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00

작성일 2014-01-20 첨부파일


0.5mm 샤프심만한 기구로 수술하기

유리체절제술은 망막수술의 가장 기본적인 수술법을 말합니다. 눈 속에 있는 유리처럼 투명한 풀과 같은 물, 유리체를 제거하는 수술이지요. 눈 속에는 벽지처럼 망막이라는 필름이 발라져 있고, 유리체라는 풀 같은 물은 이 벽지와 붙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망막질환은 이 유리체와 관련되어 생깁니다.

예를 들어서 노화로 풀이 물로 녹게 되면 전체적인 풀의 부피가 줄어들게 되고, 망막에 붙어있던 풀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 때 풀이 벽지를 잡아 당겨서 구멍을 만들 수가 있는데 이 구멍으로 눈 속에 있는 물이 들어가면 망막 뒤에 물이 고여서 망막이 벽으로부터 들뜨게 되는 망막박리라는 병이 생깁니다.
그리고 풀이 벽지에서 분리가 될 때 벽지의 표면에 미세한 손상이 생기게 되는데, 이렇게 손상된 부위를 회복시키기 위해 여러 세포들이 모이게 되고, 이 세포들이 비닐과 같은 얇은 막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런 병을 망막앞막이라고 하며, 이 앞막이 점점 오그라들면 벽지도 주름이 생겨서 시력이 저하되는 황반주름이 생깁니다.

또 망막의 중심부인 황반부에 풀이 붙어 있다가 분리될 때 황반부 망막을 잡아 당겨서 구멍을 만들면 황반원공이 되면서 시력이 소실됩니다.
그러므로 유리체를 제거하는 것은 망막을 보호하는 아주 기본적인 치료방법인 셈입니다.

유리체를 제거하기 위해 눈알에 세 개의 기구를 꼽습니다. 보통 검은자(각막)와 흰자(공막)의 경계로부터 흰자쪽으로 3-3.5mm 지점을 뚫습니다. 이 위치는 눈 속으로 보면 섬모체라는 곳인데, 혈관이 거의 없고, 눈 속에서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평면부라고 하는 평편한 곳입니다. 세 개 중에 하나는 물이 들어가는 관이고, 다른 하나는 불빛이고, 다른 하나는 유리체를 잘라서 제거하는 유리체절제기입니다. 유리체를 다 잘라낸 후 유리체절제기 대신 망막의 주름을 펴거나 망막앞에 생긴 막을 제거하기 위해서 미세한 집게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혹시 출혈이 되면 혈관을 지지는 얇은 기구를 넣기도 하고, 망막 전체를 작은 불로 지지는 레이저 기구를 넣기도 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저는 20게이지 기구를 사용했습니다. 20게이지는 직경이 0.9mm입니다. 이 부위는 나중에 봉합해야 새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10년 전에 25게이지 기구들이 나왔습니다. 25게이지는 직경이 0.5mm로 얇은 샤프심 정도의 굵기입니다. 눈 속에 찔렀다가 빼도 새지 않을 정도로 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낭창거려서 정확히 수술을 하기 힘들었습니다.

망막의사들은 이럴 바에야 20게이지가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5년 전부터 23게이지 기구들이 만들어졌습니다. 23게이지는 0.6mm 두께입니다. 전 세계의 망막의사들이 이 기구에 열광을 했습니다. 기구도 제법 딱딱해서 잘 조절할 수 있고, 눈을 찌른 부위도 잘만 찌르면 봉합하지 않고도 새지 않았습니다. 물론 수술 후 찌른 부위에서 새면 좀 귀찮아지기도 했습니다. 그게 싫다면 얇은 실로 얌체 봉합(한 바늘 뜨고 임시로 봉합)을 하면 되었습니다. 얌체 봉합을 고안한 의사는 한국의사였는데, 이것으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망막의사들이 한 번쯤은 수술 후 찌른 부위에서 물이 새는 안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지요. 봉합하면 안 되었냐구요? 당시 23게이지 수술을 하면서 봉합을 하면 왠지 수술을 잘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새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봉합을 하자고 하니까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께 벌거벗었다고 얘기한 꼬마들의 말처럼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입니다. 망막의사들은 23게이지가 정답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한 망막의사가 앞으로 30게이지 기구를 만들 것이라는 계획을 말했습니다. 망막의사들은 조금 웃었습니다. 25게이지가 생각났기 때문이지요.

1년 전부터 망막의사들은 다시 25게이지로 수술을 합니다. 25게이지는 더 얇아서 물이 정말 잘 새지 않습니다. 즉 눈 속에 세 개의 침을 찔러서 수술하고, 침을 쏙 빼도 물이 새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23게이지로 낭창거리는 것에 많이 익숙해져서 25게이지로도 잘 조정할 수 있습니다. 저는 30게이지 기구를 만들겠다고 한 그 망막의사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 망막의사는 지금은 3년 전 세상을 떠난 일본 의사 타노였습니다. 그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30년쯤 앞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25게이지의 낭창거림에 익숙해지면 이제 30게이지는 어떨지 찾게 될 것이니까요. 30게이지 집게와 가위들이 만들어지면 참 볼만할 것 같습니다. 코딱지만한, 맨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그런 휘청거리는 기구들을 가지고 마치 줄 달린 인형을 가지고 놀 듯 수술을 할 것 같으니까요. 그래도 누군가는 그런 기구로 아무도 할 수 없는 수술을 마술을 부리듯 멋지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