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06

작성일 2007-01-31 첨부파일

누가 람세스 5세를 죽였을까?


“아빠. 세균이 눈에도 염증을 일으키나요?”

“그렇단다. 그 중에는 망막에 염증을 일으켜서 실명을 일으키는 것들도 있지. 세균은 1674년에 레벤후크(leeuwenhoek)가 현미경을 통해 발견하기 전까지 볼 수가 없었단다. 약 260년이 지난 1930년대에 전자현미경이 만들어졌는데 놀랍게도 세균보다 더 작으면서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보게 된 거야.”

“그게 바이러스라는 거지요?”

“그렇지. 그런데 이 바이러스는 인간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는구나.”


인류의 4대 문명은 큰 강 유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 이집트 문명은 세상에서 가장 긴 강 나일(the nile)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적도지방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하여 6,671km를 흘러 지중해로 들어가는 나일 강은 바다에 닿기 1,000km 쯤 전에 ‘나일의 제1 폭포’를 통과합니다. 이곳부터 바다에 이르는 곳까지가 바로 이집트입니다. 고대 이집트는 기원전 3,100년 경 파라오(pharaoh) 메네스(menes)에 의해 통일이 되었습니다. 이 때 멤피스(memphis)라는 수도와 1년을 365일로 정하는 역법과 최초의 상형문자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후로 파라오의 계보는 기원전 343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기까지 2,800년간 31개의 왕조로 이어졌습니다.

고대 이집트 역사에는 위대한 파라오들이 등장합니다. 최초의 피라미드를 건설한 3왕조의 조세르(zozer), 건축가이고 제사장이며 의사였던 재상 임호텝(imhotep)과 함께 2,300kg짜리 돌 2백30만개로 아름답고 완벽한 기자(giza) 피라미드를 건축한 4왕조의 쿠푸(kuhfu), 자신의 얼굴을 본 떠 ‘계곡신전’의 스핑크스를 만든 카프라(khafre),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올라 전성시대를 맞이한 12왕조의 파라오 아메네메트(amenemhet) 3세, 야곱의 자손인 히브리 족을 포함한 아시아계 이민족 통치자들(hyksos, 힉소스)의 지배로부터 다시 이집트를 통일한 18왕조(기원전 1570)의 아흐모세(ahmose), 파라오로서는 드물었던 여왕 핫셉수트(hatshepsut), 다신교인 이집트에서 유일신을 섬겼던 파라오 아케나텐(akhnaten), 9살에 파라오가 되어 ‘황금가면’을 쓴 미이라가 된 투탄카문(tutankhamun)이 그들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집트의 영광을 최고로 펼쳤던 파라오를 꼽으라면 바로 19왕조(기원전 1308-1186)의 람세스 2세일 것입니다. 대왕(the great)으로 불리던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279년부터 67년 동안 이집트를 지배하였으며, 모세가 300만 명이나 되는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의 파라오로 보고 있습니다. (*이 때의 파라오가 18왕조의 아멘호텝(amenhotep) 2세(기원전 1453-1419)라는 설도 있음)

그 당시 이집트의 서쪽에는 기원전 18세기부터 철기문화를 시작하여 강력해진 히타이트(hittites) 제국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점차 이집트 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두 제국은 충돌을 거듭했습니다. 드디어 람세스 2세는 히타이티(hittities)의 무와탈리스(muwatallis) 왕과 유명한 카데시(kadesh) 전투를 벌입니다. 물론 전투에서 패배하였지만 히타이트의 서진을 막고 시리아 지방 일부를 복속시킬 수 있었으며, 아프리카 남쪽까지 통합하여 이집트 왕조의 마지막 꽃을 피우게 됩니다. 아부 심벨(abu simbel) 신전(사진)이나 사랑하는 부인을 위한 네페르타리(nefertari) 신전들은 바로 그의 작품입니다.


“아빠, 그런데 파라오는 왜 피라미드를 만들었어요?”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이었단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던 것이었지.”

“그럼 파라오는 왜 미이라가 됐어요?”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를 그들의 태양신 호루스(horus)와 동일시했단다. 죽은 뒤에도 파라오는 여전히 신성을 유지하여 호루스의 아버지이며 죽은 자들의 신인 오시리스(osiris)로 변형되었지. 미이라는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나중이라도 영혼이 미이라를 부활시킬 때 얼굴을 알아보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구나.”

“아빠, 그런데요. 파라오와 바이러스가 무슨 관련이 있어요?”

흠... 이제 보니 제 얘기가 좀 장황했군요. 사실 오늘의 주인공은 바이러스인데 이 기회에 딸들에게 파라오 이야기를 좀 들려주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카이로의 이집트 고고학박물관에는 람세스 2세를 포함하여 11개의 미이라들이 누워있습니다. 그 중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 람세스 5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람세스 2세의 66년 후인 기원전 1,145년에 20왕조의 4대 파라오가 되었고, 람세스 4세와는 형제였는데, 불과 4년의 재위로 끝났으며, 30대 초반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미이라의 두상에 상처가 있었는데 람세스 6세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으며, 한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처럼 그 당시 권력이 강했던 제사장들의 ‘치정과 횡령’ 스캔들에 연루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학자들은 얼굴과 목에 매우 선명히 남아있는 곰보자국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100년 경, 신으로 불렸던 파라오 람세스 5세가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천연두(smallpox) 바이러스에 의해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대목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람세스 2세가 벌인 카데쉬 전투에서 옮겨온 것일까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 보다 200년 전인 기원전 1350년에 히타이트 족들이 이집트의 아멘호텝(amenhotep) 3세(아케나톤의 아버지)와 전쟁을 치른 후 포로로 잡아온 이집트 병사들을 통해 천연두가 퍼졌으며, 그로 인해 히타이트의 왕 무와탈리스의 할아버지 수피룰리우마스(suppiluliumas) 1세와 그의 왕자 뿐 아니라 많은 히타이트 사람들이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천연두 바이러스와의 첫 번째 전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