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돔 페리농(dom perignon)은 정말 실명했을까? 1부

작성일 2018-10-16 첨부파일


돔 페리농(dom perignon)은 정말 실명했을까? 1부

다양한 여행담과 양조의 역사를 보면 샴페인을 발명한 프랑스 수도사 돔 페리농(dom perignon, 1638-1715)은 실명하였다고 전해집니다.

'fodor's guide'에 의하면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샴페인의 고장 오빌레(hautvillers)는 돔 페리농의 고향이었으며, 돔 페리농은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시력이 소실된 대신에 발달된 미각과 후각은 그로 하여금 샴페인을 발명하게 하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시몬(andre l simon)의 책 ‘샴페인의 역사 (the history of CHAmpagne)’에는 ‘돔 페리농은 시력을 잃은 후 노년에 이를 때까지 매우 특별한 미각으로 포도주의 맛을 세밀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정말 맞는 것일까요?

페이스(nicholas faith)의 책 ‘샴페인 이야기(the story of CHAmpagne)'에도 돔 페리농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많은 자료들은 돔 페리농이 실명했다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책에는 거품이 나는 샴페인이 돔 페리농 생전에 발명된 것이 아니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리고 돔 페리농의 실명과 관련된 전설과 같은 이야기는 그가 죽은 후 1821년 프랑스 혁명이 수도원까지 휩쓸어버렸을 때 돔 페리농의 마지막 후계자였던 돔 그로사르트(dom grossart)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돔 그로사르트는 프랑스 혁명 후 작은 지방 교구의 사제로 강등이 되었는데, 돔 페리농의 놀라운 업적을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 때 작성된 편지에는 샴페인을 발명한 시각장애인 돔 페리농의 업적이 구구절절이 적혀있으며, 돔 페리농이 일생동안 포도재배학과 포도주양조학 발전에 일조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돔 페리농의 실명에 대한 내용은 그의 다른 글을 포함하여 다른 자료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대중작가들에게 회자되었으며, 호세 프라파(jose frappa)에 의해 유명한 노수도승 그림에 인용되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돔 페리농의 실명이 그로사르트의 편지 외에 다른 역사적 증거나 문서에서 증명이 되지 않았다는 점, 게다가 돔 그로사르트는 돔 페리농이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년 후 사람이라는 점을 들어 그로사르트의 주장은 오해나 과장의 결과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설이 돔 페리농을 샴페인의 아버지로 만들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그가 샴페인을 완성했을 때 정말로 실명상태였을까요, 아니면 실명을 했지만 샴페인을 발명한 이후였을까요? 정말 실명을 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논란이 되고 있는 돔 페리농의 전설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돔 페리농은 1638년 프랑스 북동쪽 생 메네울드(sainte menehould)에서 태어났으며, 법률가인 아버지 피에르 페리농과 어머니 마가리타 리 로이(marguerite le roy)를 두었습니다. 그가 20세 되던 해에 베네딕투스 수도원(benedictine order)에 들어가서 그리스어, 히브리어, 신학, 그리고 다양한 학문을 배웠습니다. 그가 30세가 되자 상파뉴 지방의 오빌레(hautviller) 수도원(사진)에 왔으며, 이 후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그가 이곳에서 사제들의 식생활(procurer)과 포도주(cellarmaster)를 담당하였으므로 샴페인을 연구할 시간은 충분하였습니다. 포도주 판매와 세금이 수도원의 중요한 수입원이었으므로 재정 담당자가 포도원을 돌보는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돔 페리농은 신중하고 빈틈이 없는 사업가로 수도원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히 기록하였으며, 그의 지도하에 수도원은 번영하였습니다.

비록 돔 페리농이 샴페인의 발명가라고 알려졌지만, 기록을 보면 거품이 나는 와인(sparkling wine)은 돔 페리농의 시대 이전에도 존재하였습니다.
 
성경의 구약에 보면 (잠언 23장 31절)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sparkling)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는 내용이 있으며, 신약에도 (마태복음 9장 17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 되느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포도주 부대에 압력을 일으키는 포도주는 거품이 이는 포도주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원전 70-19년을 살았던 로마의 유명한 시인 버질(virgil, publius vergilius maro)의 서사시(book i, 729-743 줄)에도 거품이 이는 포도주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돔 페리농이 샴페인의 발명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거품이 이는 샴페인의 거품을 병 안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후반에 파스퇴르가 곰팡이의 비밀을 밝히기 전까지는 발효의 기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돔 페리농은 발효의 의미를 알았으며, 이것을 거품이 없는 포도주(still wine)에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쌍파뉴(CHAmpagne, 영어식 표기가 샴페인임) 지역에서 늦가을에 따는 포도는 발효를 두 번 합니다. 포도주의 당이 알코올로 대사되기 전에 추운 날씨가 곰팡이의 발효를 막기 때문이지요. 봄이 오면 다시 활성화된 곰팡이 때문에 남아있는 당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 거품으로 발효하게 됩니다. 돔 페리농의 도전은 공중으로 날아가는 이 거품을 어떻게 잡아두느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거품이 아직 남아있는 병을 어떻게 밀봉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그 때까지 프랑스는 올리브 기름에 적신 마를 두른 나무 마개로 막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포도주가 오염이 되지 않게 하였으나 거품까지 제어하지는 못했습니다. 너무 강하면 터지고, 약하면 새어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코르크 마개를 쓰는 두 스페인 사람이 이곳을 방문하게 됩니다. 돔 페리농이 그들에게서 코르크 마개를 얻어 두 번째 발효가 일어나기 전에 병을 막아보았습니다. 그러자 나중에 마개를 딸 때까지 거품이 남아있었던 것이지요. 돔 페리농이 코르크 마개를 통해 샴페인의 비밀을 발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