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31

작성일 2009-09-21 첨부파일



별을 쫓는 자

‘태초에 반인 반수의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리석은 짓을 한 탓에 하늘에서 쫓겨났다. 그들은 세 개의 하늘을 지나 마침내 땅에 다다랐다. 땅의 네 신, 즉 청신, 백신, 흑신, 황신이 그들을 보러 왔다. 신들은 손짓 발짓으로 그들을 가르치려 했지만, 어리석은 그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신들은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다만, 흑신은 그들이 너무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것을 일깨우면서, <다른 신들은 나흘 후에 다시 올 것이다. 몸을 깨끗이 하고 기다려라. 우리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의식을 거행할 것이다.> 라고 일러 주었다.

신들은 사슴 가죽과 옥수수 두 개 (흰 것 하나, 노란 것 하나) 등 여러 가지 물건을 가져왔다. 그들은 마술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러자 하얀 옥수수에서는 남자가, 노란 옥수수에서는 여자가 나왔다. 두 사람은 울타리가 쳐진 땅 안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쌍둥이 다섯 쌍을 낳았다. 반음양인 맏이는 자식을 낳을 수 없었지만, 나머지 자식들은 모두 자식을 낳았고, 다시 그 자식들은 신기루 부족 사람들과 결혼하였다. 그 결합에서 현재의 인류가 태어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중에서, 나바조 인디언들의 전설)

나바조 인디언은 미국 원주민들 중 가장 오래 되고, 체로키족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종족입니다. 나바조는 스스로를 ‘din, (사람, human)'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백인 문화에 상당 부분 동화된 상태로 인디언 지역에 분산되어 거주하고 있는 다수의 다른 부족들과는 달리 이들은 60% 이상이 여전히 고향인 남서부에 위치한 포 코너스(four corners) 지역 중앙부의 사막과 척박한 초원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베링 해협을 통해 아시아의 유목민들이 북미대륙으로 건너왔을 것으로 생각되는 나바조 인디언은 처음에 알라스카와 카나다에 살고 있다가 1,000년 전 지금의 유타, 뉴멕시코, 아리조나에 해당되는 미국 남서부 지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들은 푸에블로(pueblo) 인디언을 만나 농사와 길쌈을 배우고, 나무와 진흙으로 만든 호간(hogan)이라는 집을 지으며 반농반목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1,600년 경 스페인 사람들이 미대륙에 정착하자 그들로부터 양과 말을 얻어 목축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스페인 사람에 의해 이들은 나바호(navaho)족으로 알려졌는데, 푸에블로족의 언어로 ‘마른골의 경작지’를 의미하는 ‘navahu'의 스페인어식 표기입니다. 오랜 기간 구전되어온 그들만의 언어는 연사언어학적으로 아타바스카(athapasca)어족의 아파치(apache)어파에 속합니다. 이들 역시 다른 인디언들과 마찬가지로 유럽 이주민 사이에 벌어진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차세계대전에 나바조 인디언들의 언어가 암호로 사용된 후 그들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새롭게 조명되었습니다.

다른 부족들과 무역을 하며 성장한 나바조 인디언들은 2,000년에 약 30만 명 정도가 되었으며,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크고 세련된 인디언 자치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학을 세우고, 그들만의 문화, 그림(처음 사진은 sandpainting), 보석세공, 직조물을 전달하는 이 지역은 매우 인기가 있는 관광자원입니다.

1980년대에 실시된 나바조 인디언들에 대한 건강검진 결과에서 안과적으로 흥미를 끄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들에게 시력의 소실을 가져오는 안질환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망막과 관련된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이란 질환도 있었습니다. 이 병은 시력을 담당하는 망막의 시세포가 선천적인 유전자의 결함으로 서서히 기능이 저하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야맹증으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주변부의 시야가 조금씩 축소되다가 50대가 되면 중심시력도 저하됩니다. 눈 속에 벽지처럼 발라져 있는 망막을 들여다 보면 검은 색소들이 주변부에 생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바조 인디언들의 망막색소변성증의 유병율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보고된 것 중 가장 높아서 1/1,878명입니다. 이 질병의 빈도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약 1/5,000명인 것에 비교하면 약 3배 정도 높습니다. 중국은 1/3,800명이라는 보고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약 만 명 정도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바조 인디언 다음으로 높은 빈도를 보인 것은 이스라엘 중 근친결혼이 많았던 지역으로 1/2,000명 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평균 빈도가 1/4,500명인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것입니다. 반면에 세계에서 망막색소변성이 가장 적은 나라는 스위스이며, 1/7,000명 정도입니다.

이러한 결과에 미루어 과학자들은 망막색소변성이 나바조 인디언들에게 많았던 것은 이들이 물과 식물이 귀한 척박한 땅에서 오랜 세월을 생활해왔던 것과 폐쇄된 종족간의 근친결혼으로 인해 이 질병의 유전자가 계속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바조 인디언들의 발자취가 담긴 신비로운 이야기와 슬픔은 평론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작품, 로저 젤라즈니(roger zelazny)의 '별을 쫓는 자(eye of cat)'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