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39

작성일 2009-11-30 첨부파일


조각뼈 색소(bone-spicule)의 의미

망막색소변성(retinitis pigmentosa)*은 야맹증만으로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눈 속의 특징적인 망막 소견을 본다면 더 정확히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망막의 중간부위에 나타나는 검은 색소침착입니다. 마치 뼈의 골수에 있는 얇고 가는 조각뼈(bone spicule) 모양과 같다고 하여 조각뼈 색소라고 합니다. 조각뼈 색소는 두 눈에서 대칭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조각뼈 색소는 가늘어진 망막혈관과 창백해진 시신경(화살표 머리)과 함께 삼징후(triad)라고 합니다.

어디서 이런 조각뼈 색소들이 나타났을까요? 이 색소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과학자들은 유전자의 문제로 시세포가 서서히 죽게 되면 시세포를 돌보고 있던 색소세포(망막색소상피, retinal pigment epithelium)†들이 제 위치를 이탈하여 망막혈관 주변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검은 색소로 둘러싸인 망막혈관 가지들이 뼈조각 모양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망막색소세포들이 위치를 이동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시세포가 살아있을 때 만들어지는 어떤 물질들이 색소세포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리를 지키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혈관에는 망막색소와 친한 성질이 있음이 알려졌습니다. 망막의 색소세포들이 떠나면 그 뒤쪽에 있던 혈관들(맥락막, choroid)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조각뼈 색소가 형성된 지 불과 1주일 만에 일어나는 것으로 망막색소가 맥락막 혈관들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시세포가 사라지면 색소세포들이 망막혈관으로 이주하고, 색소세포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혈관들마저 없어지는 것입니다. 눈 속에 암실을 만들고 있던 색소세포가 떠난 곳은 점차 회색빛을 띄게 되고, 그 아래에 있는 꼬불꼬불한 맥락막 혈관들이(화살표) 비쳐 보이게 됩니다.

조각뼈 색소는 망막색소변성의 치료에 중요한 표지가 됩니다. 망막색소변성을 치료하기 위해 시세포를 망막에 이식해 줄 때 조각뼈 색소 부위가 이식 위치가 되는 것이지요. 이 때 시세포의 생존을 위해 망막색소상피를 같이 이식합니다.

문제는 그 뒤쪽에서 사라져 버린 혈관입니다. 시세포의 생존을 위해 망막색소상피가 꼭 필요하고, 망막색소상피의 생존을 위해서는 맥락막 혈관이 필요한데 말입니다. 망막색소상피를 이식할 때 맥락막 혈관이 다시 돌아오는 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조각뼈 색소는 20대 이후가 되서야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맹증이 있는 젊은이들은 조각뼈색소가 없다고 이 질병을 제외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시세포에서 빛을 볼 때 발생하는 전기를 측정하는 망막전기생리검사가 필요합니다.

시세포가 사라지자 그곳의 망막색소상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그곳에 있던 맥락막 혈관마저 없어지는 모습은 마치 텅 비어가는 시골을 보는 듯합니다. 그 때 지혜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아빠. 망막색소상피들이 왜 이주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이것은 과학자들도 잘 모른다고 한 부분인데요, 지혜의 설명이 궁금합니다.

“망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시세포잖아요. 그래서 망막색소상피들이 시세포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인데, 시세포가 사라져서 할 일이 없어졌으니까 두 번째로 중요한 혈관을 보호하기 위해 이주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듯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세포가 사라진 부위에 굳이 건강한 망막혈관들이 많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최소한의 혈관을 유지하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닐까요? 시세포가 없다고 망막혈관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망막 전체가 손상을 입으니까 망막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혈관을 유지하면서도 혈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말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시력에 가장 중요한 망막의 중심부 혈관을 더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 망막색소변성(retinitis pigmentosa) : 가장 흔한 선천성 망막질병이며, 진행성 시세포 손상으로 인해 야맹증과 시야축소가 일어나고, 결국 심한 시력저하에 이르는 병

† 망막색소상피(retinal pigment epithelium) : 망막의 가장 아래 쪽에서 시세포를 둘러싸서 보호하고 있는 멜라닌이 풍부한 세포로 눈을 암실로 만들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