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36

작성일 2008-03-10 첨부파일


갈렌(gellen)의 근시이론

▶ 이성진 교수<순천향의대 안과학교실>
가까운 것은 잘 보지만 먼 것을 잘 보지 못하는 눈을 근시(myopia)라고 합니다. 근시는 myelin(가까운, close)과 ops(눈, eye)라는 두 개의 그리스 말이 합쳐진 것인데, 이것은 먼 것을 볼 때 위아래 눈꺼풀을 가느다랗게 좁혀서 뜨고 초점을 맞추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관찰에 의거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socrates)보다 100년 이후에 태어났으며, 왕의 주치의의 아들이기도 하고, 알렉산더 대왕의 어릴 적 스승이기도 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면밀히 관찰했던 예리한 철학자임이 분명합니다. 그의 '문제들(problems)’이라는 책에 보면 ‘왜 근시안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보는 것일까?’ 라든지 ‘왜 근시안들은 글씨를 그렇게 작게 쓰는 것일까?’ 라는 질문들이 있으니까요. 그 외에도 그리스의 법규집(canon)에 있는 ‘근시는 선천성이다.’라는 말이나, ‘눈이 튀어나온 동물들은 먼 것을 잘 볼 수 없지만, 눈이 쑥 들어간 동물들은 먼 것을 잘 본다.’ 또는 ‘근시가 있는 사람들은 눈이 튀어나왔다.’ 라는 내용이 그리스 시대로부터 내려온 것임을 볼 때, 근시는 이미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그 정체를 의심받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잘 풀어놓고는 잘못된 답을 골라버린 학생처럼 그들의 결론은 매우 특이했습니다. 근시에 대한 무성한 의문들을 잠재워버린 놀랄만한 이론은 그리스의 명의 갈렌(claudius galenus, 129-200)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먼 것을 잘 볼 수 없는 이유는 근시안이 멀리서부터 온 흥분된 공기를 눈 속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in the myopic eye, the exciting, inflowing air is too weak and too faint so that it cannot penetrate deep enough from a far distance.)’라는 것이었지요. 형이상학적인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던 시절에 나온 그의 이 엉터리 같은 이론은 무려 1600년 이상이나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위대한 천문학자로 알려진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가 눈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연구는 안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이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 이론이란 가까운 것을 볼 때 눈의 모양이 변하게 되는데 (조절, accommodation) 이 때 눈의 길이가 일시적으로 길어져서 망막이 수정체(lens)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근시란 눈의 이러한 확장이 습관적인 것처럼 되어버린 상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암스텔담의 플렘피우스(vopiscus fortunatus plempius, 1601-1671)는 케플러의 이론을 발전시켜 1632년에 드디어 갈렌의 이론이 허구라는 것을 밝혔을 뿐 아니라, 가까운 것을 볼 때 수정체는 두꺼워지므로 망막은 수정체로부터가 아니라 동공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며 스승의 이론을 수정하였습니다. 눈 속을 전혀 볼 수 없던 시절에 이루어진 이론이지만 놀랍게도 눈을 볼 수 있는 시대에 하나씩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눈 속을 볼 수 있는 검안경을 발명한 헬름홀츠(hermann ludwig ferdinand von helmholtz, 1821-1894), 백내장과 녹내장 수술을 발견한 폰 그라페(friedrich wilhelm ernst albrecht von graefe, 1828-1870)와 함께 위트레흐트(utrecht) 대학의 생리학과 교수였던 단더스(franciscus cornelis donders, 1818-1889, 아래 사진)는 안과분야를 학문의 반열로 올려놓은 독일의 삼총사입니다. 독보적인 이론체계로 근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단더스는 최초로 근시와 난시를 교정하기 위하여 원통 모양의 렌즈(cylindrical lens)를 사용하였으며, 가까운 것을 볼 때 눈에서 일어나는 조절현상(accommodation)의 이론을 확립하였습니다. 단더스의 놀라운 근시 연구의 업적을 이곳에서 다 인용할 수 없으나 그의 이론은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근시안의 눈이 길어진 것이라는 해부학적인 증거들을 제시하였습니다. 헤쓰(carl von hess, 1912)는 근시가 있을 때 눈의 길이가 왜 길어지는지에 대한 문제에 매우 심취한 학자입니다. 그는 유전과 조절이 근시를 유발하는 중요 인자들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현대 근시학의 초점이기도 합니다.

근대에 폰 눌덴(von noorden, 1978)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원숭이, 병아리, 새끼고양이, 다람쥐와 같은 동물들의 눈을 가림으로 눈을 크게 만들 수 있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눈은 근시를 연구하는데 이용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의하면 근시란 유전이 대부분 관여하여 눈의 길이가 앞뒤로 길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눈이 길어지면 멀리 있는 사물의 상이 정확히 망막에 맺히지 않고, 망막보다 앞 쪽에 맺힙니다. 그렇게 되면 사물은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처럼 흐리게 보입니다. 사물의 상을 정확히 망막에 맺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목렌즈를 대어 초점을 뒤로 밀어 주어야 합니다. 오목렌즈를 착용한 후 잘 보이는 눈은 병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이제 눈이 나쁘다는 말은 안경의 도수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는 표현일 뿐입니다.

2003년 미국안과학회에서는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들의 모든 정상적인 일상행동이 근시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정상적인 일상행동에는 어두운 곳에서 책을 보거나, 엎드려서 책을 보거나, tv를 많이 보거나, 컴퓨터를 많이 하거나, 게임을 많이 하거나, 안경을 쓰고 있거나, 안경을 벗고 있거나, 심지어는 공부를 많이 하는 것 등이 모두 포함되며, 이러한 행동들이 눈을 길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현재 최고의 권위를 가진 근시이론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반인들은 물론 안과의사들 마저도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오히려 더 불안해합니다. 만약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위에서 말한 나쁜 습관들을 질책할 수 있는 꺼리가 없어진다는 것만 좀 나쁠 뿐, 근시에 대한 걱정이나 자녀들과의 지루한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갈렌의 이론을 한 번 봅시다. ‘먼 것을 잘 볼 수 없는 이유는 근시안이 멀리서부터 온 흥분된 공기를 눈 속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왠지 이 이론이 저는 전혀 엉터리라고만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말이 ‘눈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 근시가 있는 사람들은 필요할 때 눈을 조금 작게 뜨고 살면 되느니라.’로 들립니다. 아무 해결방법이 없었던 시절에 그의 말은 근시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이론을 1,600년간 지속될 수 있게 해 주었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