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30

작성일 2009-09-08 첨부파일



영혼의 춤 (ghost dance)

눈물의 행진을 통해 중동부의 인디언들이 서부 사막지대와 대평원으로 쫓겨난 후에도 그들의 생활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말, 영토의 확장과 ‘서부로’의 물결로 인해 인디안 보호지역에 서부로 가는 길과 철도와 동네가 만들어지면서 서부 영화처럼 백인들을 보호하는 미 연방군대와 인디언들의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우스 다코다의 블랙 힐스(black hills)라는 인디안 보호지역에서 커스터(custer)가 이끄는 일단의 백인들이 금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인디언들에게 철수를 명했고, 이에 시욱스(sioux) 부족(사진)이 저항하였습니다. 커스터는 250여명의 백인들을 데리고 이 지역에 쳐들어가 1876년 6월 25일 리틀 빅혼(little bighorn)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수적으로 열세였던 백인들은 몰살당하였습니다.

때마침 미국 독립 백 주년을 축하하려던 동부에 이 소식이 전해졌으며, ‘피에 굶주린 인디언에게 장렬히 전사한 미국 군대였다’는 선정적인 보도에 정계와 시민들은 분노하였습니다. 미국은 미 연방 군대의 절반을 투입하여 ‘시욱스 전쟁’을 벌였습니다. 전설적인 크레이지 홀스(crazy horse), 씨팅 불스(sitting bull), 레드 크라우드(red cloud)와 같은 추장들이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인디언들은 패배하였고, 군대는 여세를 몰아 북서부의 넷츠 펄스(nez perce) 부족, 남서부의 아파치(apache) 부족에 대한 토벌작전을 함께 수행하였습니다.

1888년 원주민 사이에서 ‘영혼의 춤(ghost dance)’이라고 하는 종교의식이 남서부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곧 종말이 닥치고 원주민의 세상이 온다는 것과 백인을 배척하자는 내용에 위험을 느낀 연방군대는 1890년 12월 영향력이 강한 추장 씨팅 불스를 체포하여 죽이고, 다른 부족의 추장 큰 발(big foot)과 350여명의 일행을 사우스 다코다의 운디드 니(wounded knee) 수용소에 입소시켰습니다. 무기를 회수하던 중 한 인디언의 오발사고로 300여명의 인디언들은 무차별 학살되었는데 그것이 1890년 12월 29일이었습니다. 운디드 니는 북미 대륙에서 인디언들의 마지막 저항과 집단 학살의 장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1,900년대에 인디언들이 25만 명으로 줄어들자 세계의 지식인들은 북미 원주민들과 그 문화가 백인문명에 의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도 센서스에 의하면 인디언들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소수민족입니다. 이것은 20세기에 인디언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배려와 인디언 지도자들의 의식 변화가 중요한 몫을 하였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인디언들의 특별한 권리를 허용하고, 자치권을 인정하여 종교와 전통을 지킬 수 있도록 한 뉴 딜(new deal) 정책을 폈으며, 1924년에 이들에게도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원주민에게 많은 변화를 준 것은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전장으로 빠져나간 공장의 인력들을 충원하기 위하여 많은 원주민들이 도시로 옮겨졌으며, 25,000여명의 원주민들이 전쟁에 참여하여 공훈을 세웠습니다. 나바조(navajo) 인디언들의 어휘들을 암호로 사용하여 독일군들이 해독할 수 없게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로 ‘windtalkers’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전쟁 후 많은 원주민들이 도시에 남았으며, 일부는 돌아와서 지도자로 변신하였습니다.

1944년 북미 대륙에서는 처음으로 전국 40여 부족 대표 100여명이 덴버에 모여 ‘미국 인디언 전국회의’(the national congress of american indians, ncai)를 결성하고, 토지회복 소송을 제기하여 정부와 협상을 통해 1970년대에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1961년 시카고 대학교에서 전국 70여 부족 대표 500여명과 카나다와 멕시코의 옵서버들이 참가한 모임에서 ‘정부의 자선행위나 보호주의를 거부하고,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요구한다’는 ‘인디안의 목적 선언’(a declaration of indian purpose)을 채택하였습니다. 1960년대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 때에는 인디언 부족들의 자치정부를 후원하고, 보호지역의 자원들을 개발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1968년 처음으로 나바조(navajo) 부족은 자치대학을 세웠고, 1970년 대에는 인디언 아이들의 87%인 3만 5천명 이상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현대 미국 인디언들 사이에 가장 널리 전파되어 있는 종교는 전통적인 인디언 의식과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이 합쳐진 the native american church입니다. 남서부 지역의 나바조 부족 의술사들은 노래와 주술을 통한 치료행위를 계속하는데, 8월에 몬타나에서 거행되는 crow agency powwow 축제(사진)는 이러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962년에는 싼타페에 아메리칸 인디안 예술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나바조와 푸에블로 부족을 중심으로 은과 터크와이저 등으로 만드는 보석류는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1969년에는 인디언 소설가 모마데이(n. scott momaday)가 2차 세계대전 재향군인 인디언의 경험과 고민을 그린 소설 ‘house made of dawn’으로 퓰리처 상을 탔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였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온갖 시련가운데서도 살아남아서 전통을 되살리면서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신이 선사한 자연을 부모형제로 부르고, 서로 사랑하고, 욕심 없이 필요한 것만을 나누고, 자유롭게 자연을 누비며 살던 그들의 평화롭고도 순수한 마음바탕은 위기에 직면한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