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10

작성일 2007-02-14 첨부파일

손을 씻어야 하는 이유


남부 브라질 리오그란데 도 솔(rio grande do sol) 지방 사람의 눈을 검사해 보면 5명 중 1명은 망막(retina)에 특이한 흉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실명한 사람들을 꽤 볼 수 있습니다. 본인들은 왜 실명하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이런 흉터를 갖게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망막에 왜 이런 나쁜 흉터를 갖게 된 것일까요?

“아빠. 혹시 그 지방에만 있는 유전병이나 풍토병은 아닐까요?”

“흠... 그럴 듯하구나.”

그렇지만 그런 이유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망막을 검사해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이런 흉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흉터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좀 많이 생긴다는 의미이지 그들에게만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실명을 했다는 것은 망막 사진에서 조금 검은 오른쪽 중앙 부위 즉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망막의 중심부(황반부, macula)에 흉터가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그나저나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무시무시한 짓을 한 것입니까?

놀랍게도 이 흉터는 단세포로 된 가장 하등한 생물이며, 세포를 둘로 나누어 종족을 번식하고(사진), 때로는 곰팡이처럼 발아에 의하여 생명을 유지해나가며, 가짜 다리(위족)나 털(섬모) 하나 없어서 이동할 때도 미끄러지는 동작으로 움직이는, 어쩌면 동물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원시적인, 그래서 이름도 원생동물(protozoa)에 속하는,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이라는 기생충 때문입니다.

단세포 동물인 아메바도 원생동물이랍니다. 그런데 이런 원시적인 단세포 동물들이 세계적으로 5만종이나 된다고 하니 놀라운 따름입니다. ‘톡소포자충’이라 불리는 이 ‘놈’은 매우 집요하여 땅에 사는 사람, 가축, 야생동물을 감염시키고, 심지어는 새까지 감염시키더니, 최근에는 물에서 사는 수달까지 손을 뻗쳤답니다. 또한 눈, 뇌, 비장, 간과 같은 중요한 장기 뿐 아니라 적혈구를 제외한 모든 세포에 파고들어 감염시킬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한 ‘놈’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놈’이 세 가지 형태로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로운 리오그란데 도 솔 지방에 고양이가 한마리가 새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날렵한 솜씨로 사냥에 성공하였군요. 고양이가 이 새를 잡아먹을 때 새에게 있던 10um 크기의 기생충 홀씨(oocyte, 홀씨소체)가 같이 들어왔군요. 홀씨는 고양이 위장 세포를 침입하여 3주 이내에 수백만 마리로 분열합니다. 홀씨는 고양이 똥에서 ‘반달’(빠른분열소체, tachyzoite)로 형태를 바꾼 후 건조나 열에 버티며 오랜 기간을 살아남습니다.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은 바로 ‘반달’에 감염된 고양이 똥을 입에 대는 경우입니다.

어떻게 그 더러운 것을 입에 댈 수 있냐고요? 고양이 똥을 치우거나 야외에서 고양이 똥이 묻은 자리를 손으로 만진 후 모르고 입에 대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 외에도 완전히 익히지 않은 고기나 계란을 먹거나, 이것을 요리한 칼이나 물을 만졌거나, 약수를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드물긴 하지만 수혈로도 가능하구요.

위액에서도 살아남은 ‘반달’은 세포 속으로 기어들어간 후 ‘알’(느린분열소체, bradyzoites) 형태로 몸을 또 한 번 바꿉니다. 이러한 알 형태는 주머니(cyst)에 싸여 있게 되는데 무려 3,000개가 하나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 주머니는 세포막과 섞여서 면역세포들이 공격할 때 알들을 보호하는 방패막이 되어줍니다. 알들은 세포 속에서 편안히 수년간 잠을 잘 수 있지요. 그러다가 주머니가 터지게 되면 알들은 여기저기로 퍼져서 다양한 염증을 일으키게 됩니다.

혈액을 통해 항체를 검사해 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40%가 자신도 모르게 이 기생충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사람의 면역(저항력)은 이 정도의 단세포 생물쯤은 넉넉히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앓더라도 감기나 몸살 증상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에이즈(aids)나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처럼 저항력이 현저히 떨어진 사람이나 영아나 산모들에게 이 기생충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임신 3개월 이내의 감염은 유산으로, 영아의 감염은 뇌염이나 황달로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임신 전 검사에서 항체가 있다면 예전에 감염이 된 적이 있다는 것이며, 오히려 임신을 해도 됩니다. 그러나 항체가 없다면 감염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합니다. 뇌를 포함한 다른 장기의 염증은 주로 면역이 떨어지면서 재발된 것이지만, 포도막염은 건강한 사람에게서도 재발로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위험성이 있는 사람들은 감염 예방을 위해 꼭 주의할 점들이 있습니다. 야외에서 땅을 만지는 경우 장갑을 끼어야 하고, 고양이를 키운다면 전용 화장실을 따로 마련해 주고, 집에 들어오면 꼭 비누로 손을 씻고, 생고기를 다룬 기구들은 뜨거운 물로 소독하고, 고기는 중심부까지 완전히 익혀야 합니다. ‘그럼 고양이를 기를 수 없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몇까지 주의사항을 지킨다면요.’ 즉 고양이를 집 안에서만 길러서 새나 쥐를 잡아먹지 못하게 하고, 음식물 부스러기 대신 고양이용 캔이나 마른 먹이를 먹이고, 길 잃은 고양이를 집에 들이지 말고, 고양이 변은 건강한 사람이 매일 치우게 합니다.

한 번 감염된 고양이는 계속 문제가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양이는 감염된 후 수 주일간만 기생충을 퍼뜨립니다. 사람처럼 고양이도 첫 감염 때는 증상이 거의 없으므로 고양이가 감염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집에 들어오면 비누로 손을 씻는 단순한 일이 기생충으로 인한 실명을 예방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한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