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97

작성일 2006-12-15 첨부파일


노아의 저주, 신의 축복


▲ 이성진 교수
피부의 흰 반점(vitiligo, 백반증), 탈모증(alopecia), 흰 털(poliosis, 백모증)과 같은 피부 증상과 뇌막자극증상이나 청력장애와 같은 신경증상이 동반된 양쪽 눈 속 염증(포도막염, uveitis)을 보크트-고야나기-하라다 증후군(vogt-koyanagi-harada syndrome)이라고 합니다. 피부, 귀, 뇌막이 눈의 문제와 하나로 연결된 것 같다고 스위스의 보크트가 1906년 처음 보고한 이후 일본의 고야나기와 하라다가 20년에 걸쳐 발견한 질환이지요. 처음엔 감기와 같은 증상으로 시작되는데, 조금 지나면 피부증상과 함께 눈 속 염증이 생기면서 눈부심과 통증을 동반한 시력저하가 오게 됩니다.

아직도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학자들은 이 병이 자신의 일부를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기는군요. 이 질환이 피부, 귀, 뇌막 그리고 눈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였는데, 별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들 장기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동안 전 세계에서 보고되었던 환자들을 살펴보니 그들은 대개 20-50세 사이였고, 여자들이 좀 더 많았습니다. 일본에서는 포도막염 환자의 12명 중 한 명 정도가 이 질환이라고 하는군요. 환자들은 주로 동양인, 흑인, 스페인 사람, 아메리카 인디언, 아시아 인디언들이었는데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군요. 그것은 바로 백인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 병은 주로 유색인종만을 공격하는 병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아주 예리하신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로 이 질환은 피부 속에 있는 자신의 검은 색소(사진) 즉 멜라닌(melanin)을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병이니까요.

동물과 식물에 존재하는 검은 색소 멜라닌(melanin)은 직경 7m 정도의 멜라닌세포(melanocyte)에서 만들어집니다. 주로 피부의 바깥층(표피, epidermis)에 위치하여 피부의 색을 결정하고 있지요. 피부에는 1mm2 당 1,000-2,000개의 멜라닌세포가 있는데 이것은 피부에 있는 세포의 5-10%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흑인과 백인의 차이는 멜라닌세포의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활발히 멜라닌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흑인의 멜라닌세포는 굳이 태양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활발하게 멜라닌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백인과 일부 아시아인들은 멜라닌을 만들기 위해서 햇빛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흑인도 햇빛이 있다면 더욱 활발하게 멜라닌을 만들게 되므로 태양은 멜라닌이 존재하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햇빛 속에 있는 자외선은 세포의 dna를 파괴시켜 암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햇빛없이 살지 못하는 인간은 어떻게 방어를 해야 할까요? 그 비밀은 바로 멜라닌에 있습니다. 햇빛이 피부에 닿아서 세포의 dna가 파괴되면 손상된 dna에서 나온 조각들(ptpt, thymidine dinucleotides)이 멜라닌자극호르몬(melanocyte-stimulating hormone, msh) 분비를 자극합니다. 이 호르몬은 멜라닌세포로 하여금 타이로신(tyrosine)이라는 아미노산(aminoacid)을 dopa(dihydroxyphenylalanine)라는 물질로 바꾼 후 다시 멜라닌으로 전환시켜 줍니다.

멜라닌은 크게 두 종류의 형태가 있는데 갈색에서 검은 색을 띄는 유멜라닌(eumelanin)과 노란색에서 붉은 색을 띄는 페오멜라닌(pheomelanin)입니다. 두 멜라닌 생성은 멜라닌자극호르몬 또는 아고우티 신호단백질(agouti signaling protein)과 멜라닌세포 표면의 mc1r(melanocortin 1 receptor)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즉 멜라닌자극호르몬이 mc1r에 결합하면 유멜라닌이, 아고우티 신호단백질이 결합하면 페오멜라닌이 형성되는 식입니다. 햇빛에 의하여 피부가 검어지는 것은 유멜라닌이 증가한다는 의미입니다.

멜라닌세포의 중심부에 있는 멜라닌 공장(멜라닌소체, melanosome)에서 멜라닌을 담은 작은 주머니(소포, vesicle)들이 한번 만들어지면 세포 주위에 팔처럼 뻗어있는 가지돌기(dendrite)로 순식간에 이동된 후 저장됩니다. 보통 하나의 멜라닌세포는 이 가지돌기를 통해 주변에 있는 약 30개의 각질세포에게 멜라닌을 공급합니다. 멜라닌으로 가득한 각질세포들이 피부의 표면으로 이동하게 되면 피부는 검게 변합니다. 그러므로 좀 더 검은 피부와 머리카락과 눈에는 멜라닌이 더 많이 들어있는 멜라닌소체가 있는 것입니다.

피부색의 기원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노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경학자들은 bc 2,348년에 있었던 ‘노아의 홍수’ 이후 노아와 세 아들들 사이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성경(창세기 9장)에 보면 노아는 홍수 이후에 포도나무 농사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루는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집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있었는데, 아들 함이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말하자 셈과 야벳이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고 얼굴을 돌려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술이 깬 후 그 일을 알고 나자 ‘가나안(함)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노아의 실수도 있었던 상황이니만큼 이러한 처사는 조금 심한 것 같다고 생각되는 대목입니다만 어쨌든 예를 다하여 아버지를 공경하지 못한 함에게 저주는 내려졌습니다. 대홍수 때의 노아는 신의 대리자였기 때문에 그의 말은 큰 힘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함의 자손들은 지금의 아프리카 민족이 되었는데 결국 그들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았던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지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과연 노아의 저주가 함의 후손의 피부색을 결정하였을까요? 다시 말하면 그 때의 저주로 피부에 있는 멜라닌의 양이나 멜라닌세포의 활성도가 결정이 되었을까요? 과연 신은 함의 자손들의 피부를 검게 만들어 피부가 하얀 형제 자손들의 지배를 받도록 한 노아의 저주를 허락했던 것일까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성경에 있는 신은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3-4대까지 이르게 할 것이나 나를 사랑하는 자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 것이’라고 하신 분입니다. 이것은 신을 미워하는데 대한 벌은 작지만 사랑하는데 대한 축복은 영원히 가게 해 주겠다는 약속일 것입니다. 물론 홍수가 있던 시대의 노아는 신의 대리인이었으므로 그의 말은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저주했다고 해서 그 저주가 멜라닌까지 미치도록 신이 허락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아마 노아의 저주는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 3-4대 정도가 정착할 땅이 어디인지에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함의 자손들로 하여금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 거주하도록 했을지는 모르지만 피부의 색을 결정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럼 왜 그들이 검은 피부를 갖게 되었냐구요? 그것은 신의 축복 때문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아에게 저주를 받아서 뜨겁고 척박한 땅에 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신은 그들을 잊지 않고 멜라닌을 준비해주신 것이지요. 즉 멜라닌은 아프리카의 뜨거운 자외선을 흡수하여 피부를 해치지 못하도록 방어 작용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태양과 관련된 백인들의 피부암이 흑인에게 매우 적다는 것은 또 다른 증거 아니겠습니까?

신의 축복인 멜라닌을 저주로 만든 것은 무지몽매한 인간들이었습니다. vkh 증후군은 바로 신이 내려주신 축복의 멜라닌을 공격하고 있는 병입니다. 자신의 멜라닌을 공격하고 있는 vkh 증후군의 비정상적인 방어기전을 보면 신의 축복이 부족했던 무지몽매한 인간들의 비겁한 역사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