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98

작성일 2006-12-22 첨부파일


신비한 눈을 가지면 귀가 잘 안 들린다





터키의 남동쪽 끝에 있는 도시 밴(van)은 여러 나라가 인접해있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언제나 동유럽 역사의 중심지였습니다. 후라인족(hurrines), 인도히타이트어족(hittites), 페르시아인(persians), 지중해인(meds), 셀주크인(seljuks), 오스만제국(ottomans)이 차례로 지배해왔던 곳이기도 하지요. 밴에서 55km 떨어진 1,719m의 고지대에는 화산폭발로 생긴 호수(밴 호수, van lake)가 하나 있는데 길이가 무려 120km, 폭이 80km, 깊이가 457m로 터키에서 가장 큰 호수입니다.



물이 나가는 곳이 없이 유입만 되는 이 호수는 소금기가 많아 청어만이 살아남았습니다. 호수에 있는 악다마(akdamar) 섬에는 ad 915-921년 바스푸라칸(vaspurakan)왕조의 가긱(gagik i) 왕의 지시로 마누엘 사제가 지었다는 아름다운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이 호수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특별한 고양이(van cat)가 살고 있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멈추었다는 아라랏 산에서 150km 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방주에 탔던 고양이가 처음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넓은 가슴과 두꺼운 몸통 그리고 긴 근육질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이 고양이는 춥고 더운 날씨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양이나 토끼에게서 볼 수 있는 희고 긴 털이 있습니다. ‘수영하는 고양이(swimming cat)’로도 유명한데, 털이 방수라서 물이 잘 묻지 않습니다. 1950년대 중반 영국인 러싱턴(lushington)이 이곳을 여행하다가 머리와 꼬리에 갈색 얼룩이 있는 이 고양이에게 매료되어 영국으로 데려간 것이 세상에 밴 고양이를 알린 시초라고 합니다.

밴 고양이에게는 신비한 비밀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 눈의 색깔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터키에서는 밴 고양이를 귀하게 여겨 그들만의 아파트를 만들어주고 혈통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터키의 앙고라(angora), 일본의 재패니스 밥테일(japanese bobtails), 태국의 샴(siam) 고양이들 그리고 러시아 시베리안 허스키(siberian huskies), 호주 오스트랄리안 쉐퍼드(australian shepherds)와 보더 콜리스(border collies)라는 개들에게서도 일부 이런 눈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동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신비한 눈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독일의 위트레흐트(utrecht) 의대를 나온 발덴버그(petrus johannes waardenburg, 1886-1979)는 일란성 쌍둥이 딸들을 갖게 된 후 눈의 유전질환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1866년 다운(landon down)이 발견한 선천성 증후군이 염색체 이상이라는 것을 레전느(jean louis marie lejeune)가 약 100년 후(1959)에 밝히기 무려 27년 전에 왈덴버그는 이미 이것이 염색체 이상일 것으로 예견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의 인생은 사실 많이 늦었습니다. 그가 유전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50세였고, 그가 레이덴(leiden) 의대의 유전학 교수가 된 것은 남들이 은퇴를 할 66세였으니까요. 그러나 이 때 다른 교수들과 함께 눈 유전학에 대한 기념비적인 두 권짜리 책을 내게 됩니다.

그는 62세(1948)에 두 눈이 정상보다 많이 벌어져서 얼굴의 양쪽 옆에 붙어있고, 청각 장애자이며 말을 못하는 72세의 재단사를 증례로 발표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비슷한 예는 1913년 호브(van der hoeve)와 1947년 클라인(klein)이 이미 발표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인 1888년에 독일 작가 칼 메이(karl may)의 ‘the ghost of llano estacado’라는 소설에서 알려졌다고 볼 수 있지요. 저글링을 하는 소설 속의 주인공 프레드(fred)의 얼굴이 그랬거든요. 프레드의 얼굴이 실제 인물을 딴 것으로 보는 이유는 칼 메이가 그 소설을 쓰기 10년 전 76만 명의 독일 초등학생들의 피부와 눈과 머리카락의 색을 기록한 책의 편집자였기 때문입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푸른 눈, 회색 눈, 갈색 눈이 각각 1/3 정도를 차지하였고, 450명은 검은 눈, 3명은 붉은 눈, 한 명은 두 눈의 색이 달랐으며 한 눈은 푸르고, 다른 눈은 갈색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마지막 소년이 프레드의 모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이 질환에 발덴버그의 이름이 단독으로 붙게 되는데, 늦게 발표했으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그것은 증례의 발표로 만족하지 않았던 그가 눈과 귀의 문제가 서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려고 누구보다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새롭게 연구를 시작하기엔 세월이 많이 흘러가버린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러나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할 때 나치 독일의 인종정책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두려움 없이 반대했던 이 용감한 노교수에게 나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연구는 계속되어 3년간 청각 장애자이며 말을 못하는 840명을 조사했으며, 이 중 12명에게서 비슷한 얼굴을 찾아내었는데, 그들의 눈 색이 서로 다르다는 것과 두 눈의 색이 다른 경우 청각장애가 동반된다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내용을 정리하여 새로운 질병임을 발표한(1951년, 65세) 후로 청각장해, 피부와 머리카락의 탈색, 두 눈의 색깔이 다른 홍채이색증(heterochromia iridis)을 보이는 유전성 질환을 발덴버그 증후군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 후에도 그는 얼굴 모양이 기형적이지 않은 발덴버그 증후군을 따로 구분하기도 하였고, 다른 여러 유전성 증후군들을 발견하기도하여 연구는 나이와 관련이 없다는 교훈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인물들 중에서도 홍채이색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나다 코메디언 댄 아이크로이드(dan aykroyd), 미국 여자 코메디언 그레이스 알렌(gracie allen), 영국출신의 여배우 제인 세이몰(jane seymour), 우크라이나 출신의 여배우 밀라 쿠니스(mila kunis)가 그들입니다. 홍채이색증은 생물에게 존재하는 검은 색소 멜라닌과 관련됩니다. 멜라닌을 만드는 멜라닌세포는 태생학적으로 신경능선(neural crest)에서 기원하여 피부, 머리카락, 뇌막, 귀로 이동합니다. 멜라닌세포가 이들 부위로 이동하지 못하는 경우에 신비한 눈을 가진 발덴버그 증후군이 생기게 되는 것이며, 멜라닌세포가 이동은 했지만 그 멜라닌을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경우에 보크트-고야나기-하라다 증후군(vogt-koyanagi-harada syndrome)이 생기는 것이지요.

발덴버그 증후군은 엄마나 아빠 한쪽이 그럴 경우 자식의 50-100%까지, 둘 다 그럴 경우 75-100%까지 같은 증후군이 나타나는 염색체 우성(autusomal dominant) 유전을 합니다. 그러므로 두 눈의 색깔이 다른 터키의 밴 고양이가 계속 그런 신비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밴 고양이들끼리 계속 혈통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눈의 색깔이 달라도 시력은 정상이라는 점과 두 눈의 색깔이 다르면 엉뚱하게도 귀가 잘 안 들릴 수 있다는 점은 바로 66세에도 훌륭한 교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반델버그가 발견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밴 고양이의 귀가 약할지도 모른다는 추측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