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04

작성일 2007-01-27 첨부파일


그들이 뜨겁게 포옹하는 이유


제가 사진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우시키(tatsuo ushiki)와 후지타(tsuneo fujita) 교수가 쓴 ‘세포여행기’라는 책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장면일까요? 미소는 몸에 징그러운 혹들이 우둘투둘 나 있는 두 마리 벌레들 같다고 합니다. 그럼 두 마리의 벌레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요? ‘포옹이요.’ 흠. 그럴 듯 하군요. 그렇다면 이 두 마리 벌레들은 무엇이며 왜 이런 뜨거운 포옹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몸속을 흐르는 혈액은 6리터 정도 됩니다. 그 중에 물 성분(혈장, plasma)이 반 이고, 나머지는 세포들(혈구, blood cell)입니다. 피가 붉은 이유는 세포들의 대부분이 적혈구(red blood cell)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혈액에는 또 다른 세포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백혈구(white blood cell)와 혈소판(platelet)입니다. 피 1μl에는 산소를 공급하는 적혈구가 500만개, 병균과 싸우는 백혈구가 8천개, 출혈을 멈추게 하는 혈소판이 30만개가 있습니다. 기능은 전혀 다르지만 하나의 엄마세포(pluripotent hemopoetic stem cell, 혈구모세포)로부터 나왔습니다. 엄마세포는 스스로 복제가 가능하여 계속 생존해 있으면서 필요에 따라 자신의 몸을 나누어 이 모든 세포들을 만듭니다. 몸에 출혈이 생기면 혈소판을 많이 만들고, 세균이 침입하면 백혈구를 많이 만드는 식입니다.

백혈구 중에는 세포 안에 작은 알갱이들을 가지고 있는 과립구(granulocyte)가 2/3정도 됩니다. 알갱이의 종류에 따라 호중구(neutrophil), 호산구(eosinophil), 호염구(basophil)로 불리지만 이들의 공통적인 역할은 세균이 침범했을 때 즉각 달려가서 잡아먹는 것입니다. 알갱이가 없는 무과립구에는 지난 시간에 설명 드렸던 대식세포(phagocyte)와 단핵구(monocyte) 그리고 임파구들이 있습니다. 단핵구나 대식세포 역시 세균을 잡아먹는 것은 과립구와 비슷하지만 그 세균에 대한 정보를 임파구에 전달한다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임파구도 역시 비슷하지만 세균 뿐 아니라 몸에서 반란을 일으킨 암세포를 감시하며 제거하고 있습니다.

백혈구의 종류와 기능은 매우 다양하여 아직도 그가 하는 일을 다 알지 못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백혈구들이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균이나 암과 싸우고 있으며, 아직은 넉넉히 이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john ding-e young)이란 학자는 둥근 암세포(왼쪽)를 제거하려고 공격하고 있는 t 임파구(오른쪽)를 보게 되었습니다. t 임파구의 위용을 한 번 보십시오. 암세포가 무섭다고 하나 거기에 맞서도 능히 이길 만큼 당당하지 않습니까?

임파구는 크게 b와 t와 nk로 구분할 수 있는데, b 임파구는 항체를 만들고, t 임파구는 면역반응을 지휘하고, nk임파구는 암세포를 살해합니다. 임파구들은 뼈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골수(bone marrow)에서 태어난 후 임파절이나 비장과 같은 특별한 기관에 모여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나 t 임파구는 다른 임파구들과 성장과정이 조금 다릅니다.

골수에서 탄생한 미숙한 임파구들 중 일부는 심장 옆의 흉선(thymus)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곳에서 임파구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특수한 지도자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상위 2% 만이 t 임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t 임파구의 당당함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나머지 98%는 2%가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사멸하는(apoptosis, 세포자멸사) 길을 택하게 되며, 대식세포에게 잡아먹힘으로 일생을 마칩니다. 좁은 관문을 뚫고 당당한 지도자로 태어난 t 임파구는 다른 임파구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도우미(helper cell)나 억제자(suppressor cell) 또는 수상한 세포를 파괴해 버리는 암살자(killer cell)로서의 임무를 맡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 막 부임한 t 임파구는 적군들이 몸을 침입하였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일단 현장에 있던 작은 식세포(호중구)들이 닥치는 대로 적군들을 먹어치우고 있으며, 조금 후에 도착한 대식세포들도 가세하였다고 하는데, 적군들의 전력도 만만치 않아 아군과 적군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t 임파구는 현장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그곳에는 형제들과 다름없는 식세포들이 세균을 잡아먹다가 고름이 되어 쓰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기서 힘겹게 달려오는 한 친구가 보이는군요. t 임파구가 쫒아가서 그 친구를 부축하고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 친구는 지금껏 내내 그리워했던 t 임파구의 형제가 아니겠습니까? 아수라장이 현장이었지만 그 형제와 깊이 포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는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포옹하는 동안 t 임파구에게 자신이 잡아먹은 적군의 단백질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제야 t 임파구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곧 자신의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달했으며, b 임파구에게도 지원군을 요청하였습니다. 그가 얻은 정보를 토대로 적군을 가장 잘 제압할 수 있는 특수부대가 만들어집니다. 이 소식은 골수에 있는 엄마세포에까지 전달되어 백혈구 병력들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지원군들이 속속들이 도착하였고, 한참 기세를 떨치던 세균들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습니다.

첫 번째 사진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제 두 마리의 벌레가 무엇이며 왜 포옹을 하고 있는지 아시겠지요? 오른쪽 위에 있는 세포가 이물질을 잡아먹은 대식세포이고 왼쪽 아래에 있는 세포가 t 임파구입니다. 대식세포는 깊은 포옹을 통해 그가 잡아먹은 세균의 일부를 입을 통하여 t 임파구에게 전달하는 중입니다. 이것을 항원 제시(antigen presentation)라고 하는데, 이렇게 얻은 적군의 정보를 토대로 t 임파구는 승리의 전략을 짜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뜨거운 포옹이지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아주 중요한 포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