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야기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 -1

작성일 2009-01-12 첨부파일


과도한 산소공급이 부른 실명 - 미숙아망막병증


독일의 과학전문작가인 하인리히(zankl heinrich)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과학자들의 오류와 착각을 ‘역사의 사기꾼들’이라는 책을 통해 소개했습니다. 물리학에서 고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최고의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일으킨 치명적인 오류들은 때로 인류에게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러한 43가지의 사례들 중에 의학과 관련된 5가지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망막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1940년대에 여러 나라의 소아과 의사들은 거의 동시에 특이한 현상을 목도하였다. 그것은 신생아의 눈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이었는데, 그때까지는 매우 드물었던 것이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눈의 변화는 대부분 태어난 지 수개월 내에 발견되었으며, 실명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수수께끼 같은 질병이 눈 속에 있는 렌즈(수정체) 뒤쪽에 섬유들이 증식한다고 생각하여 ‘수정체후방섬유증식증(retrolental fibroplasia)’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섬유들의 증식은 눈 속에 벽지처럼 발라져 있는 얇은 망막을 당겨서 벽으로부터 떨어뜨린 후 서로 붙여 깔때기 모양처럼 만들었다. 불행히도 이런 현상은 질병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질병의 최종 종착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소아과와 안과 의사들은 이 질병을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미숙아에게서 잘 발생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이 질병은 ‘미숙아 망막병증’(retinopathy of prematurity)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세계의 유수한 각 병원에서는 이 질병의 원인을 찾기 위한 특수연구모임을 조직하였다. 나름대로 정확한 방법으로 자료들을 분석했지만 결과들은 너무 달랐다. 처음에는 출산 전 산소 결핍으로 발생한 선천성 장애라고 추정하였다. 출산 전의 감염이나 출혈은 물론 출생 직후에 발생하는 여러 요인들도 물망에 올랐다. 너무 일찍 아기를 빛에 노출시켰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있었다. 비타민과 철분의 과다 복용도 의심을 받았다. 몇몇 수사원들은 일부 아기들의 부신 기능저하를 발견하면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acth)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실제로 몇몇 아기들의 눈 상태가 좋아지자 이 치료법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큰 설득력은 없었으므로 다른 연구는 계속되었다. 미숙아에게 준 과도한 양의 산소가 원인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10년 쯤 지나서였다.

처음에는 산소 결핍으로 피부가 파랗게 변한 아기에게만 산소를 공급하였는데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미숙아들에게도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1945년부터는 모든 미숙아에게 예방차원에서 산소를 주입하라는 일괄적인 권고가 내려졌다. 미숙아 망막병증의 급격한 증가는 바로 그 시점이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이 질병과 과도한 양의 산소공급은 연관성이 뚜렷했지만 산소 주입을 금하는 조치를 내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산소주입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산소의 과잉 공급이 원인이 아니라 산소공급을 너무 일찍 중단한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산소 주입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산소를 주입하지 않은 미숙아를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의사들은 미숙아에게 산소를 공급하지 않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동이라고 항의했다.

이런 우려 속에도 연구가 진행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그 결과 산소를 과도하게 주입한 그룹에서 망막병증이 좀 더 많이 발생함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산소를 주입하지 않은 아기들 중에서도 발병한 경우가 있었는데 자세히 조사를 한 결과 간호사들이 아기를 가엾게 여겨 밤중에 산소를 몰래 준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정식으로 연구를 실시한 결과 불필요한 산소 공급을 중단하면 망막병증이 줄어든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일괄적인 산소의 사용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이 자명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무려 12년이라는 긴 세월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런 터무니없는 오류로 약 1만 명의 아기들이 시력을 잃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치료법 보급에 앞서 철저한 조사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지금도 폐가 성숙하지 않아 산소 주입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산소량을 최소화하여 망막병증을 예방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100%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아직도 고농도의 산소가 어떤 식으로 심각한 안과 질환을 유발하는지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출생 후 동맥 내 산소량이 급상승한다. 이시기에 추가로 산소를 공급하면 산소량이 위험할 정도로 많아져 망막 혈관의 성장이 멈출 수 있다. 그러다가 산소량을 줄이면 반동적으로 망막혈관이 급격히 성장하게 된다. 그럴 경우 망막혈관은 망막 면을 따라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눈 속으로 자라기 시작하여 수정체에 이르게 된다. 그 결과 망막에 붙은 섬유조직들이 당겨지게 되며, 결국 모든 망막이 박리되어 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그런 극적인 결과까지 진행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해당 미숙아의 약 80%는 초기 단계에서 병이 멈추며, 눈의 손상도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병이 계속 진행될수록 치료의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그러므로 미숙아 망막병증은 꼭 안과의사의 집중 관리를 받아야 하며, 망막혈관의 증식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는 경우에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요즘 레이저 광응고술을 가장 흔히 사용하는데, 이것은 혈관이 없는 망막을 레이저로 파괴하여 새로운 혈관들이 자랄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치료법은 때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성공률이 약 80%에 이른다. 망막박리가 부분적으로 시작되었다면 수술을 받아야한다. 그러나 수정체까지 영향을 받았거나 망막전체가 박리가 되었다면 치료법이 매우 제한된다.

진단과 치료법의 발달에도 미숙아 망막병증은 서구 국가 아동의 최다 실명 원인 중 하나이다. 발생빈도는 나라별로 편차가 심하며, 독일의 경우 연간 40건이다. 미숙아 집중 치료기술이 발달됨으로 미숙아의 생존율이 날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미숙아 망막병증의 발병률 역시 높아질 것이 우려된다. 미숙아들은 대부분 폐의 발육이 완전하지 못하므로 장기간 산소 주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