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07

작성일 2007-02-01 첨부파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예방접종(vaccination)이란 단어는 라틴어의 소(vacca, cow)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우두(cowpox)라는 병을 ‘vaccinia’라고도 합니다. 사람에게서 이와 유사한 반점과 곰보 흉터를 만드는 천연두(smallpox)는 ‘variola’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라틴어의 얼룩(varus, stained)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570년 로마제국이었을 때 스위스 아방쉬 지방의 집정관(marius of avenches)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된 단어임이 분명합니다. 'pox'란 말은 주머니(pock, sac)란 뜻인데 ‘small pox'란 말은 ‘great pox'라고 불리던 매독과 유사하긴 하지만 조금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아무튼 소가 예방접종이 된 데에는 다 그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기원전 1160년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생명을 빼앗아갔던 천연두는 그 이후 인류의 역사 속으로 내내 출현하여 죽음의 사자가 되었습니다. 1500년 경 콜럼버스와 마젤란이 탐험한 신세계의 원주민들은 유럽에서 옮겨온 천연두 바이러스로 인해 거의 몰살되었습니다. 20세기에 있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은 1차 1500만 명, 2차 5000만 명의 사망자를 내었지만 천연두는 무려 5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렇듯 천연두가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던 18세기에 구원의 손길이 준비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어느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하던 제너(edward jenner, 1749-1823)였습니다. 제너의 종두법(vaccination, 1798년)은 소의 우두를 이용하여 사람의 천연두를 물리친 최초의 방법이었으므로 이때부터 소는 예방접종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두견과(cuculidae)에 속하는 뻐꾸기는 우리나라 전역에 찾아오는 흔한 여름새입니다. ‘뻐꾹 뻐꾹’ 하는 소리가 정겨우며 생김새도 예쁩니다. 머리와 턱은 청색을 띄고, 목과 가슴은 회색이며, 배는 흰색에 짙은 회색의 가로무늬가 있습니다. 그런데 뻐꾸기에게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다르게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 한 마리의 암컷이 12개 정도의 알을 낳는데, 자신의 둥지가 아니라 개개비, 멧새, 노랑때까치, 붉은뺨멧새와 같은 다른 새의 둥지를 찾아다니며 1개씩 알을 낳아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더 이상합니다. 뻐꾸기의 알은 12일쯤 지나면 부화하는데 이 때 둥지를 보면 나머지 알들과 먼저 부화한 다른 새끼들이 모두 땅에 떨어져있고, 뻐꾸기 새끼만 홀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몹쓸 짓을 한 것일까요? 그 동안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어미 뻐꾸기였습니다. 아무리 자기의 새끼를 기르는 일에 관심이 없다고 하나 어미는 어미 아니겠습니까? 아마 어미는 둥지 주위를 맴돌다가 드디어 자기의 새끼가 부화되면 새끼를 위해 다른 알이나 새끼들을 떨어뜨려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학자가 어미의 혐의를 벗겼습니다. 그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런 짓은 바로 갓 부화한 뻐꾸기 새끼가 한 것입니다. 뻐꾸기 새끼가 다른 새끼나 알 밑을 파고들어서 들어 올린 후 밀어내 버렸던 것이지요. 그는 증거로 막 부화한 뻐꾸기의 새끼의 등에는 알을 밀쳐내기에 적당한 함몰 부위가 12일 정도 존재하다 사라진다는 해부학적인 특징과 뻐꾸기 어미는 그 기간 동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관찰일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영국의 왕립학회(royal society)는 그의 섬세한 보고를 채택하였고 어미의 혐의는 풀렸습니다. 하루나 이틀 만에 둥지를 독점한 새끼 뻐꾸기는 3주간 자기보다 몸집이 작은 다른 어미 새의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 후 둥지를 떠나는데 그 후에도 7일 이상이나 먹이를 받아먹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밝힌 학자가 누구냐구요? 바로 천연두 바이러스와 정면으로 싸운 38세(1787)의 의사 제너였습니다. 고화질 카메라도 아닌 맨 눈으로 이런 내용을 관찰한 그는 도대체 의사인지 조류학자인지 놀라울 뿐입니다. 그만큼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사랑했던 거지요. 그는 이듬해에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시골 버클리(berkeley) 교구목사의 여섯 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난 제너는 5세에 양부모를 여의었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그는 어릴 때부터 식물과 새와 화석과 샘물들을 좋아하였습니다. 의학에 일찍부터 관심을 보였기에 13세부터 8년간 외과의사 루드로우(ludlow)에게 배웠고, 그 후 3년간 영국의 왕립학회(royal society)의 회원인 외과의사 헌터(john hunter)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 그가 배운 것은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하라.’는 가르침이었는데, 결국 그의 생각은 실행으로 옮겨진 셈입니다. 이미 좋은 연줄을 가지게 된 그에게 왕립학회는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시골의사가 되기로 선택하였으니까요. 시골의사로서 뻐꾸기를 관찰하기도 하였지만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질병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 때 연구한 내용에는 협심증, 눈병, 천연두 등이 있습니다.

그 당시 천연두에 대처할 수 있는 치료는 쑤톤(sutton)의 방법이었습니다. 즉 천연두 환자의 물집에서 얻은 내용물을 칼에 묻혀 어깨의 피부를 살짝 긋는 것입니다. 물론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를 접종하는 것이므로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이런 시술을 하던 중 특이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분명히 접종을 했는데도 완전히 멀쩡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조사해 보니 그들은 우두에 걸린 소를 다루다가 손에 가벼운 우두를 이미 앓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1796년 5월 14일, 우두에 걸린 여인(sarah nelmes)의 손에서 고름을 얻어 8살 소년(james phipps)의 팔에 생채기를 내고 바릅니다. 참으로 위험한 시도였습니다. 다행히 소년은 가벼운 우두의 증상을 앓고 나서 빨리 회복되었습니다. 그 해 7월 1일이 되자 좀 더 과감한 실험에 도전합니다. 그 소년에게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접종하는 것 말입니다. 정말 다행하게도 그 소년은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후 자신의 한 살 된 아이를 포함하여 13명에게 시술한 결과를 손으로 써서 ‘시골의 한 지역(glostershire)에서 관찰한 우두의 자연경과’라는 제목으로 왕립학회에 보고합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시골의사의 보고서는 완전히 무시되었고, 거절당했으며, 기존에 세워진 법칙을 깨는 짓은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이보다 더 실망스러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맡은 시골은 그 후 2년간 천연두로부터 안전하였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2년 후에 그는 새로운 10명의 예와 먼저 13명이 아직도 안전하다는 75쪽짜리 내용을 다시 보고합니다. 이번에도 반대에 부딪혔지만 일부는 그의 이론이 도시에서도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는 런던의 천연두 예방접종 병원(smallpox and innoculation hospital)을 포함한 큰 병원들에게 예방접종에 필요한 우두 물질을 공급하였는데, 6개월간 접종을 받은 600명 중 한 명이 사망한 사건과 그의 공로를 가로채려한 피어슨(pearson)과 같은 의사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 외에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마치 해피엔딩임을 미리 알고 보는 영화와 같습니다. 그는 좀 더 좋은 우두 주사제를 개발하였고, 1800년부터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으로부터 인도의 작은 마을사람에 이르기까지 천연두 예방주사를 맞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879년, 당시 24세의 청년의사 지석영(1855-1935)이 그러한 일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제 세상은 천연두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천연두는 인간이 유일하게 정복한 바이러스 질환이며, 현재 한 연구소의 격리된 방에 봉인된 채 극소량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천연두 정복의 비결은 바로 우두와의 미묘한 관련성을 놓치지 않았던 예리한 관찰력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그의 발견은 갓 부화한 뻐꾸기 새끼의 등에 있는 함몰을 발견할 정도로 자연을 사랑한 시골의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의 덕에 천연두와의 전쟁은 마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를 보는 듯 뭉클하며 짜릿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