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94

작성일 2006-11-24 첨부파일


세 명에게서 발견한 질병 - 베세트 병(behcet's disease)



▲ 이성진 교수


가끔 환자들을 볼 때 ‘잘 모르는 병’을 만나면 당황스럽습니다. 2.4cm의 작은 눈 속에 있는 100um 밖에 안 되는 얇은 망막에 질병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망막은 넓고 질병은 많습니다. 안과 전문의로 10년 정도 일하면 눈에 대해서는 도사가 될 줄로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책에 있는 내용과 딱 맞지 않는 증상이나 검사결과를 만나게 되면 증례 복습(case review)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참고가 될 만한 망막 책과 최신 의학잡지를 모조리 뒤진 후 여러 의사들과 이 병에 대해 요모조모 따져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책과 잡지에 있는 병들 중에서 가장 비슷한 것을 하나 고른 후 그것이 정답일 것이라고 추정하게 되는 과정일 뿐입니다. 혹시 뭔가를 놓친 것은 아닐까요? 안과를 뒤흔들만한 새로운 병을 말입니다.



1889년 아직 오스만제국(ottoman empire)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조카와 결혼한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사업가였으며 터키 공화국을 창건한 인물(mustafa kemal atatrk)의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그 우울한 기억은 그의 맘속에 항상 남아 신경이 예민했으며, 내성적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문학에 깊이 심취하여 불어, 독어, 라틴어에 능숙하였던 그는 16세에 이스탄불에 있는 굴하네 국군의대(glhane military medical academy)에 들어가서 21세(1910년)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피부와 성병학을 전공하였고 4년 후 전문의가 되었지요. 이 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기 때문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4년간 에디네(edirne)국군병원에서 근무했으며, 전쟁 후 1년간 헝가리와 독일에서 연수를 받았습니다.

터키에 돌아온 그는 개인의원을 차리고 일을 하였습니다. 터키공화국이 세워진 1923년에 환자의 여동생이었던 다바즈(refika davaz)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여인의 아버지가 외교관이었으므로 그는 자연스럽게 상류층으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었던 그 때부터 그는 무서운 균을 만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해에 하스코이 성병병원(hasky venereal diseases hospital)에서 성병균을 연구했으며, 6개월 후에는 이스탄불 의대의 전신인 구라바(guraba) 병원의 피부과 의사로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스탄불 대학으로 바뀐 후 터키인으로서는 최초의 교수가 되었고, 평생 동안 대학에서 연구하였습니다.




35세(1924년)에 그는 한 특별한 한 남자 환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환자는 40년 동안 이스탄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용한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고 합니다. 피부과 의사들은 피부의 붉은 반점들이 그 당시 흔한 매독이나 결핵균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 의사는 이 환자의 눈에 이상이 생기자 ‘잘 모르는 병’이라는 소견서와 함께 안과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안과의사는 그 환자의 눈을 검사한 후 ‘눈앞에 고름이 있는 포도막염’이라고 진단하였는데, 세균이 원인일 것이라고 의심하였지요. 이 환자는 여러 번 홍채에 구멍을 뚫는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환자는 그에게 연결되었고 그는 이 환자를 수년간 관찰하였습니다.


그 환자를 본 지 6년 후인 41세(1930년)에 그는 눈과 입에 염증이 여러 번 재발되었다는 한 여자 환자를 의뢰받았습니다. 안과의사는 그의 눈을 보고 결막염과 공막염으로 진단하였습니다. 검사해보니 피부와 성기에도 반점이 있었는데 이런 병변에서 의심되는 균을 발견하기 위해 피부의 조직을 여러 차례 검사하였지만 균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6년 후인 47세(1936년)에 입속이 헐어서 치과를 찾은 한 남자가 열과 복통이 있어서 그에게 의뢰되었습니다. 검사해보니 등에는 여드름 같은 것들이 있었으며, 성기에는 궤양이 있었고, 눈부심의 증상을 호소하였습니다. 입 속을 헐게 만든 균이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균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 번째 환자를 보는 순간 12년 전과 6년 전에 진료를 받았던 두 남녀를 떠올렸습니다. 혹시 이런 증상들이 서로 관련된 하나의 병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양한 증상들을 나열해 보았더니 그 중에는 겹치는 증상들이 있었습니다. 입과 피부와 성기에 염증이 생기는 것! 그는 이 염증들을 구강염, 피부병, 성병처럼 따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하나의 병 때문일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는 세 명에 대하여 1936년 피부과와 성병학 잡지(archives of dermatology and venereal disease)에 기술한 후 입과 성기와 피부에 염증이 생기는 새로운 병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다음 해 그는 파리의 피부과 학회에서 이 질환을 언급하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무모한 것처럼 보입니다. 6년 간격으로 단 세 명의 환자를 보았을 뿐인데 새로운 병이라고 하다니 말입니다. 이 염증들은 서로 관련이 있는 새로운 병이라고 생각한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그러나 그 이후(1938년)에 벨기에와 이탈리아 의사들도 세 가지 염증을 가진 새로운 환자들을 보았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럽의 의사들은 새로운 질병의 출현으로 술렁이기 시작했으며, 안과 의사들은 그것이 새로운 병이라고 인정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피부과 의사들은 도저히 그 병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 환자들의 피부병은 흔히 볼 수 있는 피부병의 일종이었으며, 피부병과 다른 여러 곳의 염증을 연관시키기가 상식적으로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질환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동안 호주, 미국, 일본, 덴마크, 스위스,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예가 보고되었습니다. 이런 보고들을 통해 인류는 새로운 질병과 맞닥뜨리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게 되었지요. 그가 발표한 지 11년 후인 1947년에 제네바 국제학회의 쭈리히의 미쉬너(mischner) 교수는 이 병을 새로운 병으로 인정하여 그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쯤 되면 그가 누군지 아시겠지요? 바로 터키의 피부과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훌루시 베세트(hulusi behcet)입니다.

그는 담배를 많이 피웠고, 불면증에도 시달렸으며, 장염과 가슴통증으로 고생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나기(1948년, 59세) 전에 그가 발견한 병이 세상에서 새로운 ‘베세트 병’(behcet's disease)임을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1975년에 그는 과학상(tubitak scientific award)를 받았습니다. 국제 학회에서 ‘한국-터키 베세트 날’(korea-turkey behcet days)이 이벤트로 지정되기도 하였습니다.(좌하의 포스터) 그는 1921년과 1940년 사이의 20년간 126개의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2개월에 평균 한편의 논문을 쓴 것입니다. 1980년 그의 제자였던 알리 알반(ali arban)은 그를 기념하여 우표를 만들었습니다. 1982년에 터키는 그에게 의학상을 수여하였고, 1996년에는 그를 기념하는 은화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12년에 걸쳐 단 세 명의 환자를 보고 새로운 질병을 발견하여 의학계에 선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질병에 대한 호기심, 세밀한 관찰력, 그리고 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명을 유발할 수 있는 이 ‘베세트 병’은 과거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의학계 각 분야의 연구과제로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