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개의 안테나와 1억 개의 반딧불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망막은 눈 속에 벽지처럼 발라져 있는 신경막입니다. 두께는 0.15mm 정도 되는데, 비닐 세 겹 정도에 해당하는 두께입니다. 평생 동안 빛을 감지하여 ‘보는 기쁨’을 주고 있는 망막은 참으로 놀라운 조물주의 역작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체를 보면 그 상이 마치 스크린에 비친 영화처럼 망막에 투영되는데, 망막은 이 빛을 전기신호로 바꿉니다.
전기신호는 백만 개의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며 약 30%의 뇌세포가 동원되어 전기신호를 분석해서 우리에게 시각정보를 알려주게 됩니다. 빛을 전기로 바꾸는 기능을 하기 위해서 망막에는 1억 개 정도의 빛을 감지하는 시세포(photoreceptor cell)가 있습니다.
이 시세포에는 두 가지 종류의 세포가 있는데 하나는 긴 나뭇가지와 같이 생긴 간체(rod cell)이고, 다른 하나는 짧고 통통하게 생긴 추체(cone cell)입니다.
간체는 시세포의 95%를 차지하는데 주로 망막의 주변부에 분포하며 밤에 예민하게 어두운 빛을 감지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고, 추체는 5%를 차지하는데 주로 망막중심부에 분포하며 낮에 밝은 빛과 색을 감지하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그러므로 간체에 이상이 있으면 야맹증이 생기며, 추체에 이상이 있으면 색맹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세포가 빛을 감지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제가 전자현미경 사진을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딱 보시면 ‘이게 시세포 중 간체구나’ 라고 금방 아실 것입니다. 그 사진 위쪽에 둥쳐 있는 둥글둥글한 것들은 간체의 신호를 받아서 시신경으로 전달해주는 세포들입니다.
현미경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 가늘고 연약한 세포가 천지창조 첫 날부터 있던 그 빛을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감지하고 있습니다.
이 간체 속에는 로돕신(rhodopsin)이라는 광화학반응 관련 시물질이 있습니다. 로돕신은 레티놀(retinol)이라는 지방분자와 연결된 ‘옵신(opsin)'이라는 단백질이 결합한 것인데, 간체 하나 당 1억 개의 - 또 일억이네요! - 옵신들이 있습니다.
이 옵신들이 빛의 최소단위인 광자(photon)를 한 모금씩 물게 되면 옵신과 레티놀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면서 간체가 전기를 띄게 됩니다.
이 전기적 변화들은 위쪽의 여러 세포들을 통하여 시신경으로 전달됩니다. 사진에 보이는 간체의 끝부분이 조금 두툼한데 이 곳에서 이러한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며, 하루에 10%가 없어지고 새로 생깁니다.
그 이유는 레티놀과 빛에 의한 독성 손상으로부터 평생 간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끊어진 레티놀은 어떻게 되냐구요? 바깥으로 빠져나와 간체와 연결된 다른 세포, 망막색소상피(다음 기회에 설명할 것입니다)에게 잡혔다가 여러 변화를 거쳐 재생된 후 다시 간체로 들어가서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게 도와줍니다. 추체에서도 비슷하지만 로돕신 대신에 아이오돕신(iodopsin)이라는 것이 다릅니다.
이제 눈을 들어서 수채화도 같은 파란 하늘과 초록 산들을 보세요. 그리고 사랑스러운 가족과 동료들을 보세요. 이 때에도 눈 속에서는 연약하지만 충성스러운 1억 개의 안테나가 주인의 기쁨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있음을 기억해주세요. 각각의 안테나는 또 1억 개의 옵신이라는 반딧불들이 햇살을 한 모금씩 끊임없이 물어 날라 오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주세요. 우리의 뇌세포에서는 안테나에서 전달된 전파를 분석하여 이것이 사랑과 행복이라는 정보를 알려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