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00

작성일 2007-01-05 첨부파일


눈이 아픈데 왜 허리 사진을 찍어야 합니까?


▲ 이성진 교수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지요?”

오전 진료가 끝날 무렵 느즈막히 접수한 20대의 젊은 남자 청년 한 분이 제게 묻습니다. 그는 3일 전 밤늦도록 월드컵 축구를 본 적이 있는데 다음 날 갑자기 한쪽 눈이 침침하고, 충혈이 생기며, 눈이 부시고, 통증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본인은 당뇨나 고혈압도 없으며, 다른 전신 질환도 없고, 다친 적도 없다고 하는군요.

“글쎄요. 한 번 검사해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세극등현미경으로 눈 속을 들여다보았지요. 눈 속에는 염증세포들이 왕창 떠다니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눈 속 염증! 바로 포도막염(uveitis)입니다. 그는 세극등현미경에서 머리를 떼자마자 제게 조금 따지듯이 묻습니다.

“눈이 아픈데 왜 허리 사진을 찍어야 합니까?”
“네?”
“원장님이 그러셨어요. x-레이 검사가 필요하니까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고요.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는 누가 이 분을 흥분(?)시켰는지 궁금하여 슬쩍 진료의뢰서를 보았지요. 그랬더니 거기에는 평소에 제가 존경하던 j 선배님의 함자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선배님은 그 동네에서 친절하기로 소문났을 뿐 아니라 꼼꼼히 진료를 해 주시고, 설명까지 잘 해 주시기로 인기가 있는 분이신데, 무슨 일이지요?

“흠. 혹시 원장님께 무슨 다른 말씀을 들으신 것은 없습니까?”
“제 유전자가 이상하답니다.”
“네?”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부스럭거리며 꺼내서는 제게 건네줍니다. 저는 그 종이를 펴는 순간 흠칫 놀랐습니다.
“그것 보세요. 선생님도 놀라시잖아요. 제가 무슨 중병이 있을지 모른다고 원장님도 그러셨거든요.”
“그게 아니라...”

거기에는 hla-b27 양성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종이의 제목은 특수 유전자 검사였고, m 유전자연구소에서 검사를 하였군요.

hla-b27이란 염색체 6번의 짧은 팔(6p) 중간쯤에(21.1-21.3) 위치한 hla의 b 영역에서 만들어진 세포 표면의 특별한 물질을 말합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을 드린 대로 hla-b27이 양성인 경우에 포도막염이 생길 수 있으며, 음성인 경우와 비교했을 때 여러 질환들이 더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급성 앞포도막염(망막을 침범하지 않는 포도막염), 척추 뼈가 굳어버리는 강직성 척추염(ankylosing spondylitis, 사진), 건선이라는 피부병과 함께 동반되는 손과 발가락의 관절염(psoriatic arthritis), 뇨도염과 관절염과 눈의 염증이 같이 오는 라이터 증후군(reiter's syndrome), 장염(inflammatory bowel disease) 등이 그것입니다.




사실 제가 놀란 것은 그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유전자 검사는 대학병원에서도 그냥 지나쳐 버리곤 하는 특별한 검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런 특별한 검사를 개인병원 원장님이 하시기란 참으로 어려울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그 검사는 일단 비싸지요, 검사를 하려면 연구소에 일부로 시간을 내서 가야지요, 검사비도 따로 내야지요, 그렇게 검사를 받게 하려면 환자를 설득시켜야 하지요, 그러려면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도 그 검사를 하도록 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니겠습니까?



일단 이 청년을 안심시키는 것이 급합니다.

“지금 포도막염이라고 하는 눈 속 염증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것은 앞포도막염입니다. 앞포도막염이라는 것은 눈 뒤쪽에 있는 신경막(망막)을 잘 침범하지 않기 때문에 염증만 조절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앞포도막염의 가장 많은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야 저는 모르지요.”
“그게 정답입니다. 급성 앞포도막염의 가장 많은 원인은 바로 ‘원인 모름(idiopathic)’이니까요. 몸이 피곤하여 저항력이 떨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급성 앞포도막염의 두 번째 원인이 바로 hla-b27입니다. 사실 hla-b27 항원을 가지고 있어도 20%에서만 질병이 생깁니다. 게다가 이러한 병들은 아시아인에게서 적은 편이구요”

이제야 이 청년은 자세를 조금 편안히 하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는군요.
“꼭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합니까?”
“hla-b27 관련 급성 앞포도막염은 먼저 한 눈에 갑자기 생긴 후에 다른 눈에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원인 모름’으로 생기는 앞포도막염 보다는 증세가 조금 심한 편이어서 눈 속에 염증막과 고름이 생길 수 있고, 염증으로 동공이 고정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유리체와 망막에도 염증이 일어나며, 재발율도 조금 더 높습니다. 이렇듯 hla-b27 관련 포도막염이 좀 더 심한 경과를 밟으므로 본인의 상태를 좀 더 잘 알고 치료를 받으려면 유전자검사를 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왜 허리 사진을 찍어야 하지요?”
“hla-b27 관련 급성 앞포도막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hla-b27 유전자가 강직성척추염과 같은 여러 심각한 전신질환과 관련이 될 수도 있으며, 그러한 전신질환의 가장 첫 증상이 포도막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이것과 관련한 혈액검사나 x-레이 검사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제 보니 그 원장님도 그런 비슷한 설명을 해 주신 것 같아요. 제가 좀 스트레스를 받았나 봐요.”

저는 그 청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동공이 염증으로 고정되지 않도록 하려는 산동제와 염증을 조절하기 위한 스테로이드(steroid) 안약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 선배님이 못 다한 치료 즉 눈 주변부(subtenon)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아주었지요. 이렇게 하면 스테로이드 먹는 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므로 먹는 약의 부작용을 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비스로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척추 스트레치 운동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해 보세요.

“그 원장님이 얼마나 신경 써 주신 건지 아시겠죠? 다음에 원장님 만나시면 제 안부 좀 전해주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더우니까 원장님께 아이스크림이나 사 가지고 가야겠어요.”
저보다 더 열심히 환자들을 보고 계실 그 선배님께 오늘 전화를 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