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11

작성일 2007-02-21 첨부파일

베이비부머(baby boomer)들의 당면과제


이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창 출생률이 높았던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붐(baby boom) 세대라고 합니다. 이들은 전쟁을 몸소 겪었던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반전운동, 히피문화, 록음악, 성해방, 시민의 권리운동 등 다양한 사회문화운동을 주도해 왔고, 냉전, 에너지 위기, 베트남 전쟁과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경제적인 성장과 풍요, 교육과 과학기술의 발전, 우주선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세대입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높은 교육수준, 미디어의 이용, 행동주의, 특별의식, 권위거부 그리고 건강에 대한 관심과 같은 공통된 특징들이 있습니다.

미국 투자회사 스쿠더 인베스트먼츠(scudder investments)의 부회장인 밥 프뢰리히(bob froehlich)는 자신의 최근 저서 ‘investment megatrends'에서 7,8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들을 잡으려는 미국기업들의 치열한 시장경쟁에 대하여 주목하였습니다. 그는 이들의 새로운 소비구조와 패러다임을 언급하면서 미래에 가장 전망이 밝을 것으로 예견되는 회사 5개를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고품질의 개인화된 재정자문을 받을 수 있는 미국의 대표 투자은행인 메릴린치(merrill lynch), 좋아하는 사양의 pc를 주문 즉시 배달해주는 맞춤형 pc 전문회사 델(dell) 컴퓨터, 알라스카로 가는 멋진 크루즈여행 상품을 가진 크루즈 여행 전문업체 카니발(carnival cruise), 저칼로리면서도 미국인이 좋아하는 맛을 내는 미국 라이트 맥주시장의 선도자 몰슨 쿠어스(molson coors), 120년의 역사를 가진 믿을 수 있는 전문 의약품 제조회사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 회사들의 공통점은 세계적인 명성이나 업계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지금 또는 미래에 베이비부머들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인구의 30%를 차지하지만 1인당 평균 8억 원(86만 달러)의 자산을 보유함으로 미국 전체 자산의 67%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 신실버층(new silver class)은 이제 60세가 되었으며, 은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보는 미국 경제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핵으로 떠오를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에 비하여 또 한 번의 전쟁을 더 겪은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하여 베이비붐 세대가 10년 정도 늦습니다. 보통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라고 하면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약 810만 명(전체인구의 16.8%)을 의미합니다. 이제 막 50세를 넘어서고 있는 이들 또한 전 후 급변했던 한국의 여러 모습 속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은 우리에게 그 존재조차 불분명한 ‘낀 세대’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일제식민시절과 한국전쟁을 겪은 부모님으로부터 ‘너희는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가난과 싸워야했던 학창시절, 유신통치에 가슴의 소리를 밖으로 내지 않고 조용히 순응했던 대학시절,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기 위해 일만했던 회사원 시절, 그러다 항쟁의 시대에 ‘넥타이부대’로 참여해 보았지만 주력이었던 386 후배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던 시절들을 겪었고, 이제는 회사를 은퇴하기에 너무 젊고 도전하기에는 늙어버린, 주산의 마지막 세대이자 컴맹의 1세대이며, 부모님을 모시던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들에게서 소외를 당하는 첫 세대이기도 한 그들 말입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와 비교하면 참으로 초라한 성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비록 그들의 목소리와 행동은 작았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한국은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전후의 한글세대로서 그들은 민주주의적 가치관을 구체화시켰고, 관심 밖이었던 기층문화를 70년대 대학가에서 ‘민중문화’로 부활시켰으며, 몸소 노동의 가치를 보여주며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으니까요.

어느 날, 이처럼 화려한 미국의 베이비부머에게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엇이냐구요? 갑자기 눈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 리모콘을 잡고 우연히 한쪽 눈을 감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숫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눈을 감은 채 화면을 보니 역시 중심부가 보이지 않았지요. 한 쪽 눈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사물이 약간 흔들려 보이는 증상이 있었던 것도 같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는 안과에서 검사를 받은 후 황반변성(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 나이관련황반변성)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현재 5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미국 베이비부머들은 이 질환으로 인해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20세 이상 모든 성인을 놓고 보면 당뇨망막병증(diabetic retinopathy)이 가장 높은 실명의 원인이지만 60세 이상만을 본다면 단연 황반변성이 가장 높은 원인입니다. 2002년 12월호 눈 수술 소식지(ocular surgery news)에 의하면 미국에서만 6백만 명이 이 질병으로 시력을 소실하였고, 거의 1,500만 명 정도가 증상이 생기기 직전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3천만 명 이상의 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75세가 되면 3명 중에 한 명이 황반변성이며, 미국에서는 해마다 20만 명의 새로운 환자들이 생깁니다. 이것만큼이나 베이비부머를 위협하는 것이 또 있을까요?

한국의 베이비부머 여러분! 이 나라의 정신을 지키고,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많은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갔던 당신들은 정녕 보배입니다. 이제 어깨를 펴고 힘을 좀 내십시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활동해야할 시기입니다.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 봅시다. 그리고 10년 앞서간 미국의 베이비부머들을 통해 교훈을 얻어 봅시다. 지금부터 잘 준비한다면 10년 후면 당면하게 될 황반변성의 문제 또한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32세에 세상을 떠났던 슈베르트는 ‘음악에 부쳐(an die musik/to music)'라는 가곡을 만들었습니다.

진회숙님의 ‘클래식 오딧세이’에 보면 이 노래의 가사를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에게 바친다고 하는군요. 한 번 감상해볼까요?


그대 아름답고 즐거운 예술이여!

마음이 울적하고 어두울 때

그 아름다운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언제나 즐거운 기운 솟아나

마음의 방황 사라집니다.

누구의 멜로디일까요.

꿈결 같은 그 멜로디에

내 마음 어느덧 불타는 정열의 나라로 들어갑니다.

때로는 그대 하프에서 한숨이 흘러나오고

때로는 그대의 달콤하고 성스러운 화음이

더 좋은 시절의 하늘을 내게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그대 아름다운 예술이여!

나는 그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