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05

작성일 2007-01-29 첨부파일

중앙 백과사전 - 가지세포(dendritic cell)


지금으로부터 약 140년 전(1868년) 베를린대학의 의대생이었던 21세의 랑게르한스(paul langerhans, 1847-1888)는 피르호(rudolf ludwig karl virchow, 1821-1902)라는 큰 스승님의 지도를 받으며 피부의 신경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피르호 교수는 현대 의학의 초석으로 볼 수 있는 세포병리학을 창시한 거장으로 그 동안 애매하게 표현해왔던 질병의 원인을 세포들 사이의 문제로 바라보았던 학자였습니다. 의사였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이 들려준 피르호 교수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랑게르한스의 마음을 쏙 빼앗아갔습니다.

스승님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정부로부터 슐레지엔(schlesien) 지방에서 번지고 있던 발진티푸스의 원인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3주간 조사한 결과 세균이 그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도 같은데 어쩐 일인지 보고서에는 열악한 생활조건과 사회적 불평등이 그 병의 원인이며, 이 모든 것은 정부 때문이라고 써 있었습니다. 그것 뿐 아니라 조사에서 돌아온 지 8일 만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정부를 상대로 힘겨루기를 했으며, 이러한 급진적인 행동과 생각 때문에 1년 후 정부는 그를 병원에서 해고시켰으나 이미 해부병리학 분야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였으므로 2주 만에 몇 가지 특권을 빼앗은 채 다시 복직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이야기들 말입니다. 지금은 시의원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어 병원 설계를 감독하고, 간호학교를 만들고, 베를린시의 새 하수처리 체계를 고안하는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현미경 속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게 차별을 받고 있던 또 다른 세상을 도와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쏟아 붓고 있었습니다.


젊은 학생이었던 랑게르한스는 금을 이용하여 피부를 염색하던 중에 피부의 표층에서 검은 색으로 염색이 되는 나뭇가지 모양의 새로운 세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나뭇가지 모양의 세포들이 피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그가 관찰한 내용을 자세히 그려서 학회에 보고하였지요. 이것은 그가 췌장(pancreas)에서 인슐린을 분비하여 혈당을 조절하는 100만개의 랑게르한스 섬(island)을 발견하기 1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스승님은 피부에서 새로 발견한 이 세포에 제자의 이름을 붙이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들은 과연 이 세포가 무엇일까 고민하던 끝에 아마도 나뭇가지 모양이 마치 신경의 가지모양처럼 생겼으니까 신경계에 속하는 세포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나뭇가지 모양의 세포는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잊혀져 갔습니다.

약 100년 후에(1961) 전자현미경으로 피부의 백반증을 연구하던 영국의 바베크(birbeck)는 랑게르한스 세포 속 이곳저곳에 테니스채 모양의 특별한 과립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1973년에 미국의 실버벅(silberberg)은 수은을 피부에 발라서 피부염증을 일으켜보았는데 그 자리에서 랑게르한스 세포와 임파구의 접촉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부 표피세포의 3% 정도에 해당하는 이 세포는 어떤 유해한 물질이 침투하면 안테나와 같은 긴 돌기로 이것을 붙잡은 후 표피를 빠져나와 피부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임파관을 통해 가까운 임파절에 도착한 후 그곳에 대기하던 t 임파구에게 자신이 잡은 물질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에서 이 세포의 역할을 주목을 받게 되었고, 피부의 면역기능과의 관계도 규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이 세포의 동료들이 온 몸에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세포들을 정리하여 ‘가지세포’(dendritic cell, 수지상세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이름은 1973년 슈타인맨(steinman)과 콘(cohn)이 쥐의 비장(spleen)을 갈아서 옮길 때 유리에 달라붙어 있는 물질을 현미경으로 보다가 곤봉모양의 돌기를 수없이 내뻗고 있는 세포를 발견한 후 붙여진 것입니다. 그 후 이 가지세포가 임파절의 심층부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세포가 면역기능에 관여할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지요.

가지세포는 대식세포와 형제로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백혈구들 중 단핵구(monocyte)에서 분화가 되니까요. 그러나 대식세포와는 달리 병균을 먹어치우는 일이 가지세포의 주된 일은 아닙니다. 가지세포는 세균이 감염되었을 때 급히 나타나서 싸우는 호중구나 조금 후에 나타나는 대식세포와는 달리 온 몸의 각 장기에 분포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가지세포는 이식된 장기를 거부하는 반응에 적극 관여하고 있으며, 알러지나 자가면역질환 뿐 아니라 에이즈(aids)나 암과 같은 무서운 적군의 동태를 감시하여 t 임파구에게 강력한 보고(항원제시, antigen presentation)를 올리고 있음이 알려졌습니다.

동물의 가지세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세포가 외부의 적에 대해 살인면허(killer cell like activity)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중앙 백과사전(central encyclopedia)’이라는 별명이 더 적합하다는데 동의하였습니다. 즉 이 세포는 우리의 몸을 돌면서 우리의 몸에 해를 줄 것 같은 적들을 만나면 수집하여 정보를 캐내고, 여러 전쟁에 대한 지식을 모은 후 그것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이러한 적군을 만나면 저런 특수부대를 조직하여 요런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보고서를 t 임파구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가지세포를 보면 랑게르한스의 스승이었던 피르호가 생각납니다. 의사, 병리학자, 인류학자, 국회의원 그리고 제자들에게 좋은 스승이었던 피르호. 마치 ‘중앙 백과사전’처럼 자신이 지금까지 습득한 모든 지식을 이용하여, 정부를 설득하고, 하수시설을 개선하고, 좋은 병원을 만들고, 좋은 간호사와 의사를 양성함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질병을 물리칠 수 있는 특수부대와 전술을 제안하였으니까요.

랑게르한스는 27세에 결핵으로 매우 허약해지자 여러 나라를 돌았지만 치료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연구를 포기하고 요양을 위해 포르투갈의 서남쪽 섬 마데이라(madeira)로 갑니다. 다행히 그곳의 자연은 결핵을 이기도록 도와주었고, 그는 고마운 마음에 그 섬의 기후와 치유의 능력에 대한 작은 책을 썼습니다. 그 후 그곳의 해양생물 연구에 참여하여 새로운 무척추동물을 발견하였는데, 그 동물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virchowia’ 바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승님의 이름이었습니다. 39세에 신장염으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독일 왕립학술원(royal academy)에서 이 내용을 강연하던 제자의 모습을 피르호는 ‘중앙 백화사전’에 영원히 간직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