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44

작성일 2010-01-25 첨부파일


시신경을 직접 자극해서 보다

쵸코렛과 스머프의 나라 벨기에는 인공 눈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모든 과학자들이 망막의 기능을 대신할 인공망막 칩을 눈 속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을 때 그들은 시신경을 직접 자극하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조금 특이하고도 황당한 생각이지만 눈 속 수술로 오는 합병증을 피할 수 있으니 그럴 듯합니다. 어떻게 벨기에가 이런 기발한 생각을 했을까요?

그런데 과거 50년 전 기구를 타고 성층권까지 올라갔던 스위스의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auguste piccard) 교수가 가장 깊은 바다 속을 들어가려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잠수정 개발을 호소했을 때 모든 나라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선뜻 지원한 나라가 벨기에였습니다.
 
당시 줄에 매달려 내려가는 잠수기구가 전부였던 시절에 이러한 잠수정은 만화와 같은 이야기였거든요. 역시 무모한 도전을 달콤하고 호기심 어린 아이와 같은 눈으로 볼 줄 아는 벨기에인은 달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선천성 망막색소변성이나 후천성 나이관련 황반변성에서 오는 시각장애를 해결할 또 다른 비책이 생기는 것입니다.

벨기에는 시신경을 자극하는 칩을 고안했습니다. 비디오에서 나오는 신호를 감지하는 작은 칩을 시신경에 장착해서 그 정보가 뇌로 전달되게 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개발한 루벤(louvain)가톨릭대학의 베랄트(claude veraart) 교수팀은 많은 전극이 장착된 칩을 망막, 시신경, 심지어는 뇌피질에 직접 장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코일 형태의 시신경 칩은 시신경을 둘러싸서 네 곳에 전극이 닿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외부에 있는 비디오 카메라에서 나온 신호가 귀 뒤에 위치한 전파 안테나를 거쳐 자극을 전달하는 칩으로 전송되고, 그 칩에서 나온 신호가 다시 시신경에 장착된 전극 칩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외부 비디오는 특수한 안경으로 대치하였습니다. 마치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전자총이 화면을 만드는 것처럼 전극 칩이 시신경을 자극하여 뇌로 정보를 전달하는 원리입니다.

베랄트 교수팀은 2년간의 실험을 거쳐 자원한 두 명의 시각장애 환자들에게 시술을 하였습니다. 그 후 환자와 함께 여러 자극을 시험하여, 자극이 있는 시야의 조금씩 다른 픽셀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이는 것이 어떠한 그림을 의미하는지 교육을 받은 후 환자는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중요한 점은 환자가 이러한 픽셀의 변화를 인지한 후 장애물을 인지하기까지 30초 이상이 걸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과에 고무된 영국팀은 새로운 임상시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에이. 아빠! 나는 환자가 비디오처럼 잘 보일 줄 알았단 말이에요. 비디오 안경이라고 했잖아요.”

실제로 이것은 시각장애인들이 장애물을 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시야가 좁고, 픽셀이 거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이 혼자서 외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정말 대단한 것 아닙니까?

“조금 실망스럽긴 하단다. 아마도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게 시작이 아닐까?”

2000년대 초에 이룩한 초기 성공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아직도 현재까지도 되지 못했습니다. 시신경에 코일을 넣는 것 또한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며, 시야가 좁고 픽셀은 아직 거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강화된 의료 윤리법 또한 넘어야 할 산입니다. 그러나 특수한 안경을 통해 보이는 사물을 안테나를 통해 시신경에 장착된 칩에 전달시켜 뇌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기발한 생각은 벨기에의 진가를 보여준 일대의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