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03

작성일 2007-01-25 첨부파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미화원


▲ 이성진 교수
새벽녘 / 찬바람에 졸음을 털어 내고 / 하얀 입김 솔솔 날리며 /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 쓰레기를 줍는다. / 슬그머니 남몰래 버린 / 때묻은 양심을 줍는다. / 한 줌 쓰레기 주워 담으며 / 가벼운 아침 출근길을 생각하고 / 버려진 양심 주워 담으며 / 햇살 밝은 내일을 생각하고 / 이마에 땀방울 송글송글 맺힐수록 / 지구의 한쪽 모퉁이 / 반짝 빛난다.

(환경 미화원, 시인 김소운)


몸에 염증이 발생하면 어디선가 작은 세포들이 슬금슬금 나타나며,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커다란 세포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100년 전 러시아의 학자 메치니코프(metchinikoff)는 염증의 초기에 나타나는 세포를 '작은 식세포'(microphage), 나중에 나타나는 큰 세포를 ‘대식세포’(macrophage)라고 하였습니다. 현재 이 식세포들은 혈액 속의 백혈구로 알려졌는데, 작은 식세포는 호중구(neutrophil)이고, 대식세포는 혈액안의 단핵백혈구(monocyte)가 혈관 밖으로 빠져나온 것입니다. 며칠 밖에 살지 못하는 호중구에 비해 대식세포는 수개월에서 수년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식세포들은 몸에 침입한 세균이나 이물질뿐만 아니라 죽은 세포를 포함하여 몸에 해가 될 수 있는 모든 쓰레기들을 보이는 대로 다 잡아먹습니다. 이들이 없다면 우리의 몸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다가 죽어갈 것입니다. 메치니코프는 불가사리의 유충에서 이 대식세포를 발견한 공로로 1908년 에를리히(paul ehrlich)와 함께 노벨의학상을 받았습니다.

몸 안에는 이외에도 어떤 특정한 부위에 상주하는 특별한 대식세포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조직대식세포’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상주형 대식세포는 간에 있는 쿠퍼세포(kupffer cell), 폐에 있는 먼지세포(dust cell), 임파절이나 비장의 동굴세포(sinusoidal lining cell), 뼈에 있는 뼈파괴세포(osteoclast), 신경에 있는 미세아교세포(microglia), 그리고 결합조직 안에 살고 있는 조직구(histiocyte) 등입니다. ‘조직대식세포’는 태아의 시기에 각 조직에 배치되어 그곳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골수에서 단핵백혈구로 만들어진 후 염증에 동원되는 대식세포와는 그 성장과정이 다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세포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우시키(tatsuo ushiki)와 후지타(tsuneo fujita) 교수가 쓴 ‘세포여행기’라는 책에서 그 궁금증을 조금 풀 수 있었습니다. 그 책에는 간에 있는 넓은 모세혈관에 다리를 최대로 뻗고 있는 두 마리의 대식세포(쿠퍼세포) 사진이 있습니다.

몸의 표면은 사마귀나 바늘 같은 모양의 끈적거리는 돌기물질로 덮여 있는 좀 징그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식세포는 혈관의 내면을 애벌레처럼 움직이면서 세균이나 이물질이나 죽은 세포와 같은 유해물질들이 흘러들어오면 긴 지팡이와 같은 돌기를 휘둘러 먹이를 걸고 세포 안쪽으로 잡아당깁니다. 표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이물질 인식 장치(수용체, receptor)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온 먹이를 정확히 인식하여 놓치지 않습니다. 때로는 좁은 동굴과 같은 혈관을 다녀야 할 때도 있지만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시켜서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 중 왼쪽은 변성된 하나의 적혈구가 대식세포에게 딱 걸려서 돌기에 붙잡힌 모습이고, 오른쪽은 여러 개의 변성된 적혈구를 잡아먹고 있는 대식세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식세포는 여러 종류의 강력한 분해효소들을 주머니(라이소좀, lysosome) 속에 저장해 두고 있는데, 세포 안으로 잡혀 들어온 먹이는 주머니 속에서 이 효소에 의해 분해됩니다. 아래 사진에서 검은 색의 쓰레기와 같은 이물질들을 감싸서 분해하고 있는 라이소좀 주머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세균과 같은 이물질을 잡아먹은 대식세포는 사이토카인(cytokine)이나 케모카인(chemokine)이라고 불리는 화학물질들을 분비하여, 남아있는 이물질들을 처리하도록 T세포, b세포, nk세포(자연살해세포)와 같은 지원군들을 부릅니다. 이 때 중요한 점은 이물질을 잡아먹은 후 이물질의 일부 단백질을 몸의 표면에 부착하여 지금 무엇을 삼켰는지 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t 임파구에게 지원군들을 보내달라고 부탁할 때 필요한 중요한 정보일 뿐 아니라 지원군으로 하여금 자신을 잘 찾아오게 하는 표시이기도 하며, 자신은 이물질을 삼키고 있을 뿐 이물질이 아니므로 공격하지 말아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식세포는 100마리 이상의 세균을 잡아먹을 경우 처리하는 과정 중에 죽을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식세포는 자신의 구역이 오염되는 것을 절대 허용할 수 없습니다. 대식세포는 밀려들어오는 세균들을 보며 죽음을 각오하고 마구 잡아먹습니다.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수많은 대식세포들은 지저분한 고름이 되어 죽어갑니다. 그렇게 싸우고 있지만 대식세포는 작은 염증덩어리(granuloma, 육아종)를 만들고, 죽상동맥경화(atherosclerosis)에도 관여하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기도에 감염되었을 때 감염되지 않은 세포까지 파괴시키고, 에이즈(aids) 균(hiv, human immonodeficiency virus)이 대식세포 속에서 살아남기 때문에 보균자가 되는 것이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합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누가 알아주기 때문에 이렇게 마구 먹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안 먹으면 거리는 쓰레기들로 뒤덮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상할 것이니까요. 대식세포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눈을 뜨기조차 힘든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의 가벼운 아침 출근길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자신이 맡은 지구의 한쪽 구석을 빛나게 만들고 있는 바로 그분들 말입니다. 여러분! 세균이 얼씬도 못하게 깨끗한 거리를 만듭시다. 깨끗이 손발을 씻읍시다. 대식세포가 너무 힘들지 않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