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27

작성일 2007-08-11 첨부파일


아바스틴(avastin)의 새로운 비전


▲ 이성진 교수

대장암은 암으로 인한 사망의 두 번째 원인으로 미국에서는 한 해 57,000명이 사망합니다. 2004년 2월 미국의 식약청(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은 진행된 대장암에 대해서 두 가지 신약의 사용을 승인하였습니다. 그것은 얼비턱스(erbitux, cetuximab)와 아바스틴(avastin, bevacizumab)입니다.

얼비턱스는 대장암 치료에 사용 승인을 받은 첫 단세포군항체(monoclonal anbibody, 암세포 표면의 특별한 단백질에 붙어서 세포의 기능을 방해하는 물질)이며, 아바스틴은 단세포군항체이면서 첫 항혈관형성억제제(angiogenesis inhibitor)입니다. 그 후로 이 두 약물은 대장암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아바스틴은 우연히 황반변성 치료에도 도입된 후로 현재 활발히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의사들이 암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암은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주인의 몸에 있는 혈관계와 연결된 작은 혈관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혈관이 암 자체에서 만들어내는 고유한 특징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혈관이 암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연결시키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미국 보스톤에 있는 소아병원(children's hospital)의 폭맨(judah folkman)은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혈관이 암의 성장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암으로 들어가는 혈관을 차단하는 것은 암과 싸우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연구팀은 과연 암에서 어떤 물질이 분비가 되어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데(혈관형성, angiogenesis) 도움이 주는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마침 다른 연구팀에서 혈관이 없으면 암 세포 내부에 산소가 부족해져서 죽어가므로 암이 2cm 이상 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폭맨은 만약 암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혈관을 막을 수 있다면(항혈관형성, antiangiogenesis) 암 세포를 작고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기존에 시행하고 있던 화학요법의 단점은 암 세포 뿐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손상시킨다는데 있습니다. 또한 암 세포는 유전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여서 암 세포의 유전자는 쉽게 깨지고 또 쉽게 재정렬이 됩니다. 유전자의 이러한 변화는 처음에 효과가 좋았던 약물의 작용을 비껴갈 수 있게(약물저항, drug resistance) 만듭니다. 그에 비하여 혈관 세포들은 매우 안정적이어서 이러한 약물저항의 문제가 매우 적습니다.

1980년대에 폭맨의 팀은 암들이 염기성 섬유모세포성장인자(basic fibroblast growth factor)를 분비하여 주위에 있는 혈관 근처로 도달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어떤 단백질이 혈관으로부터 암 세포 쪽으로 모세혈관이 올 수 있도록 길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해주고, 그 모세혈관이 정확히 도달할 수 있도록 ‘도발적인 신호(come-hither signal)’를 보내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 단백질과 매우 유사한 물질인 베제프(vegf, vascular endothelial growth factor,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가 발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 1997년에 전 세계를 사로잡은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것은 바로 폭맨의 연구팀이 안지오스타틴(angiostatin)이라는 자연물질을 분리해냈다는 것입니다. 동물실험에서 안지오스타틴은 암으로 가는 혈관의 성장을 방해하였습니다.

바로 다음 해에 엔도스타틴(endostatin)이라는 사촌 물질이 발견되자,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에는 암 치료가 임박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 되었습니다. 그러자 한 때 잃어버린바 되었던 이 분야는 새로운 꿈의 세계로 재조명을 받았고, 정부와 개인들로부터 이 실낙원 연구를 위한 기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엔도스타틴을 이용한 임상실험이 다나-파버(dana-farber)의 이더(joseph paul eder, 사진) 박사에 의해 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수년간은 뉴욕타임즈가 보여주었던 분위기와 다르게 조용하고 느린 걸음을 걸었습니다. 도대체 임박했다고 한 그 날은 언제 온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기다림에 지쳐 그 날을 서서히 기억에서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을 향한 준비는 특별한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미국 샌디에고의 제넨텍(genentech)에서는 1994년부터 새로운 물질을 디자인 하였고, 유전공학과 분자생물학 기법으로 단세포군항체 하나를 발견하였으며, 연구소 실험과 임상실험을 조용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보통 13년에 걸릴 일을 3년 앞당겼습니다. 2004년에 드디어 새로운 혈관형성억제약물이 미국 식약청을 통과하였는데 그 약이 바로 아바스틴입니다. 아바스틴의 출현은 항혈관형성 치료 분야의 새로운 비전이며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곳 미국에 계신 종양 담당 선생님께 여쭈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혈관형성 억제제가 10년 전의 타임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항암치료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답변을 들어보니 아바스틴과 같이 새로운 약물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항혈관형성 분야가 더 이상 마술피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암이 다양한 재앙들을 몰고 다니는 악마처럼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 유전인자들의 기능이상, 면역기능의 파괴, 세포-신호체계(cell-signaling)의 오류, 유전자의 파괴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단일군대로 맞서기는 힘들며, 항암제, 수술, 방사선요법 등 다양한 군대들과 연합공세를 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 동안의 노력이 헛된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항혈관형성 치료의 연구를 통해 암에 대하여 새로운 면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암 치료가 암세포 각각의 생명 기능을 주관하는 유전자와 신호체계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최근에는 암세포 조직이 주변에 이웃한 정상 조직과 도대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기에 이웃이 암세포로 바뀌고 있는지 그 대화(conversation)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암세포와 그 주위 환경에 대한 연구라고 볼 수 있으며, 환경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혈관형성이므로 이 분야에 대해 앞으로 새로운 비전(vision)들이 제시될 것입니다.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이 망막 치료제로 둔갑한 것은 새로운 비전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