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34

작성일 2009-10-27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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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막색소변성 연구의 아버지 네틀쉽(nettleship)


망막색소변성(retinitis pigmentosa, rp)은 사람의 가장 흔한 유전성 실명질환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에(1744) 오벨군(ovelgun)이 처음으로 야맹증을 보이는 가족들을 관찰한 후 유전성 질환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그 후 100년이 지나서(1855) 단더(donders)는 이러한 가족들의 눈 검사를 통해 처음으로 망막색소변성이라는 병명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시 50년이 지난 1908년에 네틀쉽(nettleship)은 976 가족들이 포함된 연구에서 망막색소변성의 유전적 양상이 밝혀졌으며, 1914년 그의 제자 어셔(usher)에 의해 확인이 되었습니다.

네틀쉽(edward nettleship, 1845-1913)은 영국 중부 노샘프턴셔주(northamptonshire) 북쪽에 위치한 케터링(keterring)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헨리(henry nettleship)는 사무 변호사(solicitor)였고, 어머니 이사벨라(isabella)는 케터링 문법학교장의 딸이었습니다. 여섯 형제들은 모두 음악, 미술,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소질을 보여, 첫 째와 셋 째 형은 교수가 되었고, 둘 째 형은 동물미술화가가 되었습니다.

네틀쉽은 케터링 문법학교를 다닐 때 자연사 과목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새를 미친 듯이 좋아하였으므로 형들이 그를 ‘새를 품은 네드’(bird-bearing ned)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가족들은 네틀쉽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농촌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그는 17세(1862년)부터 왕립 농과대학(royal agricultural college)과 왕립 수의대학(royal veterinary college)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동시에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와 런던병원에서 의학과를 23세에 수료하였습니다. 다음 해(1868)에 왕립외과대학(royal college of surgeons)의 회원이 되었고, 다시 2년 후 특별연구원이 되었습니다.
의사가 된 후 그는 런던병원에서 매독의 삼징후를 발견한 헛친슨(jonathan hutchinson)의 제자로 일을 하였고, 이 후 무어필드 눈병원(moorfields eye hospital)에서 타이-삭스병(tay-sachs disease)을 발견한 타이(warren tay)와 같이 일을 했습니다.

그가 안과를 전공하기 전 그는 동물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질병과 피부질환을 연구하였는데 24세(1869)에 색소성 두드러기(urticaria pigmentosa)를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런던의 성토마스병원에서 거의 20년을 일을 하는 동안 제자 어셔(CHArles howard usher)와 선천성 실명질환인 망막색소변성(retinitis pigmentosa)과 백색증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선천적 질병에 대한 임상 연구의 높은 기준을 마련하였습니다. ‘생물학적이며 실험적일 것, 수학적이며 통계적일 것, 그리고 가계도로 확인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힘들고 고된 일입니다. 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을 때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지식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그 말을 기꺼이 감수했으며, 그의 열정과 포용력으로 의사들을 설득하며 이끌었습니다.

그의 연구를 통해 망막색소변성은 다양한 유전형태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뛰어난 업적을 하나 고르라면 장 누가레(jean nougaret) 가족의 후손에 대한 가계도를 연구한 것입니다. 이 논문에서 1637년생으로 선천성 야맹증을 가진 장 누가레의 후손 600명을 추적하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연구를 확장하여 10대에 걸쳐 1,800명 이상을 추적하였으며, 60명의 동기 가족에서 129명의 질병을 가진 자녀들이 있음을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거대한 연구 외에도 선천성 백내장을 보인 19 가족의 가계도를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족은 망막색소변성 질병을 같이 가지고 있었는데, 6대에 걸친 275명의 후손들을 추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연구에서 선천성 백내장은 남자 아이에게 더 많이 오며, 아버지를 통해 주로 유전이 된 반면, 망막색소변성은 정상적인 엄마를 통해 불연속적으로 유전되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 외에도 7대에 걸쳐 288명의 후손을 연구한 것, 28개의 백색증 가족의 가계도를 연구한 것 등 셀 수 없이 많은 가계도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는 가계도에서 표시하고 있는 네모(남자)와 동그라미(여자)에서 여성을 위해 동그라미 대신 과거에 온음표로 사용되었던 타원형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50세(1895)에 영국안과학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도시의 빈민학교의 장학사이기도 했는데, 가난한 가족들의 눈 질환을 연구하여 의회의 개혁정책을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생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당신이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 말입니다. (life is always interesting when you have a purpose and live in its fulfilment)”라고 하였습니다.

57세(1902)에 그는 은퇴를 하여 남부에 위치한 하이드헤드(hindhead)에서 연구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67세(1912)에 왕립협회(royal society)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안과협회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네틀쉽 메달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