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35

작성일 2008-02-14 첨부파일


영재 유전자



▶ 이성진 교수<순천향의대 안과학교실>
예쁜 딸과 함께 진료실을 들어선 부부의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부인이 먼저 입을 엽니다.

“선생님, 제 딸이 그러는데 칠판글씨가 잘 안 보인답니다.”

그러자 남편이 옆에서 말을 거듭니다.

“집사람 닮았어요.”

부드럽지만 작은 가시가 있는 말입니다. 진료기록부를 보니 시력검사 때문에 왔다고 되어있군요. 두 분에게 일어난 일은 아마도 딸의 눈 때문인가 봅니다. 잠시 기다리면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있겠죠. 얼핏 보기에는 큰 문제가 아닌 듯 보이지만, 이 부부에게는 딸의 눈에 일어난 일이 지금 이 세상의 어떤 문제보다 심각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모른 체하며 대답하였습니다.

“그렇군요. 따님 눈이 엄마를 닮아 참 예쁩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번에 딸아이가 학교에서 시행한 시력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답니다. 가까운 안경점에서 검사를 했더니 근시가 제법 있고 또 짝눈(부동시, anisometropia)이라서 안과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는군요. 예쁜 딸이 안경을 써야한다는 사실에 남편은 속이 상했습니다. 왜 딸이 눈 좋은 자신을 닮지 않고 고도근시인 엄마를 닮았는지 말입니다. 근시는 이처럼 사이좋은 잉꼬부부들을 잠시 냉랭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검사를 해 보니 다행히 사시도 없었고, 약시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근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근시에 대한 설명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딸의 눈에 대한 책임 공방에 대해서는 두 분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특히 엄마가 이 일로 크게 마음을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지금으로부터 80년 전(1927)에 맥클린(macklin)이라는 의사도 이와 비슷한 관찰을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자녀의 부모 중에 두꺼운 안경을 쓴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녀의 부모들 모두가 그랬다’라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경우도 있더라’라는 내용은 너무나 평범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혹시 자녀의 눈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요. 별로 과학적인 관찰도 아니었으며, 특별한 규칙을 발견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의 생각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5년 후 플래크(flach, 1942)가 부모와 자녀 모두 고도근시가 있는 가족을 발견하면서 맥클린의 가설이 잠시 부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고도근시의 유전성 여부를 다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끈기 있는 학자였던 프란세셰티(franceschetti, 1953)와 프랑스와(francois, 1961)는 고도근시가 있는 사람들을 꾸준히 추적한 끝에 4대에 걸쳐 고도근시로 가득한 가족들을 10예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고도근시라면 자녀도 고도근시가 된다는 이들의 발견은 고도근시의 유전가능성을 의미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후 칼슨(karlsson, 1975)이나 에드워드와 루이스(edwards and lewis, 1991)의 가족연구를 보면 근시의 유전 양상은 매우 다양한 것으로 밝혀졌지요.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고도근시가 유전과 관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결과를 토대로 1992년 이후 근시 유전자를 규명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보면 고도근시를 유발하는 유전자 5개는 각각 7, 12, 17, 18번 및 x 염색체에 있으며, 경도 내지는 중등도의 근시 유전자는 3, 4, 8, 11, 22 번 염색체에 분산되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근시를 유발하는 유전자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근시의 유전 방식은 생각처럼 명확하지 않습니다. 부모 둘 다 근시인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6배 정도 근시가 잘 생긴다는 보고가 있긴 하지만 때로는 전혀 관련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근시 유전자들이 이처럼 서로 다른 여러 염색체에 분산되어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뇌 기능 전문가이기도 한 칼슨(karlsson, 1975)은 이러한 궁금증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근시 유전자가 뇌를 발달시키는 영역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근시가 있는 18세 학생들이 근시가 없는 학생들보다 아이큐가 뛰어남을 확인하였으며, 10년 전 근시가 없을 때의 것을 비교해보아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는 근시 유전자가 뇌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3년 후 콘(cohn, 1988)이란 학자도 이와 비슷한 실험을 하였는데, 그것은 공부를 정말 잘하는 영재(gifted) 그룹이 그렇지 않은(nongifted) 그룹과 비교하여 근시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사한 연구들을 통해 근시 유전자는 뇌를 발달시켜 영재를 만드는데 관여할 것이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미국고등학교의 상위반(honor class) 학생들 중에 상당수가, 근시가 인구의 3-40% 정도를 차지하는 유럽인보다는 근시가 인구의 7-80%를 차지하는 이스라엘인, 중국인,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혹시 그러한 점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딸의 상태를 이야기 해주고 안경을 처방해 주면서 공부할 때는 쓰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런 후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혹시 근시의 장점을 아십니까?”

“글쎄요. 40대가 되었을 때 돋보기 없이도 책을 본다는 것 말고는 다 불편할 것 같은데요. 다른 뭐가 있나요?”

“근시가 있으면 인생의 후반기에 ‘제2의 눈’을 가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군요. 그런데 그것 말고도 또 있습니다. 근시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쁩니다. 눈이 크거든요. 특히 눈이 작은 동양인들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근시 유전자를 받은 사람은 영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따님도 지혜롭지요? 따님이 엄마로부터 근시유전자를 받았다면 그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근시가 있는 분들은 눈이 좋은 분들보다 이해심이 많습니다. 눈이 불편한 다른 자녀들과 다른 분들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 제가 좀 이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눈이 좋았기 때문에 근시의 불편한 단점만을 크게 보았어요. 사실 딸이 작은 제 눈 닮지 않고 엄마 눈을 닮아서 참 다행입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집사람 닮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허허허...”

부인도 모두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근시는 이렇게 냉랭한 분위기를 화목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근시의 장점은 이것 외에도 더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