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22

작성일 2007-07-09 첨부파일

아름다운 백발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잠 20:29]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 1931-1990)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라는 책에는 인도의 뱅골어로 아름다운 시를 써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보름달이 뜬 밤에 이런 일이 있었다. 타고르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나룻배 안에 앉아 촛불을 켜 놓고 크로체(benedetto croce)가 쓴 유명한 미학 논문을 읽고 있었다. 크로체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대표적인 저서를 남긴 철학자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면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크로체는 다양한 각도에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사색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타고르 자신도 미의 숭배자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미학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그는 아름다운 시를 지었을 뿐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한편의 아름다운 시였다. 보름달이 뜬 그날 밤 타고르는 나룻배 안에 작은 촛불을 켜놓고 크로체의 미학 책을 읽고 있었다. 밤이 깊어 크로체의 난해한 이론에 피곤해진 타고르는 책을 덮고 촛불을 껐다. 그는 그만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 작은 촛불이 사라지는 순간 나룻배의 창문으로부터 달빛이 춤추며 흘러 들어왔다. 달빛이 나룻배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한순간 타고르는 침묵에 빠졌다. 그것은 놀랍고도 신성한 경험이었다. 그는 밖으로 걸어 나가서 뱃전에 섰다. 고요한 밤 고요한 숲에 떠오른 달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강물 역시 숨을 죽이고 천천히 흘러갔다. 타고르는 그날 밤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아름다움이 나를 온통 둘러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외면한 채 아름다움에 대한 책에 파묻혀 있었다. 아름다움은 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다. 내가 켜 놓은 작은 촛불이 그 아름다움을 가로막고 있었다. 촛불의 연약한 빛 때문에 달빛이 내안으로 들어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추구하는 많은 가치들 중에 창조적인 활동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진선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아름다움이 과연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미학’이라는 학문은 진이나 선과는 조금 다른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분야에 속합니다.

그 방대한 부분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미학이 철학의 한 분야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고차원적인 뇌의 인식분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이란 뇌에 심어져있는 회로에서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어떤 예술작품을 대하게 되면 그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뇌에 심어져 있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회로를 자극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회로의 대부분은 신이 설계하셨고, 일부분은 자신이 변조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조금씩 다른 것은 자신의 심성과 관련되어 자신이 완성한 회로 때문이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느껴지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신께서 설계하신 회로를 자극하기 때문이랍니다. 일반적으로 ‘변화’와 ‘통일’ 사이의 역동적인 조화를 갖춘 작품들이 아름다움의 회로를 자극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회로를 자극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부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인간을 포함한 천연계의 작품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맑은 아가들의 웃음, 이슬을 머금은 빨간 장미 봉우리, 고양이 새끼의 애처로운 눈망울, 하늘과 땅을 연결한 무지개,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 단풍이 늘어진 오솔길, 그리고 타고르가 본 나룻배를 가득 채운 달빛...


이러한 아름다움은 우리 눈이 볼 수 없는 미세한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 분자구조들 속에서도 아름다운 매력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 중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헤마토폴피린(hematoporphyrin)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네 개의 피롤(pyrrole) 링(ring)이 마치 손을 맞잡은 듯 원을 이루고 있는 폴피린의 대칭적인 구조에 기초합니다. 이 구조를 보면 ‘변화’와 ‘통일’이 역동적으로 조화된 꽃이 연상이 되면서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폴피린(porphyrin)은 우리 몸에 산소를 공급해주는 혈액 속의 힘(heme)이라는 분자의 기본 구조입니다. 헤마토폴피린은 광역학요법(photodynamic therapy, 광역동치료)에 사용되는 빛 민감 물질(photosensitizer, 광감작물질)의 기본 구조로 지난 수년간 어르신들의 황반변성을 치료해온 물질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어르신들에게도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백발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신 어르신들의 사랑과 자녀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지혜를 아름다운 백발 속에서 보았던 것입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그의 시 ‘동방의 등불, 코리아’에서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 너는 세계의 밝은 빛이 되리라. /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벼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서도 길을 잃지 않은 곳 /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의 마음이 인도되는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라고 노래하며 힘들었던 시절 우리민족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헤마토폴피린이 그 구조만큼이나 하고 있는 일들이 고상하여 아름다운 것처럼, 코리아를 마음의 조국이라고 노래하며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타고르처럼,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는 모든 어르신들의 백발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