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10-08 첨부파일
안녕하세요. 순천향대학병원 안과에서 망막을 맡고 있는 이성진입니다. 잠시 휴식을 마치고 다시 눈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게 되었습니다. 소중하면서도 재미있고도 특별한 눈 이야기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작은 딸 미소에게 물어보았지요.
“미소야. 우리는 눈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보고 있지요.”
“그저 보고 있는 것일까?”
“그럼 또 뭐가 있어요?”
질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벤 보버(Ben Bova) 저, ‘빛 이야기(The Story of Light 이한음 역, 웅진닷컴)’ 중 한 대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보는 것 외에도 응시하고, 지켜보고, 바라보고, 고찰하고, 주목하고, 살펴보고, 뚫어지도록 보고, 조사하고, 관찰하고, 훑어보고, 유심히 보고, 꿰뚫어 보고, 구경하고, 노려보고, 쏘아보고, 눈총을 주고, 흘깃거리고, 훔쳐보고, 눈에 무언가를 담고, 그것에서 눈을 떼지 않고, 시선을 고정시키고, 눈앞에 그려보고, 보고 또 본다.』
사실 한글사전에는 이것과 비슷하지만 조금씩 뉘앙스가 다른, 다양한 보기들이 있습니다. ‘관망하고, 관전하고, 관조하고, 겨냥하고, 견습하고, 견학하고, 거들떠보고, 건너다보고, 굽어보고, 깐보고, 깔보고, 낙관하고, 낮추보고, 내다보고, 내립떠보고, 넘겨다보고, 넘보고, 넘어다보고, 눈여겨보고, 눈치를 보고, 되돌아보고, 두고보고, 뒤져보고, 듣보고, 들여다보고, 들춰보고, 뜯어보고, 등한시하고, 만만하게 보고, 맞보고, 멍하니 보고, 멸시하고, 무시하고, 묵인하고, 발아래로 보고, 본숭만숭하고, 본체만체하고, 봐주고, 비관하고, 알아보고, 빗보고, 색안경 끼고 보고, 설보고, 얕보고, 엿보고, 예견하고, 적대시하고, 좌시하고, 직시하고, 질시하고, 째려보고, 찾아보고, 칩떠보고, 흘겨본다.’
잘 모르는 단어에 대해서는 미소에게 따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미소는
“우와. 두 눈으로 이렇게 많은 ‘보기’를 할 수 있는지 몰랐어요.”
그러더니 조금 후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빠! 아빠도 이런 ‘보기’들을 다 해 봤어요?”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중에 반 정도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보기’라는 것과 언제부터인지 내가 이런 ‘보기’들을 거의 다 해 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지요.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에 미소의 혼잣말이 들렸습니다.
“난 이런 ‘보기’들을 다 해보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 우리의 두 눈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지 깨달았다면 이제 어떤 ‘보기’를 할 것인지 결정할 때입니다. 동그란 눈으로 게으른 후배의 꽁무니에 침을 놓는 것은 애교로 봐 줄만 합니다. 그렇지만 진실한 눈빛을 교환하여 친구들의 가슴에 뜨거운 우정의 불꽃을 피운다면, 여유 있는 미소를 눈에 머금고 낯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 준다면, 사랑을 눈에 한껏 담아 가족들에게 마구 퍼 붓는다면, 세상은 참으로 보기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