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12

작성일 2007-02-28 첨부파일

꺼져가는 심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마태복음 12장)


아래의 미국지도는 좀 특별합니다. 이것은 2003년 미국인의 시각장애자 분포를 표시한 지도인데,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만들어내는 통계청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지도에 따르면 시각장애자는 미국 전체에 약 3% 정도인데, 미국의 3억 인구 중에 40세 이상의 인구를 1억2천만 명으로 잡으면 3백6십만 명이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통계를 바탕으로 시각장애자들에 대한 정책을 결정합니다. 주 별로 시각장애인 비율이 다른 것은 나이와 인종과 성별의 분포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자는 약 15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중 15%에 해당하는 22만 명이 시각장애인이라고 합니다. 국내에 등록된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 중등도 이상의 장애인들이므로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까지 고려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시각장애자들을 체계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먼저 정확한 통계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시간에 전쟁 후 출생률이 증가했던 1946-1964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의 베이비부머(babyboomer)의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올해로 42세에서 60세가 되는 이들은, 황반변성(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amd), 나이관련황반변성)이라는 큰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 질환은 바로 연령이 많은 사람들을 실명에 이르게 하는 가장 많은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2006년 5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brussels)에서는 21개국의 정책대표자들과 의료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황반변성국제연합(amdai, amd alliance inteRNAtional)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때 나온 보고서를 보면 황반변성이 이미 유럽을 포함하여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문제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2002년의 기록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시력장애를 가진 사람은 1억 6천만 명인데, 황반변성은 백내장과 녹내장에 이어 실명의 세 번째 원인이라고 합니다. 또한 황반변성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명이나 되며, 매해 50만 명의 새로운 환자가 생기고 있고, 유럽의 상위 5개국은 이 문제로 7억 유로(약 8,400억 원)에서 3조 유로(약 3,600조 원)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3조 유로라면 우리나라 2007년 예산(약 240조 원)의 무려 15배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그러나 금년 2월에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인의 80%가 이 병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쯤 되면 황반변성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전 세계의 노인 연령대에서 얼마나 깊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혹시 황반변성이 나이와 인종과 성별에 따라 어떤 차이를 보일지 궁금해졌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병은 남녀가 동일하며, 연령이 높을수록 잘 생기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이 병이 백인에게 많고 흑인에게는 적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흑인에게 적은 것일까요?

가설 중 하나는 홍채의 색깔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백인의 홍채는 색소가 적어서 빛을 덜 흡수하게 되므로 눈 속으로 들어가는 빛의 양이 많아져 망막이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황반변성이 빛과 관련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으로 망막이 50년 이상 빛을 보게 되면 빛에 의한 손상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망막은 비닐 세 겹에 해당하는 100um 두께의 얇고도 예민한 신경막인데, 노화가 되면 망막도 조금씩 약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상 자외선을 비롯하여 태양의 유해한 광선들은 끊임없이 망막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러한 것을 해결해주는 장치들이 작동을 하겠지만 결국 그런 장치가 노화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게 되면 망막이 손상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색소가 적은 홍채를 가진 눈은 진한 홍채를 가진 눈보다 들어가는 빛의 양이 많을 것이라는 연구는 없습니다만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내용입니다.

유전적 요인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통계를 보면 황반변성 환자의 5명 중 1명은 가족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현재까지 망막질환과 관련된 유전자는 21개로 알려졌는데 어떤 유전자가 황반변성의 범인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몇 연구에서 1번 염색체에 위치하고 있는 abcr 유전자의 변이가 황반변성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abcr 유전자는 평소에 망막의 시세포가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게 하는 단백질을 만들고 있는데, 선천적으로 이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시세포가 변성되면서 누런 지방 성분의 찌꺼기들이 알갱이처럼 시세포의 아래에 침착되는 질환들이 생깁니다. 그 외에 1번 염색체에 있는 cfh 유전자의 변이도 황반변성에 관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황반변성 환자들을 뵐 때마다 그 분들의 깊은 상심을 보게 됩니다. 이 병은 유전 뿐 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를 둘러싼 환경과 모든 생활습관의 결과로 온 것이라는 생각에 때로는 우울증을 가져옵니다. 실제로 2006년에 미국에서 황반변성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분들의 우울증이 정신병적 기준까지 도달한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상당수가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으며, 그 우울증이 시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모든 고가의 치료방법이 황반변성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더 이상의 진행을 막아서 현재 저하된 시력을 어떻게든 유지해보려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 근본적인 우울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자신들의 눈이 마치 꺼져가는 심지와 같다고 하소연 하시는 그분들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분들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 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치료를 시작하면 앞으로 증상이 나빠질 가능성을 상당히 많이 막을 수 있으며, 5명 중 1명에서는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 분들에게 이러한 희망을 전달하고, 낙심을 이기며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한 갈대를 일으켜 세우고, 꺼져가는 심지를 살려내는 노력은 이제 모든 인류의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