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90

작성일 2006-10-29 첨부파일


눈부심의 음모


▲ 이성진 교수
“아빠, 눈 속에 염증이 있으면 왜 눈이 부셔요?”


지난 시간에 눈 속에 생기는 염증인 포도막염(uveitis)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포도막염이란 홍채(iris,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나 모양체(ciliary body, 눈 속에 있는 물을 만드는 옹달샘)나 맥락막(choroid, 망막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층)에 생기는 염증을 말합니다.

제가 포도막염을 ‘그림자밟기 놀이’에 비유하였는데, 그 이유는 포도막염이 다른 부위에 생긴 큰 질병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포도막염이 눈에 생긴 염증이긴 하지만 실체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그림자와 같다고 한 것이지요. 실제로 대부분의 포도막염은 질병의 방어를 담당하는 면역체계의 약화나 손상으로 인해 자신의 몸을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과 상당히 관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포도막염의 치료는 면역기능을 조절해주는 스테로이드(steroid)나 면역 기능을 아주 억제시켜 버리는 싸이클로스포린(cyclosporin)이란 약물을 사용하게 됩니다.

포도막염이 생길 경우 눈이 침침해지고, 충혈이 되며, 뻐근하게 아프고, 눈물이 나며, 눈이 부시고, 눈앞에 검은 날파리(floater, 비문증)가 보이는 증상들이 있습니다. 물론 망막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심해지면 그 외에 직선이 구불거리고, 색이 변해 보이고, 크기도 다르게 보이고, 흑점들이 눈앞에 보이게 됩니다.
그 중에 눈부심(photophobia, photo는 빛(light), phobia는 두려움(fear))이란 빛에 예민하여 눈을 뜨고 있기 어려운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빛을 보기가 싫어서 눈을 돌리거나 감음으로 빛을 피하게 되지요. 그런데 지혜가 포도막염이 있을 때 왜 눈부심이 나타나는지 의아해 하는군요.


“그건 말이지... 염증으로 홍채의 조리개 기능이 떨어져서 그럴 수도 있고, 검은자(각막)가 부어서 빛이 퍼지거나, 눈 속에 떠다니는 염증들에 빛이 섬광처럼 반사되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지혜는 그것을 물어본 게 아니었나봅니다.
“그런 게 아니라요. 침침하고, 아프고, 충혈이 되면 충분할 것 같은데 왜 눈부심이 있어야 하는지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제가 대답했던 내용은 눈부심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라 어려운 과학 용어로 풀어서 설명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군요. 그 때 모든 증상은 병에 대한 경고와 방어기전이라는 어떤 선생님의 가르침이 생각났습니다. 열(fever)은 몸에 온도를 올려 균이 살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고, 기침은 나쁜 균이 기도를 타고 폐로 침범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며, 충혈은 혈관을 크게 만들어 염증과 싸우기 위한 혈액 속의 백혈구를 많이 보내기 위한 것인데 그런 증상들을 무조건 약물로 억제하는 것이 진정한 치료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그런 맥락에서 눈부심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혹시 지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물어보았지요.


“그럼 지혜는 왜 눈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잠을 푹 자라고 그런 게 아닐까요?”
“잠을 푹 자라고?”
“네, 눈을 뜨면 밝은 빛에 눈이 부시도록 해 놓았으니까 눈을 감고 있으라는 것이잖아요. 그게 푹 자라는 의미가 아니고 뭐겠어요.”

흠... 눈부심에 대하여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럴 듯하네요. 환자들이 눈부심을 호소하면 색안경을 권한다는 것 외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혹시나 해서 포도막염 치료에 잠을 푹 자라는 말은 없는지 교과서를 찾아보았습니다. 물론 그런 내용은 없었지요. 오히려 포도막염이 있는 경우 동공을 조여 주는 괄약근이 자극을 받아 동공이 작아진다(축동)는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군요. 이 병이 축동을 유발한다면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이 줄어들므로 눈부심 증상이 적어져야 하는 게 맞는 이치 아닌가요? 그런데 오히려 눈부심 증상이 심해지는군요.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은 이 눈부심이 포도막염에서 중요한 증상 중 하나라면 나름대로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눈부심의 이유가 잠자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근거가 가장 그럴 듯해서 우선 잠에 대해 알아보았지요. 그랬더니 잠에도 이해하기 힘든 묘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평균 하루 24시간 중 1/3(7.4시간)이나 잠을 자는데, 1년이면 112일이고, 80 평생이면 무려 25년이나 되는군요. 이렇게 오래 잠을 자면서 시간을 손해보고 있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도대체 잠자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잠 속에는 질병을 치유하는 힘이 숨어있었습니다. 1998년에 피츠버그대학에서는 잠이 부족하면 면역계 중에서 균을 죽이는 자연살해세포(natural killer cell)가 줄어들면서 병에 잘 걸린다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 잠과 면역에 대한 연구가 진행이 되었는데, 2002년 스피겔(spiegel)과 2003년 랑게(lange)가 드디어 잠이 면역의 효과를 증강시킨다는 것을 여러 백신의 반응을 통해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피로를 충분히 풀 수 있도록 잠을 푹 자면 우리 몸의 호르몬 체계가 안정되면서 그것을 통해 여러 가지 미세한 면역 물질들이(cytokine, murine peptide, t helper cell) 증강되어 감염의 저항성을 높인다는 보고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눈부심에는 조물주의 깊은 뜻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피로와 스트레스로 면역이 떨어져 질병이 생긴 사람들에게 다시 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기위해 밤과 잠을 마련했는데, 아무리 증상을 동원해서 경고를 해도 쉬려고 하지 않으니, 잠을 자게 만들기 위해 눈부심을 추가시킨 것이라고요. 음모론 같은가요? 흠... 음모라고 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렵니다. 지금까지 지고 왔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수고하던 일손을 잠시 멈추고, 인간이 발명한 빛을 다 꺼버리고, 천지창조 첫째 날부터 있었다는 고요한 밤 속에 마음껏 빠져 든다면 치유의 힘이 우리를 편히 쉬게 해 줄 것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