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19

작성일 2007-06-11 첨부파일


소녀의 꿈


최근 80년간 카나다 과학자들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1922년에 밴팅(sir frederick banting)에 의해 발견된 당뇨병 치료제 인슐린으로부터 시작하여 1930년대부터 사용된 결핵 백신, 낭성 섬유증(cystic fibrosis)를 일으키는 유전자의 발견, 알츠하이머병 (alzheimer disease)과 아포리포프로틴(apolipoprotein)과의 유전적 관련성을 밝혔던 것들이 바로 카나다 과학자들 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150억불 규모에 6만 명의 종사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미국에 이어 명실상부한 생체공학계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카나다는 현재 전 세계 신약개발 시장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발견하는데 25%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3년에는 10억불이 생명과학연구에 투자되었고, 제약업계에 신약개발을 위해 또 다른 10억불이 투자되었습니다. 그 결과 2004년에는 500종의 치료제품이 카나다 생약연구소(biopharma research lab)에서 개발되었습니다.

카나다의 성공은 대학, 연구기관, 정부연구소 등이 함께 모여서 생명공학의 집단(cluster)을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퀘벡, 몬트리올, 토론토, 밴쿠버와 같은 도시들이 그 중심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회사를 셋만 꼽으라면, 합성인공뼈의 생체물질과 성장인자들을 개발한 킹스턴(kingston)의 밀레니엄 바이오로직스(millenium biologix)이고, 다른 하나가 세계적인 식품위생관리 회사인 퀘백의 워넥스(warnex)이며, 마지막으로 밴쿠버에 있는 큐엘티(quadra logic technologies)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큐엘티는 1981년 카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british columbia) 대학 교수팀이 세운 것으로 현재 북미지역의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회사입니다. 2003년에는 헬렌켈러 재단(helen keller foundation for research and education)에서 주는 상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회사에서 개발한 약물이 현재 73개국, 30만 명 이상의 환자들에게 사용되어, 실명을 막는데 기여하였기 때문입니다. 매우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그 약물 하나로 보잘 것 없었던 이 회사는 전 세계를 주름잡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1934년, 싱가포르에서 한 소녀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그녀의 이름을 줄리아 레비(julia levy)라고 지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싱가포르에 있는 네덜란드 은행의 간부였습니다. 이차대전이 시작되자 싱가포르에도 전쟁의 불안이 엄습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내와 두 딸을 모두 카나다의 브리티쉬 콜럼비아의 친척 집으로 보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걱정하던 대로 일본군이 들이닥쳤고, 그녀의 아버지는 잡혀서 수용소에 가두어졌습니다. 수용소에서 견디기 힘든 생활을 했음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밴쿠버(vancouber)에서 가족들을 재회했지만 이미 아버지는 전쟁의 충격으로 가족들을 부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어릴 때 자주 들은 말은 ‘아버지를 괴롭히지 말라’였습니다.

가족의 부양은 어머니 차지였습니다. 어머니는 정신치료사로 일을 하였으며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레비는 어려서부터 피아노 선생님이 꿈이었으며, 비발디의 플롯 콘체르토(vivaldi’s flute concertos)와 생물학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녀는 생물학 공부를 하면 언젠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모자라는 학비를 벌기 위해 수자원전력공사에서 사환 일도 하였습니다. 결국 밴쿠버의 브리티쉬 콜럼비아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고, 미생물학과 면역학을 전공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영국 런던 대학(university of london's national institute for medical research)에서 실험 병리학을 공부하여 25세에 박사가 되었으며, 다시 모교로 돌아와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암 세포의 항체를 연구하는 팀의 일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첫 번째 결혼이 불행하였고, 이혼의 아픔을 겪었으며, 35세에 재혼하여 작은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레비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8살 난 아들에게 집 주위에 있는 덤불을 뽑으라는 임무를 주었습니다. 아들은 그 일을 즐거워하며 매우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야생당근(cow parsley)이 있는 곳을 베고 있었고, 야생당근의 풀물이 아들의 팔에 묻어 있었는데, 갑자기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자 풀물이 묻은 아들의 팔에 여기저기 물집이 잡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에게 뜨거웠던 그 날은 잊지 못할 날이 되었습니다.

연구실로 돌아온 그녀는 야생당근의 이파리에 태양 빛을 받으면 피부세포를 포함한 조직을 공격하고 파괴할 수 있는 어떤 빛에 예민한 광감작물질(photosensitizer)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물질을 빛과 함께 이용하면 나쁜 조직을 파괴할 수 있는 치료법(photodynamic therapy, 광역동치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포토프린(photofrin)이라는 물질을 찾아내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카나다에 생명공학회사가 없었기 때문에 약물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외국계 회사에 그 동안 연구했던 내용의 권리를 파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녀의 팀은 대학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 외국에 그 권리를 파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힘을 모아 자신들의 벤쳐회사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그녀는 집을 담보로 5만불(5천만원)을 보태었고, 빵집 위에 있는 방 하나를 빌려 연구소 겸 회사를 삼았습니다. 바로 이곳이 qlt(quadra logic technologies)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은 학교 일이 끝나면 이곳에서 포토프린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젊은 날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광역동치료로 포토프린을 이용했더니 항암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1986) 큐엘티는 포토프린이란 약을 암치료제로 이용하기 위해 미국 싸이아나미드(american cyanamid)사와 제휴를 하였습니다. 그 후 9년의 실험과 연구 끝에 (1995) 드디어 암치료제로 포토프린을 사용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게 됩니다. 레비는 바로 그 해에 큐엘티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되었으며, 그녀가 ceo로 선출되자 큐엘티는 혁신적인 업적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10년 전에 (1986) 어머니가 나이관련황반변성으로 실명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녀로 하여금 황반변성치료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병에 광역동치료를 도입하려고 하였습니다. 5년 후인 2000년에 큐엘티는 포토프린의 권리를 팔고 벌테폴핀(verteporfin)이라는 광감작물질의 사용권을 따냅니다. 이 물질이 바로 비쥬다인(visudyne)으로 불리며 나이관련황반변성을 광역동기전으로 치료하는 약물입니다.

광역동치료는 암의 생존에 꼭 필요한 신생혈관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이것을 이용하여 황반변성에서 망막을 파괴하는 신생혈관을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나이관련황반변성 치료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04년 큐엘티는 황반변성 치료의 리더가 되었으며, 황반변성 치료제로만 5억불(약 5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 소녀의 어린 시절은 불운하였지만, 생물학 공부를 통해 남을 도우려는 자신의 꿈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며, 결국 이루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꿈을 이루기 위하여 선택권(option)을 열어두라고 권합니다. 그렇게 하면 내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을 때, 그 길을 당당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구요. 이 소녀는 아들의 팔에 생긴 물집과 어머니의 실명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애정 어린 마음으로부터 새로운 선택권을 얻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