잡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그들의 움직임은 우리보다 앞서갑니다. 여러 의료기술 분야에 많은 난장이 기술자들이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 망설이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