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02

작성일 2014-02-10 첨부파일


한 사람을 위한 변명

75세 할아버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키는 자그마하고, 헝클어진 흰 머리에, 얼굴에는 잔주름이 많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 한 눈이 잘 보이지 않아요.”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시력이 좋지는 않았는데, 최근에 완전히 안 보여요.”
눈 검사를 해 보니 망막분지정맥폐쇄라는 병이었습니다. 고혈압으로 치료를 받고 계셨지요.

이 병은 당뇨망막병증 다음으로 실명의 위험이 높은 망막혈관질환입니다. 고혈압, 당뇨병이 주된 원인이고, 그 외에 혈액성분의 이상이 중요한 원인입니다. 혈액성분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혈액응고와 관련된 성분을 말합니다.
혈관에서 출혈이 생기면 지혈을 위해 혈액응고성분들이 작동하여 피떡을 만듭니다. 이 피떡은 출혈부위를 막아서 출혈을 멈추게 하지요. 만약 이 피떡이 떨어져 나와 혈관을 도는 상황이 생겼다면 이것은 비상상황입니다. 심장혈관이나 뇌혈관을 막으면 그야말로 재앙이니까요. 그래서 혈관 속에는 피떡이 떨어져 나오면 이 피떡을 순식간에 녹여서 제거해 버리는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즉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없는 젊은 친구에게서 망막정맥폐쇄가 발생했다면 아마도 이 피떡 제거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겁니다.

“할아버님. 오른쪽 눈 속에 망막정맥이 막혀버린 병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렇죠? 혹시 젊을 때 다친 것과는 관련이 없나요?”
“젊을 때 다치셨어요?”
“네. 55년 전 한국 전쟁 때요. 전쟁 중에 폭탄이 터졌어요. 오른 쪽 얼굴과 눈에 흙과 파편들이 튀었죠. 갑자기 안 보였어요. 총을 쏴야 하는데... 저는 오른쪽 어깨에 총을 올리고 왼쪽 눈으로 조준을 해서 쏘기 시작했어요. 그 때는 아픈 것도 모르고, 오로지 돌격하고 총을 쏘고...”
할아버님은 말을 못 잇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렸습니다. 나는 차마 할아버님을 재촉할 수 없었습니다.
“먼저 검사를 하고 오세요. 눈 상태를 보고 어떻게 치료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사를 망설이며, 무슨 말을 하려는 모습에 분명히 검사비 때문일 것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저는 전공의에게 검사를 그냥 해 드리라고 시켰습니다.

검사 결과를 보니 망막은 오래 전부터 피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피가 통하지 않은 망막을 살리기 위해 임시혈관(신생혈관)들이 생겼는데, 이 임시혈관들은 너무 약해서 잘 터집니다. 지금은 망막에 출혈이 생겨서 더 안 보였던 것이지요. 이럴 때는 피가 통하지 않는 망막 부위를 레이저로 지져서 임시혈관들이 더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할아버님은 제게 고맙다고 하며, 본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마침 마지막 진료라서 충분히 시간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들과 자부는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별거 중이고, 아들은 소식이 없고, 남은 손주들은 할아버지가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으로 살고 있는데 눈이 더 안 보이게 되니까 이 장애가 한국전쟁과 관련이 있다는 증명서를 받아서 원호대상자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그런 내용의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예전부터 몇 번 시도를 했는데 떨어졌다고...

사실 앞에서 설명을 했듯이 망막분지정맥폐쇄의 원인은 외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할아버님은 이 병의 중요한 원인인 고혈압도 있었구요. 사실 제가 할아버님의 눈이 6.25 전쟁 때 생긴 외상이라고 할 만한 눈 속 외상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할아버님 눈 레이저 치료를 그냥 해 드린 후 일주일 후에 오시면 소견서를 써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주일 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어떻게든 할아버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의학적 지식으로는 증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소견서는 A4 용지에 4장이었지요. 이랬습니다. ‘55년 전 할아버지의 전쟁 중 당한 외상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병은 내인성 질환인데다가 고혈압도 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눈을 보셨습니까? 거짓이 있겠습니까? 지금 저는 망막정맥폐쇄 밖에 볼 수 없고, 이 병에 이전 사고가 묻혀버렸지만 55년 전 사고가 분명히 있었고, 그 때문에 오랫동안 시력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있습니다. 생생하게 다친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다시 한 번 상담해서 전쟁 중 사고가 없었을 가능성이 과연 0%인지 다시 재고해 주세요. 우리나라를 구한 분을 이렇게 사시게 놔둘 수 없습니다.’

사실 그 때 떨어지셔서, 그 후 몇 번의 소견서를 다시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내용을 달리하며 긴 제 의학적 아닌 의학적 소견을 써 드렸습니다. 한 번은 그 할아버님이 오셨습니다. 원호로 인정을 받으셔서 치료비와 생활비를 보조 받게 되었다구요. 쪽지를 제 손에 쥐어주고 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쓰인 ‘선생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