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10-11 첨부파일
시각을 대신할 제2의 감각수용기 - 메르켈 촉반(Merkel disk)
환자들의 대뇌피질을 전기로 자극해 보았던 캐나다 신경외과의사 와일더 펜필드(Wilder Graves Penfield, 1891-1976)는 뇌가 기능적인 면을 따라 조직화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실험을 통해 신체를 실제 크기가 아니라 숙련된 동작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의 정도에 따라 구분해서 그린 뇌반구 인체모형(homunculus) 난장이를 탄생시켰다. 이 난장이의 오른쪽은 감각영역, 왼쪽은 운동역역인데, 얼굴이나 눈, 치아나 발톱에 비중이 큰 다른 동물들에 비해 혀와 손이 엄청난 크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의 문화적인 특성 즉 말하고, 도구를 만들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등 대부분의 활동이 정교한 손의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오감을 통해 외부 환경과 접촉한다. 이 중 미각과 후각은 화학자극에 반응하며, 시각, 청각, 촉각은 물리자극에 반응한다. 이 감각들 중에 시각을 소실할 경우 시각을 대신할 감각은 무엇이 있을까? 난장이 모형에 의하면 혀, 입술, 손가락을 통한 촉각이 유력하다.
영국의 신경생리학자 셰링턴(Charles Scott Sherrington, 1857-1952)은 외부에서 오는 일반감각을 촉각, 압각, 진동감각, 통각, 온도감각 등 5개로 구분했다. 피부에는 이것을 감지하는 다양한 수용기가 있는데, 촉각은 메르켈 촉반(Merkel's disk), 압각은 파치니 소체(Pacinian corposcule), 진동은 마이스너 소체(Meissner's corpuscle), 통각은 자유신경종말(free nerve ending), 온각은 루피니 소체(Ruffini's corpuscle), 냉각은 크라우제 소체(Krause corpuscle)에서 담당한다고 단순화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체 사이에도 이행형이 있으며, 서로 다양한 감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담당하고 있으므로 여러 수용기들이 다양한 감각들을 구분하는데 협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수용기들 중에서 어떤 것이 시각을 대신할 만한 것일까?
먼저 메르켈 촉반은 손가락 끝 피부표층에 존재하며, 저강도의 촉각과 속도를 감지하고, 지속적인 접촉, 두 점 분별이나 촉각의 위치를 알아낸다.
파치니 소체는 주로 기계적 변위에 반응을 보이며, 압각을 전달한다. 또한 빠른 움직임에 의해 자극되며, 초당 400회의 진동에 민감하다.
마이스너 소체는 촉각소체라고도 하며 털이 없는 손발바닥에 있다. 표면에 수직방향으로 나타난 촉각에 민감하다. 다른 소체들이 지속적인 자극에 대해 무뎌지는 반면 마이스너 소체는 항상 예민하게 촉각을 느낀다.
루피니 소체는 피부 심부에 있는 메르켈 촉반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지속적인 피부변형 상태와 온도를 감지한다.
크라우제 소체는 작은 마이스너 소체라고 볼 수 있으며, 털이 없는 곳에 존재하고, 냉각을 수용한다.
자유신경종말은 통증을 담당하는데, 통증이 대뇌로 전달되는 속도는 초속 0.5~30m 정도로 느린데, 초속 70m의 빠른 촉각이 느린 통증의 인식을 돕고 있다. 즉 뾰족한 것이 닿았을 때 순간적으로 손을 떼는 등의 보호 반응이 그것이다.
이제 피부의 물리적 자극에 대한 수용기들 중에서 어떤 것이 시각을 대신할 수 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 바로 손가락 끝에 존재하는 메르켈 소체가 그것이다. 미세한 점들의 위치를 감지하여 구분하는 능력은 점자를 읽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점자는 손끝으로 읽고 마음으로 쓰는 언어라고 한다. 점자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은 세상을 이해하며, 맞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승강기 안에 점자 버튼처럼 우리 주변에는 점자들이 숨어있다. 한번쯤 손끝으로 만져서 메르켈 촉반을 그들을 마음으로 이해해 보는 것은 시각장애인들이 사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첫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