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38

작성일 2008-05-06 첨부파일


원숭이 한 눈 가리기

▶ 이성진 교수<순천향의대 안과학교실>
근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동물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년 전입니다. 동물을 이용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증거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근시(myopia)는 정상에 비하여 눈의 크기가 크고 긴 것이라는 사실이 수 백 년 전부터 알려져 왔는데, 왜 동물실험은 이토록 늦게 시작된 것일까요?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근시모델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가계도 연구나 쌍생아 연구를 통해, 비록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는 있지만, 근시는 대부분 유전이 관여한다고 알려진 터라 동물의 눈에서 근시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동물에서 인위적으로 근시와 비슷한 큰 눈을 만들고 있으며,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동물의 한쪽 눈을 가리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동물의 한 눈 가리기를 처음으로 시도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눈 가리기는 눈이 사물을 볼 때 우리 뇌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밝혀서 1981년에 노벨 의학상을 받은 후벨(david hunter hubel, 1926- )과 비젤(torsten nils wiesel, 1924- )이 한 것입니다. 물론 근시 연구는 아니었지요. 1959년에 그들은 고양이를 마취시킨 후 뇌의 시각 피질에 미세한 전극을 부착하고, 고양이가 사물을 볼 때 어느 세포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관찰하였는데, 이 실험은 시각 신경생리학(visual neurophysiology)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1963년에 한 눈 가리기 실험을 시행하였습니다. 새끼 고양이 한쪽 눈의 위아래 눈꺼풀을 서로 꿰매서 눈을 가렸더니 시피질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이것은 후에 약시(amblyopia, 구조는 정상이지만 안경을 써도 시력이 잘 나오지 않는 눈) 연구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한 눈 가리기는 1978년에 약시 연구를 하려던 폰 눌덴(von noorden)에 의하여 다시 시도되었습니다. 그는 사람과 유사한 짧은꼬리원숭이(stump-tailed macaque)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우연히도 매우 특별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렸던 눈이 길어져서 근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실험이 큰 노력을 기울이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도 새로운 점 하나를 발견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할 때 이것은 너무 쉽게 우연히 얻은 보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은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로 한 눈 가리기는 근시동물모델을 만드는 중요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짧은꼬리원숭이의 실험 이후로 붉은원숭이(rhesus macaque), 병아리, 햄스터, 나무두더쥐(tree-shrew)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로부터 한 눈을 가리면 눈이 길어진다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심지어는 두 눈을 모두 가렸더니 두 눈 모두 근시가 되었습니다. 한 눈 가리기에 대한 그동안의 실험 결과들을 잠깐 살펴봅시다.

* 한 눈을 가리면 눈의 어떤 부분이 길어질까요?

원숭이 한쪽 눈의 반쪽만 가린 연구결과를 보면 가린 쪽에 해당하는 반쪽만 길어졌는데, 길어진 반쪽의 앞쪽 구조는 정상이었지만 뒤쪽 구조는 달라졌습니다.(nature 1977:3, 사진) 그렇다면 망막이 있는 눈 뒤쪽의 구조가 길어진 것입니다.

* 눈꺼풀을 꿰맸을 때 눈이 길어지는 이유가 압력이나 온도가 올라갔기 때문일까요?

이번엔 눈꺼풀을 꿰매지 않고,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을 병아리에 씌웠더니 근시가 유발되었습니다. 또한 원숭이의 한 눈을 가리고 어두운 곳에서 키웠더니 아무 눈에도 근시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근시의 유발은 압력이나 온도의 영향이 아니라 초점이 맞지 않은 빛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학자들이 유전 이외에 근시의 원인으로 지목했던 조절현상(accommodation, 가까운 것을 볼 때 일어나는 눈의 변화)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가린 눈에 조절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트로핀(atropin)이란 안약을 1년간 넣어주었더니 짧은꼬리원숭이(stump-teailed macaque)는 근시가 생기지 않았으나, 붉은원숭이(rhesus macaque)는 여전히 근시가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원숭이의 종류에 따라 조절이 근시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 그렇다면 근시가 유발되는 장소는 망막일까요, 뇌일까요?

이번에는 붉은원숭이의 시신경을 잘라서 뇌로 가는 정보를 차단한 후 그 눈을 가렸는데, 여전히 근시가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근시의 유발 장소는 망막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동안 귀여운 동물의 한 눈 가리기로 얻은 결론을 한 번 정리해 볼까요? 먼저 어릴 때 눈을 가리면 가린 눈이 길어집니다. 이것은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빛이 근시를 유발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길어지는 부위는 망막이 있는 눈의 뒤쪽입니다. 그리고 근시는 뇌로부터가 아니라 망막에서 유발됩니다. 조절은 원숭이에서 근시를 유발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연구를 해야 할 다음 단계는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빛이 망막을 자극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밝히는 것과, 과연 사람에게서도 조절기전이 근시를 유발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겠군요.

보시다시피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귀여운 동물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정말 많이 고생을 했습니다. 그들은 묵묵히 그 어려운 애꾸눈 잭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군요. 잠깐 동안이나마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