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08

작성일 2007-02-05 첨부파일

‘독’을 물리치는 또 다른 방법


농부들은 그들이 공들여 가꾼 담배 농작물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잎에 생긴 크고 창백한 점들은 마치 초록색과 노란색의 모자이크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세균으로 인한 전염병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누렇게 시들어 떨어져버린 농작물들은 늘어만 갔습니다. 왜 그럴까 궁금해 하던 28세(1892년)의 러시아 생물학자였던 이바노브스키(dmitri ivanovski)는 누런 담뱃잎을 따서 즙을 만든 후 건강한 식물에 뿌렸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건강하던 잎에도 모자이크가 생겼습니다. 분명히 즙 안에 범인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번에는 세균까지도 걸러낼 정도로 매우 가는 채를 이용하여 쥬스를 걸러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걸러진 쥬스는 모자이크를 유발하였습니다. 쥬스에 있는 범인은 세균보다 훨씬 더 작은 것이 분명합니다. 6년 후에(1898) 네덜란드의 베이에르닉(martinus beijernick)은 그 사실을 거듭 확인한 후 보이지 않는 그 범인을 ‘독(poison)'이라고 불렀습니다.

1933년에 독일의 루스카(ernst ruska)와 크놀(max knoll)이 전자 현미경을 발명하면서 이 ‘독’에 대한 연구는 다시 활발해졌습니다. 1935년 드디어 스탠리(wendell stanley)는 크기가 200nm(nanometer, 10-9m) 정도 밖에 안 되는 ‘독’의 결정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주로 단백질로 되어있으며, 그 속에는 유전인자(nucleic acid, 핵산)가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지요. ‘독’은 라틴어로 바이러스(virus)이고, 최초로 확인한 이 독은 담배에서 발견한 것이었으므로 이것을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tobacco mosaic virus)라고 불렀습니다. 드디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인간 앞에 보습을 드러내게 된 순간입니다. 사실 바이러스는 이집트 19왕조의 7번째 파라오 십타(merneptah siptah, 기원전 1193-1187)에게 소아마비를 일으켰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몸에 기생하며 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살아있는 유기체라면 결정형태를 띄지 않기 때문에 스탠리는 이 바이러스를 무생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생물에 감염된 경우 살아있는 세포 속의 단백질 공장을 교묘히 이용하여 다량의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증식과 유전이라는 생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생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캡시드(capsid)라고 하는 단백질 껍질은 살아있는 세포 속으로 들어가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마치 교묘한 열쇠와 같아서 세포에 있는 자물쇠(수용체, receptor)를 교묘히 속여 문을 열게 합니다. 다만 캡시드는 특별한 단백질만을 속여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종의 세포에만 감염이 되지요. 천연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정복되었던 이유는 이 바이러스의 유일한 숙주가 인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번 세포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면 껍질 안에 있던 바이러스의 유전자들이 작동하게 됩니다. 세포 속에 있는 공장은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마치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듯 열심히 복사(transcribe)하고 해석(translate)하여 증식시켜줍니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오파지 t4처럼 주인의 세포에 들어와서 주인의 dna를 이용하여 자신을 수천 개로 복제하여 세포를 파괴시킨 후 터져 나와 활개를 치는 것이 있는가하면(lytic infection), 박테리오파지 람다처럼 주인의 dna에 자신의 dna를 복제하여 끼워 넣은 후 오랜 기간을 같이 살아가는 것도 있습니다(lysogenic infection). 후자의 경우 바이러스 유전자는 오랜 기간 동안 별로 하는 일 없이 잠을 자면서 몇 세대를 거쳐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떤 요인이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자극하여 깨우게 되면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스스로를 분리하여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어떤 영화에서 모든 천재들은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관점을 본 적이 있는데 저는 그것을 보면서 혹시 바이러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4000여종의 바이러스가 존재하며, 그 중에 병을 일으키는 것은 약 100여종 된다고 하는데 혹시 이 중에는 천재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는 없을까 하는 좀 엉뚱한 생각 말입니다.

그 동안 인간은 수많은 전염병으로 인해 존재의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기원전 1147년경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에게 나타났으며, 그 이후 완전히 정복하였다고 선언한 1980년까지 5억 명의 사망자를 낸 천연두(smallpox), 기원전 431년 스파르타와 전쟁을 준비하던 아테네 시민의 1/3을 사망으로 몰아넣었던 홍역(measles), 1331년 중국 인구의 절반을 숨지게 하고 15년 후 크림반도에 상륙하여 5년 만에 유럽 인구 1/3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plaque, pest), 1812년 러시아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의 50만 대군을 몰살시켰으며, 러시아 혁명 당시 2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발진티푸스(typhus fever), 1831년 영국에서만 최소 14만 명의 사망자를 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821년(순조 21년) 1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콜레라(cholera), 1918년 세균이 밝혀지고 공중위생이 개선되어 전염병의 기억이 흐려졌을 때 찾아와 4개월 만에 2천만 명의 사망자를 내었고, 우리나라의 14만 명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 가까이 죽게 했던 ‘스페인독감(spanish flu)’, 1981년에 첫 환자가 보고되었고, 인간을 직접 죽이지는 않지만 면역계통을 서서히 파괴하여 다른 세균들이나 암세포를 불러들임으로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가며, 보균자가 4000만 명이고, 사망자가 25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 바이러스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쥐벼룩’으로 인한 흑사병, ‘이’로 인한 발진티푸스, 세균으로 인한 콜레라를 제외하면 모두가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최신 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에볼라(ebola)',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증후군)',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뿐 아니라 일본뇌염, 유행성출혈열, 간염, 광견병, 풍진, 소아마비 등 많은 바이러스들이 아직도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많은 ‘독’들을 모두 물리칠 뾰족한 방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세균을 죽일 수 있는 아무리 강한 항생제도 바이러스에게는 무용지물입니다. 세포 속에서 사는 바이러스를 죽이려들다가는 세포들까지 다 파괴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래도 방법을 꼽으라면 예방접종을 통해 미리 병을 가볍게 앓아두어 백혈구들이 바이러스에 대비한 특수부대(항체, antibody)를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이러스와 접촉하지 않도록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항상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여 바이러스가 힘을 쓰지 못할 정도로 훌륭한 방어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이 ‘독’으로 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것들이 많은 ‘독’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게 해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치료할 수 없는 바이러스 질병에 대해서, 지금은 미처 생각하기 어려운 아주 간단한 방법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를 들면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크게 소리 내며 기쁜 웃음을 웃을 때, 다른 사람을 칭찬하거나 격려할 때, 남의 허물을 용서할 때, 아침 일찍 동네 길거리를 청소할 때... 뭐 그런 걸로 말입니다. ‘독’을 물리치는 방법 치고는 좀 이상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