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15

작성일 2007-05-09 첨부파일


파레토(pareto)와 롱테일(the long tail)


1897년에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는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1941년 미국의 산업기술가이며 자선가인 주란(joseph m juran, 1904-)이 경제학에 인용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80대 20의 법칙’으로 알려진 파레토의 법칙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생산량의 80%는 20%의 우수 사원에 의해 이루어진다’라든지 ‘전체 매출의 80%는 핵심 고객 20%가 올리고 있다’는 내용이 그 예입니다. 파레토의 법칙에 따르면 핵심고객을 선택하여 그들에게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이 곧 성공의 비결입니다.

이러한 법칙은 ‘20%의 20%(4%)가 80%의 80%(64%)를 차지한다’는 파레토의 분포(pareto distribution, 64대 4의 법칙)로 확장되면서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버드 대학 언어학 교수 지프(goerge kingsley zipf, 1902-1950)는 파레토의 법칙을 적용하여 극도로 많이 쓰이는 소수의 단어와 제한된 횟수로만 사용되는 대다수의 단어로 구분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고 이것을 ‘지프의 법칙’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것은 1986년 모토롤라(motorola)의 빌 스미스(bill smith)에 의하여 백만 개 당 3.4개 이하의 결점을 뜻하는 식스 시그마(6 sigma)와 같은 질적 관리방법론에 적용이 되었으며, 후에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이 이를 이용함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에 코흐(riCHArd koch)에 이르러 이것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라고까지 불리기에 이르렀습니다.


'롱테일(the long tail) 법칙'은 미국 잡지상(national magazine award)을 수상했던 인터넷 비즈니스 잡지인 와이얼드 매거진(wired magazine)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 2004년에 언급한 것입니다. 이것은 파레토의 ‘80대 20 법칙’을 무너뜨린 것으로 ‘역파레토 법칙’이라고도 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amazone.com)'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현실 세계의 서점에서는 파레토의 ‘80대 20 법칙’에 따라 잘 팔리는 20%의 책이 80%의 매출을 일으키므로, 서점 경영의 핵심은 '잘 팔리는 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진열하는가'였지요. 미국 최고의 서점 체인 ‘반즈 앤 노블(barnes & noble)’는 판매 랭킹 13만등까지의 저서를 진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조금 달랐습니다. 아마존은 무려 230만 종에 가까운 책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아마존에서 1년에 단 몇 권밖에 팔리지 않는 '흥행성 없는 책'들의 판매량을 모두 합했더니, 놀랍게도 '잘 팔리는 책'의 매상을 추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롱테일’은 인터넷과 디지털이 만들어 내고 있는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화두입니다.

이베이(ebay)가 그동안 무시당해왔던 영세 중소 사업자들과 소비자들을 연결해주며 급성장했고, 구글(google)이 포춘 500대 기업 같은 대형 광고주가 아닌 꽃배달업체, 빵집 같은 '자잘한' 광고주들을 모아 엄청난 이익을 올린 것은 롱테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마케팅에서 무시되어 왔던 '사소한 다수(80%)'의 반란이 일어난 셈입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처럼 80과 20의 세상에서 '90대 10의 틈(gap)'이 숨어있었습니다. 이것은 2004년 멕시코에서 열린 제 8차 ‘세계건강의 평등을 위한 보건연구(health research for equity in global health)’ 세미나에서 나온 말로 ‘전 세계의 가난한 90%가 겪는 건강문제에 대해 전 세계에서 사용된 비용은 10%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강자의 ‘80대 20의 법칙’과 약자의 ‘롱테일의 법칙’ 속에 숨어있는 ‘90대 10의 틈’이 요즘 유난히 커 보여서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이러한 ‘80대 20의 법칙’이나 ‘90대 10의 틈’을 황반변성(나이관련황반변성, 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황반변성이란 50세 이상에서 망막 중심부(황반부, macula)에 기름 찌꺼기(드루젠, drusen)가 끼면서 발생하는 변성질환으로 65세 이상 중에서 무려 10%나 실명을 하게 되는 원인 질환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구요? 흠... 내용은 이렇습니다.

황반변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축성(atrophic, dry 건성)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삼출성(exudative, wet 습성)형태입니다. 위축성이란 망막 아래에 낀 찌꺼기로 인해 그 주위에 있는 시세포와 혈관조직들이 서서히 위축되어 시력을 조금씩 잃게 되는 형태로 황반변성의 약 90%를 차지합니다. 삼출성이란 망막 아래에 낀 찌꺼기로 인해 망막아래에 있는 혈관층(맥락막, choroid)으로부터 망막으로 혈액공급이 원활해지지 않게 되자 맥락막이 새로운 혈관들을 만들게 되는 형태인데 결국 이 새로운 혈관들이 망막을 뚫고 자라서 망막을 파괴해 버림으로 실명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삼출성은 황반변성의 약 10%를 차지합니다. 문제는 황반변성으로 인해 실명을 하게 되는 경우의 90%가 바로 황반변성의 10%를 차지하는 삼출성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현재 세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치료제들은 황반변성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삼출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새로운 치료제들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연구비들이 투자되었으며, 결국 신생혈관을 억제하는 좋은 약들이 최근에 개발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약들은 한번 주사 하는데 100만 원 이상으로 매우 비싸다는 것이며, 매달 맞아야 하고, 사용을 중지하면 다시 나빠지므로 2년 이상 오랜 기간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어르신들 중에 이러한 고가의 약물을 선뜻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도 ‘80대 20의 법칙’을 적용해보면 삼출성 황반변성을 가지고 계신 어르신들의 20% 정도는 이용할 수 있겠지만 아마 나머지 80%는 실명과 치료비를 저울질 해 보아야 하는 처절한 고민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안과 의사들에게 별로 급하지 않은 위축성 형태를 보이는 대다수의(90%) 황반변성환자들은 또 어떻습니까? 그분들도 시력이 서서히 저하되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데 치료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는 이분들을 뵙게 되면 ‘90대 10의 틈’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제 소망은 황반변성 치료에 있어서 ‘롱테일 법칙’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계기 말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중저가의 아바스틴(avastin) - 나중에 한 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 치료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하는 건강한 식생활습관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황반변성에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질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미리 생각하고, 세밀하게 준비해야만 하는 그런 대책 말입니다. 조만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야 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