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89

작성일 2006-10-22 첨부파일


그림자밟기 놀이 : 포도막염(uveitis)


▲ 이성진 교수
어렸을 때 하던 놀이 중에 ‘그림자밟기 놀이’라는 게 있습니다. 술래가 아이들을 쫓아다니다가 그림자를 밟으면 그 그림자의 주인공이 다시 술래가 되는 놀이이지요. 머리카락만 보여도 술래가 되는 ‘숨바꼭질’이나, 직접 몸에 손을 대야 술래가 되는 ‘술래잡기’와는 조금 다른 독특한 햇빛과 그림자의 놀이입니다. 정오에는 그림자가 짧아져서 그림자밟기가 어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자가 길어져서 술래가 빨리 바뀌게 됩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포도막염(uveitis)이 마치 ‘그림자밟기 놀이’처럼 생각됩니다.

포도막염(uveitis)이란 포도막(uvea)에 생기는 염증을 말합니다. 포도막이란 눈 속에서 망막을 제외한 부분을 말하는데 모두 혈관과 색소가 풍부한 곳입니다. 여기에는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홍채, iris), 눈 속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옹달샘과 렌즈의 두께를 조절하여 초점을 맞추어 주는 장치(모양체, ciliary body), 망막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막(맥락막, choroid)이 있습니다. 포도막염이 생겼다는 것은 곧 눈 속에 염증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눈 속에 염증이 생기면 시력이 떨어지고, 충혈이 되고, 아프고, 눈이 부시며, 날파리증(날파리 같은 검은 점이 눈앞에 보이는 증상, floater)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염증이 심해지면 염증 덩어리들이 검은자(각막, cornea)의 뒷면에 붙어 있게 되며(각막후면침착물, keratic precipitate) 흰 고름(앞방 고름, hypopyon)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눈 속에 생기는 고름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포도막염의 진짜 심각한 점은 실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명에 이르는 눈 질환 중 10%를 포도막염이 차지할 정도입니다. 포도막염 중에서 망막에 혈액을 공급하는 맥락막에 염증이 생길 확률이 17%인데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000명 정도가 포도막염으로 실명할 위기에 처해있다는 뜻입니다. 그나마 포도막염의 75%를 차지하는 홍채염이 실명과 별로 관련되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의외로 포도막염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인구 10만 명당 40명이 포도막염이며, 1년에 10만 명당 15명이 새로 생긴다고 하니까 우리나라 인구를 4,500만 명으로 본다면 18,000명의 환자가 있는 셈이며, 1년에 6,750명의 환자가 새로 생기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포도막(uvea)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저 남태평양의 유비어(uvea)라는 이름을 가진 외로운 섬과 같아서 안과에서 포도막염은 찬밥에 지나지 않습니다. 포도막을 따로 전공한 안과전문의가 국내에 거의 없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왜 포도막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까요? 치료해 봐야 별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냐구요? 글쎄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거기에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포도막염이 눈에 생긴 병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른 원인 질병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포도막염을 일으킨 원인 질병을 찾는 것은 황당한 수수께끼와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다구요? 그럼 예를 들어드리지요.

호흡기내과 선생님에게 폐렴 환자에게 ‘제가 약을 드리긴 하겠지만, 폐렴의 근본 원인은 관절염이니까 정형외과에서 치료하셔야 완전히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요? 그리고 폐렴이 두통, 탈모, 설사 등의 증상과 관련이 있고 때로는 피부반점, 구강염, 정신병, 관절염, 혈뇨와 같은 것들로 폐렴의 원인을 진단해야 한다면 더욱 이상한 일입니다. 또한 폐렴이 ‘한쪽 폐에 생기거나 양쪽에 모두 생길 수 있고, 아무 연령에서나 다 생길 수 있으며, 갑자기 오거나 서서히 올 수도 있고, 한번만 생기거나 재발을 잘 할 수도 있는 병’이라는 뜬 구름 같은 질병이라면 어떤 의사가 그것을 맡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황당한 수수께끼 같은 질환이 바로 포도막염입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모든 내용들이 바로 포도막염에서 같이 볼 수 있는 증상이니까요. 그것뿐이 아닙니다. 기침, 호흡곤란, 코나 목 아픔, 축농증, 구강염, 난청, 귀볼 아픔, 침샘이나 눈물샘 부종과 같은 가벼운 증상 외에 안장코(납작한 코), 생식기궤양, 혈뇨, 고환염, 전신쇄약, 감각이상, 면역저하, 엉치엉덩관절염, 백반증(피부의 흰 반점), 백모증(흰 털), 정신병처럼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심한 증상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정상’도 포도막염의 하나의 증상이고 보니 포도막염은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모르는 물건들까지 일단 무작정 모으고 보는 만물상처럼 보입니다.

즉 그런 만물상 증상들을 일으키는 다른 병이 있을 때 포도막염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포도막염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이며, 황당한 수수께끼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즘과 같은 디지털 세상에 그림자밟기 놀이나 스무고개와 같은 수수께끼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결국 포도막염은 망막의사의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포도막염의 진단을 위해 세극등현미경(slit lamp)의 가는 빛을 눈 속에 비춥니다. 그러면 마치 어두운 방안에 빛을 비출 때 방안에 떠 있는 먼지들을 볼 수 있듯이 눈 속에 떠다니는 염증세포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상) 동공의 가장자리가 그 아래의 수정체와 붙어있는 곳은(화살표) 과거에 있던 포도막염의 흔적이므로 최근에 재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하) 필요하면 형광물질을 팔에 주사한 후 눈 속 사진을 찍어보는데 염증이 망막혈관을 침범하여 물이 새거나 망막이 붓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사진에서도 혈관에서 흰 형광물질이 새어나와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중심부 망막(황반부, macula)에 고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포도막염이 확인된 다음에 시행하는 검사들은 모두 이 염증의 실체를 찾기 위한 ‘그림자밟기 놀이’와 같습니다. 여기에는 혈액, 소변, 전해질, 신장, 간, 폐 x선, 피부, 관절, 임파절, 청력, 중추 신경계, 뇌척수액, 내시경, 항체 및 균 검사 등 모든 과를 망라한 검사가 포함됩니다. 물론 무작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심증을 가지고 말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얻은 조각 단서들은 정말 그림자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정보가 됩니다.

그 조각 단서들을 짜 맞추어 보면 원인을 알 수 있지 않냐구요? 그런데 아무리 조각을 맞추어도 정확히 원인을 알 수 있는 경우는 10%에 불과합니다. 그럼 뭐 하러 그런 검사들을 하냐구요? 그 10% 중에는 실명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원인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명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림자의 실체를 밝히려는 노력을 해야겠지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포도막염이 마치 ‘그림자밟기 놀이’처럼 생각됩니다. 그런데 앞으로 정말 ‘그림자밟기 놀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자만 밟아도 그림자의 주인공이 잡히는 것처럼 눈만 보고도 원인 질병을 잡아낼 수 있는 그런 놀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