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20

작성일 2009-06-16 첨부파일


애기장대의 비밀

지난주에 철새들이 먼 곳을 정확히 이동하기 위해 태양, 별자리, 빛의 편광 등을 이용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할 것이라는 내용을 전해드렸습니다. 과학자들은 혹시 눈 속에 있는 어떤 물질이 자기장에 반응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 기전이 맞는지 살펴보기 전에 먼저 애기장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2005년 3월 저명한 과학잡지 '네이처(nature)'는 애기장대(arabidopsis thaliana)를 표지모델로 장식하였습니다. 애기장대는 무, 배추, 브로콜리, 유채와 함께 십자화과에 속하는 식물로 전 세계에 골고루 퍼져있는 잡초입니다. 키가 20 cm로 작고, 재배하기 쉬우며, 한 세대가 한 달 반 정도밖에 안 되어 유전학 연구에 이상적인 식물입니다. 또한 염색체는 5개이며, 그 속에 1억5천7백만 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27,000개의 유전인자가 35,000개의 단백질을 만든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1873년 브라운(alexander braun)이라는 학자가 애기장대의 첫 번째 돌연변이인 이중꽃(double flower, 사진)을 발견한 기록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1907년 애기장대의 염색체를 발견했던 라이바흐(friedrich laibach)가 1943년 x-선을 이용하여 돌연변이 연구를 하기 전까지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750종의 생태형(ecotype)이 발견되면서 좋은 유전자 연구모델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1964년에 애기장대(arabidopsis information service, ais) 신문이 발간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독일의 괴팅겐(gottinget)에서 최초로 국제애기장대학회가 열렸습니다. 1980년부터는 옥수수(maize), 피튜니아(petunia), 담배(tobacco)와 함께 가장 널리 연구되고 있는 식물이 되었지요.

애기장대가 네이처를 장식했던 이유는 미국 인디아나주 퍼듀(purdue)대학 프루이트(robert pruitt) 교수의 실험 때문입니다. 애기장대는 유전자에 결함이 있으면 꽃잎과 잎사귀가 붙어버리는 기형식물이 됩니다. 그는 유전자의 결함이 있는 두 그루의 애기장대를 교배시켰는데, 유전자법칙에 의하여 모두 기형식물이 될 줄 알았으나, 특이하게도 열 그루 중 하나는 정상 애기장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교수는 이렇듯 부모에게 없는 유전자가 나타나는 현상을 컴퓨터의 개념인 ‘캐쉬(cache)'로 설명하였습니다. ‘캐쉬’는 컴퓨터의 cpu에서 처리할 내용이 많아지면 그 일부를 잠시 저장해 두는 곳을 말합니다. 즉, 세포의 어딘가에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치유능력이 저장되어 있어서 이것이 유전자의 결함을 보완해 준다는 것이지요. 애기장대가 유전법칙을 뒤흔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기장대의 비밀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2006년 프랑스 파리대학과 독일 말버그(marburg), 프랑크푸르트(frankfurt) 대학의 공동연구팀은 ‘플란타(planta)’라는 과학잡지에 애기장대가 자기장을 감지한다는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빛을 주고 길렀던 5일된 애기장대에게 자기장을 주었더니 성장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들은 한번은 붉은 빛 아래에서, 한번은 푸른 빛 아래에서 같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특이하게도 푸른빛에서는 자기장이 셀수록 성장이 멈춘 반면에 붉은 빛에서는 전혀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에서 푸른빛은 크립토크롬(cryptochrome)이, 붉은빛은 파이토크롬(phytochrome)이란 단백질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푸른빛에서 자기장의 영향을 받은 애기장대에서 푸른빛을 담당하는 크립토크롬이 자기장을 감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잡초에 불과한 줄 알았던 애기장대의 놀라운 비밀들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애기장대의 비밀은 이제 철새에게 넘겨졌습니다. 남은 일은 철새들의 눈 속에 크립토크롬이란 단백질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