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28

작성일 2007-08-18 첨부파일


루센티스(lucentis)와 아바스틴(avastin)의 논쟁


▲ 이성진 교수
2004년 12월은 혈관형성 억제제 마큐젠(macugen)이 미국 식약청(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으로부터 황반변성 치료에 사용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달입니다. 마큐젠의 등장으로 황반변성 치료에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바로 그 때 한편에서는 야심찬 임상실험이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해 2월에 미국 식약청으로부터 대장암 치료제로 허가받은 아바스틴(avastin, bevacizumab, 암혈관형성 억제항체)을 조금 변형시킨 신약에 대한 실험입니다. 루센티스(lucentice, ranibizumab)라고 하는 이 신약은 눈 속에 주사했을 때 망막을 더 잘 투과할 수 있도록 아바스틴의 일부 조각을 잘라서 작게 만든 것입니다. 이 항체 조각들은 망막을 투과한 후 그 아래에서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vegf, vascular endothelial growth factor)의 작용을 억제함으로 새로운 혈관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아바스틴의 대장암 치료 효과가 알려지자 황반변성 치료에서 루센티스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마침내 2년간 계속된 실험이 끝났고, 그 결과가 제출되었는데 그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시력의 감소를 줄이는데 급급했던 기존의 치료방법이나 심지어 마큐젠과 비교했을 때, 보다 많은 수에서 시력이 호전되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2006년 6월 미국 식약청은 황반변성 치료에 두 번째 혈관형성 억제제인 루센티스의 사용을 허가하였습니다.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루센티스의 치료 결과가 어떠했는데 잠깐 검토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시력은 5 글자가 한 줄에 있으며, 3 줄이 시각의 두 배가 되는 특수한 시력표(etdrs* 시력표)를 이용하였습니다. 3줄이 증가 또는 감소되었다는 것은 시각(visual angle)이 두 배로 증가 또는 감소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0.1에서 0.2로 되는데 3줄(15글자)의 시력 향상이 필요하며, 0.2에서 0.4가 되거나 0.4에서 0.8이 되는데도 각각 3줄(15글자)의 시력 향상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시력이 2년에 3줄 이내로 떨어질 확률은 루센티스를 맞은 그룹에서 90%인 반면 가짜약(위약, placebo)을 맞은 그룹에서는 53%였습니다. 이 말은 루센티스를 맞은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시력이 덜 나빠질 확률이 37%라는 뜻입니다. 2년간 루센티스를 맞은 경우 3명 중 한 명에서 시력이 3줄 이상 좋아졌는데, 맞지 않은 경우는 25명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2년간 평균 시력의 증감을 따져보면 2년간 루센티스를 맞은 경우는 6.6개의 글자를 더 보았지만, 맞지 않은 경우는 14.9개의 글자를 덜 보았습니다.(study 1)

2000년도부터 약 5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던 광역학요법(photodynamic therapy)과 1년 후의 결과를 비교했을 때도 비슷하였습니다. 1년 후 평균 시력의 증감을 따져보면 1년간 루센티스를 맞은 경우는 11.3개의 글자를 더 보았지만, 맞지 않은 경우는 9.5개의 글자를 덜 보았으니 말입니다.(study 2)
이것 참 놀라운 일 아닙니까? 황반변성에서 시력이 좋아질 수 있는 치료가 생겼다니요. 루센티스의 놀라운 결과로 인해 망막의사들은 술렁거렸습니다.

2006년도 미국 안과학회(aao, american academy of ophthalmology)는 라스베가스에서 열렸습니다. 저도 이 놀라운 소식을 직접 듣기 위해 참석을 했습니다. 당연히 이번 학회는 2004년 12월에 허가를 받은 마큐젠과 2006년 6월에 허가를 받은 루센티스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학회가 시작되기 이틀 전, 다른 호텔 대연회장에서 이틀간 열리는 망막의사들의 모임(retina subspecialty day)에 참석하려고 일찍 셔틀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벌써 마큐젠의 활약상이 돋보입니다. 이번 학회는 마큐젠을 공동 개발한 거대 제약회사 화이자(pfizer)가 후원을 하였으므로 많은 의사들이 마큐젠 로고가 새겨진 가방을 메고 있었으니까요.

세계 각 나라에서 너무 많은 망막의사들이 모였기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대연회장의 실황을 다른 큰 방에서도 중계해야만 했습니다. 드디어 황반변성 치료에 대한 발표들이 이어지자 망막의사들은 더욱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의 레이저 치료, 변성된 황반부를 일부러 박리시킨 후 다른 건강한 곳에 붙여주는 유일한 시력 개선수술 황반전위술(macular translocation), 피를 걸러서 황반변성에 나쁜 항산화제들을 제거한다는 약간은 무서운 치료 혈장분리교환술(plasmapheresis), 황반변성 예방을 위해 복합 비타민과 아연(zinc)에 망막색소성분인 제아산틴(zeaxanthin)과 루테인(lutein)을 첨가시킨 연구, 2000년대 이후로 전 세계를 강타한 광역학요법, 최초의 항혈관형성 치료제인 마큐젠, 그 뒤를 이어 최근 좋은 결과를 보인 루센티스, 그리고 루센티스의 모체에 해당하는 아바스틴...

아바스틴! 정말 마지막에 아바스틴이 있었습니다. 루센티스가 임상실험을 하고 있는 동안 그 결과를 미처 기다리기 어려웠던 많은 망막의사들이 루센티스의 모체인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을 황반변성 환자에게 이미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황반변성 치료에 대한 발표가 끝나고 발표자의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이 되었는데 진행자가 전체 망막의사를 대상으로 깜짝 질문을 하였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마큐젠을 사용하고 계신 분은 한번 손을 들어보세요.”
10% 정도가 손을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큐젠 이름이 새겨진 가방을 들고 있던 것에 비해 너무 적습니다. 이번엔 루센티스를 사용하는지 질문을 하였고, 약 20%가 손을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바스틴을 사용하는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낯익은 우리나라 망막선생님들을 포함하여 과반수이상이 손을 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순간 왜 이렇게 많은 망막의사들이 아직 황반변성 치료에 허가를 받지 않은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을 황반변성 치료제로 선택했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약값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혈관형성 억제 약물은 매달 눈 속에 주사를 맞아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루센티스가 한 병에 2000불(180만원)인 반면 아바스틴은 150불(13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좋은 약이더라도, 아무리 많은 개발 및 연구비가 들었더라도, 환자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고가의 약물은 설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화이자에서는 아바스틴과 루센티스의 작용을 비교하는 임상실험을 시작하였습니다. 올 년 말쯤 되면 그 결과가 나올 것이며, 루센티스와 아바스틴 중 어느 것이 더 효과가 좋은지에 대한 논쟁은 종지부를 찍을 것입니다. 만약 루센티스의 결과가 월등히 좋게 나온다면 루센티스를 택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화이자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두 결과가 비슷하거나 많이 차이가 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 etdrs (early treatment of diabetic retinopathy study) 시력표 : 당뇨망막증 조기치료에 대한 비교연구를 위해 고안되었던 시력표
§ 한국에서는 가격이 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