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99

작성일 2006-12-29 첨부파일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는 염증


▲ 이성진 교수
만약 우리가 앞으로 어떤 병에 걸릴 것인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는 게 병’이란 말이 있듯이 인생이 걱정스러워질까요? 그렇다면 ‘모르는 게 약’이지요. 그런데 인간의 유전자 암호를 완전히 해독하여 그러한 사실을 미리 알아보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불과 15년 전의 일입니다.

1989년 1월 미국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에서 생물학자, 윤리학자, 컴퓨터 전문가, 산업과학자 등 여러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인간유전체(genome)자문위원회’가 발족되었습니다. 이 위원회는 사람의 생물학적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유전정보를 해독하는 것이 인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데 뜻을 모아 미국에너지부(us department of energy)의 도움으로 1990년 10월 1일 ‘인간유전체계획(human genome project)'을 수립하였습니다. ‘유전체(genome, 지놈)’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을 합성한 용어로 생물의 염색체에 있는 모든 유전자를 의미하며 ‘유전체’ 연구 계획이란 사람의 모든 유전정보를 완전히 해독하려는 계획을 말합니다.

신의 건축 솜씨를 벽돌 한 장까지 알아보기 위해 13년에 걸쳐 30억 달러를 들인 이 계획은 달 착륙과 원자탄 계획을 능가하는 사상 최대의 프로젝트였습니다. 전 세계 18개국의 연구진들이 참여하였으며, 1998년 미국의 민간 생명공학회사인 셀레라 제노믹스(celera genomics)사가 이 계획에 뛰어들어 경쟁하게 되자 급류를 타게 되었습니다. 2000년 6월에는 ‘인간지놈계획’과 셀레라 제노믹스사가 공동으로 ‘인간유전체지도’의 초안을 발표했으며, 마침내 수정된 목표보다 2년이 빠른 2003년 4월 14일 ‘네이쳐(nature)’ 지에 전체 지도를 완성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1953년 왓슨(j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이 1953년 4월 ‘네이쳐‘에 염색체의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표한지 꼭 5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혈액의 적혈구를 제외한 모든 세포에는 핵이 있는데 이 핵 속에는 22쌍의 일반염색체와 1쌍의 성염색체(여성은 xx, 남성은 xy)가 들어있지요. 염색체를 풀어보면 이중나선형 구조의 dna(deoxyribonucleic acid)로 되어 있습니다. dna를 늘어놓으면 길이가 182.9㎝, 무게는 1000억분의 1g에 불과하며, dna의 화학암호를 구성하는 염기의 종류도 a, c, g, t 단 4가지(adenine 아데닌, cytosine 시토신, guanine 구아닌, thymine 티민)로 매우 단순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작고 단순한 구조의 dna에 대해 ‘인간유전체계획’이 밝힌 결과 중 흥미로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인간의 유전자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적은 31,000개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이러한 유전자들 중 인간이 지구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dna의 99.9%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개의 유전자는 대략 2,000쌍의 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23쌍의 염색체에는 약 30억 쌍의 염기가 있음이 밝혀졌는데 이 중 0.1%인 300만 개만이 다른 사람과 다를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이 0.1%가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동일한 dna를 갖는 사람은 절대 존재할 수 없게 만들뿐 아니라 인종 간의 차이, 서로 다른 외모,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특질을 만들어내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인간 유전자의 99.1%가 침팬지와 동일하며, 쥐와는 75%가 동일하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이 염색체들 중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할까요?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은 있겠지만 가장 큰 1번 염색체보다 여섯 번째 크기의 6번 염색체를 꼽는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이 염색체에는 1억6천6백만 쌍의 염기로 된 2,190개의 유전자(gene)가 있으며, 이것은 전체 인간 유전체 중 6%에 해당하는 가장 큰 유전정보 덩어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6번 염색체는 이미 암, 심장병, 정신질환 등 130개의 질병 유전자들이 관련된다고 알려진 곳입니다만 이번 계획을 통해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단백질 공장과 관련된 세 곳의 핫 스팟(hot spots) 유전자와 유전자 복사(전사, transcription) 업무를 활발히 담당하는 적어도 96개의 유전자가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13만 개 이상의 암호변형(sequence varient)이 있음도 조사기간 중에 확인되어 어떤 염색체보다도 활발한 일을 하고 있음이 알려졌지요.

그렇지만 그것보다 이 염색체가 중요한 것은 몸의 방어체계를 주관하는 군사령부 유전자들이 바로 이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면역과 관련된 유전자들은 mhc(주조직접합체, 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라는 곳에 몰려있는데, 이곳은 유전자(gene)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그 중에도 hla-b(human leukocyte antigen, 인간백혈구항원) 구역에 가장 다양한 모습의 유전자가 존재함이 알려졌습니다.

mhc의 역할은 자신과 적을 구별해내는 것인데, 침범한 적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세포일지라도 자신과 다른 표시를 할 경우에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세포 표면의 신분증명 단백질(항원표시단백질, antigen presenting protein)을 만드는 것입니다. 6번 염색체의 유전체 지도를 8년에 걸쳐 완성했던 웰컴트러스트생거 연구소(wellcome trust sanger institute)의 벡(stephan beck) 교수는 이 유전자를 면역의 ‘성배(holy grail)’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만약 이곳의 유전자가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는다면 1형 당뇨병, 류마치스 관절염,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생길 수 있는데 이러한 자가면역질환은 인구의 4%에서 생기는 흔한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전인자가 특정 질병과 관련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유전인자나 그 유전인자가 만들어낸 단백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비교해 보면 됩니다. 이것을 비교위험도(relative risk)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염증으로 인해 척추끼리 붙어서 몸을 움직이기 힘들게 되는 강직성척추염(ankylosing spondylitis)라는 병은 위에서 말한 hla-b 영역의 27 위치의 유전자가 음성인 사람과 비교하여 양성인 사람이 87배나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교위험도를 연구하여 나온 결과입니다. 이것은 hla-b27 유전자가 강직성척추염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강직성척추염은 1972년에 처음으로 염증이 유전인자와 관련이 있다고 증명한 첫 질환이기도 합니다. 그 이후로 hla-b27은 건선 관절염(psoriatic arthritis), 라이터 증후군(reiter syndrome), 장염(inflammatory bowel disease) 등 100여개의 질병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눈 속 염증(포도막염, uveitis)이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암이나 전신질환이 아닌 염증이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조금 특이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hla-b27과 같이 눈 속의 작은 염증을 알려주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도 그러하고요.

현재까지 약 8,000개의 질병 관련 유전자가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제 내 몸에 어떤 병이 올 것인지 미리 알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혹시 ‘아는 게 힘’이란 말이 성립될까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알고 걱정만 한다면 ‘아는 게 병’이겠지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아는 게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