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13

작성일 2007-03-07 첨부파일

황반변성의 범인들


우리의 눈 속에는 망막(retina)이라고 하는 비닐 세 겹 정도(100um)의 얇은 신경막이 벽지처럼 발라져 있습니다. 동공을 통해 사진을 찍어보면 불그스름한 망막의 중심부에 진한 갈색점이 보입니다. 다른 부위에 비해 황색 반점이 진하게 아롱져있다고 하여 이 점을 황반부(黃斑, macula)라고 합니다. 황반부는 내가 보려고 하는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부위입니다. 황반부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보려고 하는 중심 부위가 보이지 않게 됩니다. 황반변성(macular degeneration)이란 바로 이 점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입니다.

황반부는 사물을 보는데 가장 중요한 부위입니다. 따라서 시세포들이 가장 활발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많은 혈관들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곳 중심부 망막에는 혈관이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 눈이 더 잘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혈관이 있다면 빛이 들어오다가 혈관에 가려질 수 있으니까요. 또한 이곳에는 128개의 색을 구별할 수 있는 600만개의 원뿔세포(cone cell)들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불과 직경 500um도 안 되는 황반부는 우리로 하여금 우주 삼라만상의 오묘함을 보게 하는 작은 문입니다.

그렇다면 황반부는 혈관 공급을 어디서 받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망막 아래에 온돌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맥락막(choroid)이라고 하는 얇은 혈관층에서 옵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혈관으로 황반부가 버틸 수 있을까요? 즉 이렇게 얇은 신경막이 하루도 쉬지 않고 50년 이상 빛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으니까 언젠가 혹시라도 혈액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망막은 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일생동안 자신의 일을 하나의 오차 없이 시행하고 있군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맥락막에 흐르는 혈류가 뇌 혈류보다 더 많이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망막이 그렇게 건강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지만 50세 이상의 일부 어르신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세포가 노화가 되면서 망막과 맥락막 사이에 드루젠(drusen)이라고 하는 기름 찌꺼기들이 끼게 되니까요.

문제는 이 찌꺼기들이 황반부 아래에 흐르는 맥락막 혈관으로부터의 산소공급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혈액이 충분히 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황반부는 산소부족 상태가 되자 맥락막은 응급상황임을 선언하고 긴급 복구작업에 나섭니다.

즉 황반부를 살리기 위해 맥락막은 더 많은 혈관들을 놓기로 한 것이지요. 드디어 새로운 혈관(신생혈관, new vessel)들을 만들어 내는 공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신생혈관은 정상적인 혈관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약하여 간혹 물이 새어 나오거나 터져버릴 때가 있습니다. 또한 신생혈관들이 망막을 뚫고 위로 자라나서 망막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황반부 아래의 맥락막 신생혈관에서 물이 새거나 피가 나면 그에 해당하는 증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황반부의 얇은 신경막(망막)이 부어서 쭈글쭈글해지고, 피가 나며, 시세포의 기능이 떨어지게 되면 그에 해당하는 증상들을 겪습니다.

중심부의 초점이 흐려지고, 사물이 휘어져 보이며, 검은 점이 앞을 가린 것처럼 보입니다. 흰 바둑판에 그려진 검은 줄무늬(암슬러 격자, amsler grid)들을 보면 그 증상들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도대체 이런 황반변성을 일으키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황반변성은 50세 이상에서만 생기므로 노화를 빼 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모든 노인들이 생기는 것은 아니므로 다른 어떤 원인들이 관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연구된 바에 의하면 백인, 유전, 고밀도지단백(high density lipoprotein)의 증가, 고혈압, 알코올 섭취, 흡연, 자외선 등이 일차적인 원인으로 의심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면, 인종과 유전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해도 다른 것들은 바꿀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지방섭취를 줄이고, 체중을 조절하며, 금주와 금연을 하고, 자외선이 강한 야외에서는 색안경을 사용하며,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망막에 좋은 과일과 야채를 섭취하는 것 말입니다. 너무 쉬워서 바꾸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어 봅시다. 그렇게 바꾸는 것은 밝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보장해주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한번 바꿔보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