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48

작성일 2010-02-23 첨부파일



얼굴 없는 사제 - 보이지 않는 맹점을 발견하다

눈, 시신경, 그리고 뇌를 연구하는 신경안과를 개척한 과학자 중 꼭 알아야 하는 한 명을 꼽으라면 매리엇(edme mariotte, 1620-1684)을 들 수 있습니다.

매리엇은 시야에 있는 맹점의 존재를 발견한 과학자로 로마 가톨릭 사제였습니다.

그를 과학자로 묘사한 그림이 있긴 하지만 진위는 명확하지 않으며, 초상화도 남아있지 않아서 그의 모습을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프랑스의 한림원(french academy) 과학자를 그린 그림(1671)에서 중심에 모자를 쓰고, 안경을 착용한 키 큰 사람이 매리엇이라고 추정됩니다.

이 그림은 당시 안경의 발명을 증명하는 초기 그림이기도 합니다. 매리엇의 왼쪽에는 르부르 궁을 설계한 건축가 클로드 페로(claude perrault, 1613-1688)와 공기의 팽창과 기도의 연구를 주도한 해부학자 장 페크(jean pecquet, 1622-1674)가 있는데, 이 둘은 매리엇의 맹점 이론을 반박하였습니다.

백과사전은 매리엇을 물리학자, 식물학자, 그리고 수학자로 기술하였습니다. 보일(robert boyle)과는 독립적으로 ‘가스의 부피는 압력과 반대’라는 사실을 발견하여, 영어권에서 말하는 ‘보일의 법칙’이 프랑스에서는 ‘매리엇의 법칙’, 폴란드에서는 ‘보일-매리엇의 법칙’으로 불립니다.

그는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과학적 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영광스럽게도 1666년에 창설된 프랑스 과학원(acadmie des sciences)의 창립 멤버 24명에 뽑혔습니다. ‘과학원의 기억과 역사’(histoire et memoires de l'academie, 1733)에 보면 그가 물의 움직임, 색의 성질, 트럼펫에 대한 특성을 연구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의 연구를 모은 책(oeuvres de m. mariotte, 1717)에 있는 마지막 두 보고서는 바람의 기원이나 대포가 발사될 때 산포 패턴과 같은 특이한 내용이었습니다.

그가 56세에 쓴 ‘논리의 소론’(essay of logique, 1676)에 보면 그가 자신의 실험에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기압을 잴 수 있는 리오트병(marriot bottle)을 고안하였고, 청력연구 외에도 빛의 색상에 대한 연구를 시행하였습니다.

르네상스 이전까지는 빛을 감지하는 구조는 망막이 아니라 수정체(lens)라고 생각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처음으로 수정체의 기능을 의심하였지요. 이 후 스위스 해부학자인 플래터(felix plater, 1536-1614)에 의해 초점이 망막에 맺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생각은 샤이너(christopher scheiner, 1575-1650)가 눈의 껍질을 벗기고 망막만을 남겼을 때도 사물을 인지한다는 동물실험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시신경유두부(optic disc)에서 가장 명확한 상을 얻는다는 내용이 받아들여졌던 때입니다.

그는 이 사실을 의심했으며, 시신경유두부의 시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가 48세에 쓴 시력의 새로운 발견(nouvelle decouverte touchant la vue, 1668)이란 책에는 그의 우연한 발견이 계획된 과학적 실험을 통해서 얻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는 해부를 통해 눈에서 시신경이 시작되는 작고 둥근 유두부가 망막의 중심점에서 약간 코쪽이고 위쪽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 후 작은 원과 또 다른 표적(십자)을 그리고, 오른쪽 눈을 가린 후 왼쪽 눈으로 약 30cm 떨어진 거리에서 원을 쳐다보면서 조금씩 앞뒤로 움직이면 좌측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곳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의 실험으로 이것을 확신한 그는 이 발견을 1669년 (49세) histoire de l'academie royale des sciences에 발표하였습니다. 유명한 두 과학자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 전역에 퍼졌고, 그에게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그는 우리 시야에 암점이 있지만 뇌가 느끼지 못하는 이유로 우리의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암점이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또 반대쪽 눈이 이쪽 눈의 암점 부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 후 암점의 변화는 녹내장, 염증, 뇌압상승 등을 진단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그는 64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물리, 기계, 압력, 광학, 식물, 광물, 측량, 실험 방법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얼굴 없는 사제로 매우 열정적인 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