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143

작성일 2008-10-19 첨부파일


유리를 불던 안과의사들

이탈리아의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그의 책(codex of the eye, manual d, 1508)에서 ‘물이 들어있는 그릇에 머리를 넣으면 각막의 굴절력이 변한다’는 내용에 기초하여 몇 가지 형태의 콘택트렌즈를 고안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액체로 가득 찬 유리관을 직접 각막에 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영국의 과학자 토마스 영(thomas young, 1773-1829)은 물이 차 있는 '눈 컵(eyecup)'을 만들어 자신의 눈앞에 대고 렌즈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영국의 천문학자인 허셜(sir john herschel, 1792-1870)은 대영백과사전에 각막을 투명한 젤라틴에 찍은 후 그 모양에 뜨는 주조법(mold)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에 떠 올린 새로운 생각들은 결국 콘택트렌즈가 만들어질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게 되었으므로 콘택트렌즈에는 예술, 과학, 철학 및 천문학 거장들의 숨결이 스며들어 있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상상 속에 숨겨져 왔던 이러한 생각들은 유리 세공기술이 발달되자 유리를 부는(blowing) 기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1887년 독일의 유리 세공업자인 뮐러(friedrich adolf muller-uri, 1838-1879)와 그의 두 아들(friedrich anton and albert carl muller-uri)은 유리를 불어서 의안을 만들었습니다. 이 의안을 처음으로 착용한 사람은 암으로 눈꺼풀에 부분적인 결손이 생긴 환자였는데, 각막이 말라 들어가서 발생할 수 있는 실명을 막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안톤의 아들인 에드워드(friedrich edward muller-uri, 1891-1945)는 유리의안을 11명의 원추각막(keratoconus) 환자에게 착용하였더니 원추각막의 진행을 막을 수 있었다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1920)하기도 하였습니다. 3대에 걸친 놀라운 업적으로 인해 1925년에 안톤은 고팅겐(gottingen)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888년에 스위스 의사인 피크(adolf eugen fick, 1829-1901)는 처음으로 눈에 착용할 수 있는 유리 콘택트렌즈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토끼눈과 사체안에 사용을 하였지만 그 다음에는 과감하게 자신의 눈에 착용하였으며, 그 후 친구의 눈과 6명의 지원자들의 눈에 사용을 하였습니다.

이 때 현미경 렌즈 제작기술자인 칼 자이스(carl zeiss, 1816-1888)가 렌즈 제작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렌즈는 직경이 21mm에 달했으며, 무거웠습니다. 그는 이 렌즈를 각막에 붙이기 위해 각막과 유리 사이에 포도당용액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이 렌즈는 무거워서 짧은 시간만 착용이 가능하였고, 불규칙한 난시가 있던 한 명만이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그 후에 그는 렌즈 제작에 흥미를 잃게 됩니다만 그가 남긴 보고서(archiv fur augenhikunde, 1888)에는 볼록한(biconcave) 렌즈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현재 칼 자이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수술 현미경을 만드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독일 의사인 뮐러(august muller, 1864-1949)는 당시 일반 안경으로는 상이 왜곡되어 보이는 -14.0 디옵터의 심한 고도근시가 있었습니다. 그가 의대생이었을 때 학위논문으로 작성한 ‘안경과 각막렌즈’의 이론에 기초하여 사체안의 각막모양을 뜬 후, 렌즈를 갈아서 작고 얇게 만들고, 눈물층의 모세관현상을 이용하여 각막에 직접 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코카인을 이용하여 눈을 마취시킨 후 각막과 렌즈 사이의 공기를 제거하기 위해 물 속에서 착용했습니다. 경계면을 둥글게 만들고, 눈물층을 이용한다는 생각은 획기적이었지만 이것 역시 무거운 유리로 만들어졌으며, 30분 정도만 착용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심한 자신의 근시 때문에 더 이상의 연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1922년에 의안제조기술자의 아들이었던 뮐러-벨트(adolf wilhelm muller-welt, 1904-1972)는 유리를 부는 기술과 가는(grinding) 기술을 접목하여 6시간 착용이 가능한 렌즈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달로스(josef dallos, 1905-1979)가 네고콜(negocoll)과 호미나이트(hominite)를 이용하여 살아있는 각막의 모형을 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188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약 50년 동안 근시를 교정해보려고 작정했던 의사들은 기꺼이 유리를 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꺼이 음악과 연극에 몰입하던 모습과 비슷합니다. 어떤 질병과 해결해 보려는 의사의 모습은 꼭 흰 가운을 입은 근엄한 모습이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자를 위해 가운을 벗고 기꺼이 유리를 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유리를 불어서 만든 이 렌즈는 반세기 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착용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 렌즈는 pmma(polymethyl methacrylate, perspex/plexiglas)라는 특수한 재질이 개발된 이차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갔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1936년에 미국뉴욕의 검안사(optometrist) 훼인블룸(william feinbloom, 1904-1985)은 pmma와 유리를 이용하여 처음으로 플라스틱 소재가 들어간 눈을 넓게 둘러싸는 공막렌즈를 만들었습니다. 1950년 미국 오레곤주의 버터필드(george butterfield)는 각막의 모양을 따라 가볍고, 착용하기 편리한 각막렌즈를 고안하였는데, 이것은 하루에 16시간을 착용할 수 있었습니다.

체코의 화학자 빅터(otto wichterle, 1913- )와 림(drahoslav lim)은 1959년에 네이쳐(nature) 잡지에 ‘물을 흡수하는 플라스틱 재질의 젤(hydrophilic gels)'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후 이 재질을 이용하여 렌즈를 제작하였고, 1971년 미국의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의 허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렌즈는 딱딱한 렌즈보다 매우 착용감이 부드러워 적응하기 쉬웠으므로 많이 이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978년에는 첫 난시교정렌즈(toric lens)가 FDA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의 단점은 산소가 투과하지 않는 것으로 각막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드디어 1979년에 pmma 중합체(polymer)와 실리콘을 이용하여 산소가 투과하는 재질이 만들어졌습니다. 공기 중의 산소는 이것으로 만든 rgp(rigid gas permeable) 렌즈를 투과하여 각막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9년에 처음으로 실리콘 수화젤(hydrogel) 재질이 소개되었는데, 이것은 기존에 30년간 사용된 hydrogel 재질보다 산소 함유량이 높아 최근에 1회용 렌즈를 만드는데 이용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