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31

작성일 2007-10-11 첨부파일


벽지를 떼어낸 후 다른 곳에 붙이기 - 황반변위술(macular translocation)






▶ 이성진 교수<순천향의대 안과학교실>
황반변성 치료 방법 중에 꼭 짚고 넘어가야할 수술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약간 무식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매우 창조적인 방법입니다. 이 수술을 황반변위술(macular translocation)이라고 하는데 망막 수술 중에서 난이도가 최상에 속합니다.

몇 년 전만해도 황반변성을 치료하기 위하여 망막 아래에 있는 신생혈관막을 미세한 집게로 직접 제거하는 수술(removal of subretinal neovascular membrane)과 함께 이 수술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유능한 의사들이 팀을 이루어야 하며, 합병증과 재발의 가능성이 남아있고, 신생혈관을 억제하는 좋은 약물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지금은 전 세계의 일부 병원에서만 전문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술의 목적이 시력저하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시력을 회복시키는데 있으며, 망막전문의로서 언젠가 꼭 정복해 보고 싶은 고난이도의 수술인 만큼, 이것이 어떤 수술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눈 속에는 망막(retina)이라는 얇은 신경막이 마치 벽지처럼 발라져 있습니다. 망막의 중심부에는 갈색의 색소가 진하게 뭉쳐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곳이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황색반점(황반부, macula)’이며, 보는 것을 담당하는 시세포(photoreceptor cell)만이 자리를 잡고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황반변성이란 바로 이 황반부에 문제가 생기는 병입니다. 황반부 아래의 맥락막(choroid)이라고 하는 혈관층에서 반갑지 않은 새로운 혈관들이 웅크리고 있다가 서서히 황반부의 망막을 뚫고 자라나와 결국 황반부를 망가뜨리는 병이지요.

이 수술은 아직 벽지(망막)가 건강할 때 즉 신생혈관이 벽지를 뚫고 자라서 벽지를 망가뜨리기 전에 시행해야 합니다. 벽에 발라진 벽지(망막)를 모두 떼어 낸 후 신생혈관이 웅크리고 있지 않은 건강한 주변 벽에 황반부의 벽지를 새로 붙여줄 수 있다면 시력을 보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수술은 바로 그러한 가정 하에 시행한 수술입니다. 비닐 세 겹 정도 밖에 안 되는 얇은 벽지를 아무 손상도 없이 다 떼어내는 것이 관건입니다. 혹시라도 수술 중에 벽지가 찢어지기라도 한다면 수술을 하지 않은 것보다 더 큰 손실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수술은 35년 전 당시에 금기로 여겨졌던 유리체절제술을 달걀을 이용하여 최초로 시행한 창조적인 마케머(machemer)의 상상력에 의하여 1980년대에 고안된 것입니다.

그는 동물실험을 통해 360도 망막을 절개한 후(빨간 선) 황반부를 새로운 부위로 이동시키는 황반변위술(macular translocation)의 결과를 1983년도에 발표하였습니다. 먼저 얇은 주사바늘을 망막에 찌른 후 벽과 벽지 사이에 물을 집어넣어 망막을 벽으로부터 박리시키고, 망막의 주변부에서 망막을 빙 돌아가며 자른 후(좌상) 새로운 위치에 황반부가 가도록 망막을 돌렸습니다(우상). 그런 후 눈 속에 실리콘 기름을 주입하였는데, 아쉽게도 360도 망막을 절개한 부위에서 세포들이 증식하여 흉터반응(증식유리체망막병증, proliferative vitreoretinopathy)이 생기는 바람에 진짜 망막박리가 생긴 경우들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러한 흉터반응을 줄이기 위해 절개를 좀 더 뒤쪽으로 하고 180도 정도만 절개하는 방법들(하)이 사용되었습니다.

2001년에 후앙(eugene de juan)은 망막을 절개하지 않고 황반부를 이동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벽의 면적을 줄이는 방법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벽과 벽지 사이에 물을 넣어 벽지를 떼어낸 후(하좌) 칼로 눈의 껍질(공막, sclera)에 절개를 가하고(상좌), 클립으로 절개부위를 물어 벽의 길이를 줄였습니다(상우). 그렇게 하면 남는 벽지가 생기는데, 그 부분을 밀어서 황반부를 다른 벽에 붙이는 것입니다.

물론 남은 벽지 때문에 주변부 벽에는 주름진 벽지가 생길 것이며, 아무래도 망막에 절개를 가한 경우보다 망막이 덜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림에서 6시 방향 벽에 있는 작은 흰 점(신생혈관)의 위치가 좌측의 혈관 쪽으로 이동된 것처럼 황반부의 벽지는 문제가 있는 벽을 떠나 다른 벽에 붙게 됩니다.

그런데 이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황반부가 시계방향으로 약간 회전되며 이동하였기 때문에 그 눈은 사물들이 마치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처럼 기우뚱하게 회전되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두 눈으로 보면 사물이 두 개로 보이겠지요? 똑바로 보이는 것과 기울어져 보이는 것. 그래서 이것을 교정하기 위해 눈의 위치를 반대방향으로 기우뚱하게 회전시키는 특수한 수술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눈에 붙어서 눈의 움직임을 조정하고 있는 근육을 떼었다가 조금 다른 곳에 붙이는 특수한 사시(strabismus) 수술입니다.

이러한 황반변위술은 황반변성을 치료하여 시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 외에 또 다른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 수술로 인해 더욱 난이도가 높은 망막수술 기법들이 개발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로 2003년에 네덜란드 로테르담 대학의 뮤어(jan c. van meurs)교수는 벽지(망막)를 박리시키지 않고, 신생혈관이 웅크리고 있는 벽(맥락막)을 긁어낸 후 주위의 건강한 벽을 떠내어 문제의 벽에 이식을 시켜주는 수술을 시행하였습니다(autologous translocation of the choroid and retinal pigment epithelium). 비닐 세 겹 두께의 벽지(망막)를 아무 손상 없이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도 놀라운데, 이제는 벽에 있는 세포(망막색소상피)와 미세한 혈관층(맥락막)을 눈곱만한 크기로 떼어 이식을 하고 있군요. 생체 망막이식 수술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망막박리는 실명을 일으키는 두려운 병이지만 이 수술은 오히려 망막을 만든 후 실명을 정복하는 방법입니다. 새로 개발된 황반변성 약물들과 이러한 망막수술의 발전을 통해 황반변성으로 실명을 앞두신 어르신들에게 새 빛을 찾아드릴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