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88

작성일 2006-10-14 첨부파일


바통 터치


▲ 이성진 교수

망막의 역사는 망막박리(retinal detachment)라는 질병과 싸웠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망막박리로 실명할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세상을 벗어나 광명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300년의 이야기입니다.

각 시대별로 망막박리를 물리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봉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용사들은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으며, 망막박리는 도저히 이기지 못할 거대한 독재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의 달리기는 때로 외롭고 고통스러워 그만 달리기를 멈추었으면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자에게 바통이 넘겨지기까지 오랜 침묵의 세월을 보내야 했을 때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그들은 노력하였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끊임없는 열망은 어둠의 세계와 싸우면서 빛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던 걸출한 주자들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무려 200년간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서 왜 달려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들은 달렸습니다. 준비된 다음 주자들은 또 나타났으며, 바통은 어김없이 그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바통을 받은 주자들은 다시 힘을 내어 앞으로 달려 나갔지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100년 전까지만 해도 망막박리는 난치병도 아닌 불치병으로 백과사전에 등록되었는데 이제는 불치병도 난치병도 아닙니다. 망막박리의 90% 이상이 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정말 그랬는지 하이라이트를 한 번 볼까요? 달리기는 1691년에 시작됩니다.

1691년 매틀-장(maitre-jan)은 우연히 소 눈에서 망막이 박리되어있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1704년 메리(mery)는 우연히 물에 빠져 죽은 고양이의 눈에서 눈 속의 혈관이 보이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1700년 경 눈 속을 볼 수 없었던 시절에 처음으로 눈 속을 보고 놀랐던 이 두 가지 사건은 빛과 어둠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들의 우연한 관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둠의 실체인 망막박리가 처음으로 모습을 들어 낸 순간이기도 하며, 어떻게 보면 그 어둠을 물리칠 고양이의 죽음이 있기도 한 것이지요. 그 죽음은 어둠과 싸우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고양이의 죽음이 눈 속을 볼 수 있는 검안경이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의 죽음으로부터 검안경이 만들기까지는 150년간의 암흑기간을 거쳐야 했지만 말입니다. 마치 선과 악의 대결과 같은 모습으로 빛을 향한 달리기는 시작되었습니다.

1851년 헬름홀츠(helmholtz)가 눈 속을 볼 수 있는 직상검안경(direct ophthalmoscope)을 만들었습니다.
1853년 콕시우스(coccius)는 그것으로 망막의 구멍(tear)을 발견하였습니다.
1870년 드베커(de wecker)는 망막의 구멍이 망막박리의 원인일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1882년 레버(leber)는 유리체가 망막의 구멍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1900년 트란타스(trantas)는 눈을 눌러서(공막 누르기) 눈 속 구석구석을 보았습니다.
1911년 굴스트란트(gullstrand)는 눈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세극등현미경(slit lamp)을 만들었습니다.
1918년 퀘페(koeppe)는 세극등현미경 앞에 평편하고 작은 렌즈를 대어 망막을 보았습니다.


바통을 넘겨받은 이 주자들은 어둠의 실체를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아직도 어둠 속에서 달리고 있었지만 어둠의 실체를 조금씩 의심하게 되면서부터 달리는 목적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이 때까지도 망막박리는 좀처럼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군요. 바통은 다음 주자들에게 다시 넘어갔습니다.


1920년 고닌(gonin)은 망막의 구멍이 망막박리의 원인임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는 망막의 구멍을 전기불(cautery)로 지져서 막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1930년 하임(heim)과 베베(weve)는 전기불을 열(diathermy)로 바꾸었습니다.
1945년 스케이펜스는 공막을 누르면서 간접검안경으로 망막을 입체로 보았습니다.

드디어 이 주자들은 어둠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망막박리가 망막에 생긴 구멍 때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망막의 구멍을 막을 수만 있다면 어둠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의 치료법이 조금은 불완전하였지만 이제 적을 안 이상 싸움은 조금 쉬워졌습니다.

1957년 스케이펜스(schepens)는 눈을 눌러 망막의 구멍을 막는 공막돌륭술(scleral buckling)을 개발하였습니다.
1959년 메이어-슈비케라스(meyer-schwickerath)는 구멍 주변을 레이저 불로 지져서 망막을 붙이는(광응고술, photocoagulation) 방법을 도입하였습니다.
1971년 마케머(machemer)는 구멍을 일으키는 유리체를 제거하는 수술(유리체절제술, vitrectomy)을 개발하였습니다.
1987년 챙(CHAng)은 수술 중에 무거운 물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둠의 세력과 본격적으로 전쟁을 치루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이 되는군요. 이 마지막 전사들은 전쟁 중 자신들의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하여 신무기들을 고안하였습니다. 조금씩 승전보가 울리기 시작했으며, 드디어 어둠을 걷어내고 광명의 세상이 비치기 시작했지요. 그 전쟁의 방법들은 현재 망막전문의들에게 전달되어 세계 각처에서 어둠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아빠. 앞으로도 이어달리기가 계속될까요?”
“망막박리의 수술성공률이 100%가 될 때까지 그럴 것으로 생각한단다.”
“그런데 이어달리기가 쇼트트랙과 같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도 망막 분야의 이어달리기에서 1등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은 한국의 쇼트트랙 잔치였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자리 바꾸기와 힘든 순간에 한 번 더 치고나가는 모습은 쇼트트랙만의 묘미일 것입니다. 또한 이어달리기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10명의 주자들이 교차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지혜는 그 중에 쇼트트랙 이어달리기에서 남녀 선수 모두 금메달을 따는 모습이 좋았나보다 생각했는데, 지혜의 대답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것도 좋겠지만요. 이어달리기 할 때 쇼트트랙과 같은 방식이 좋다고 생각해요. 바통을 전해주면 끝나는 그런 방식 대신에 다음 주자를 마지막으로 힘껏 밀어주는 그런 방식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