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04

작성일 2014-02-25 첨부파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앵프라맹스(inframince) 1

의사는 환자와 친해야 하면서도 친하기 어려운 관계입니다. 특히 외과 의사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수술을 잘 해도 원래대로 몸이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환자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점도 한 몫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수술이 잘되었다고 해도, 환자가 아무리 수술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좀 더 정을 담아서 잘 대해 줄 수는 있지만 친구가 되자고 선뜻 하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다가가려고 해도 절대 붙지 않는, 보이지 않는 간격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 중에 보이지 않는 이런 간격을 설명한 내용이 있습니다. 한 번 볼까요?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사랑을 준다고 합니다. 인간의 삶은 주고 받는 삶입니다. 그런데 주고받는 그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아무리 다가서도 얇은 빈틈이 생깁니다. 전위적인 화가 마르셀 뒤상은 그것을 '앵프라맹스(inframince)'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그 자신이 꾸며낸 말이지요.

프랑스말의 '앵프라(infra)'는 영어의 '인프라스터럭처(infrastructure)'라고 할 때의 ‘인프라(infra)’와 같은 말로 ‘기반이나 하부’를 뜻하는 접두어입니다. 그리고 ‘맹스’는 ‘얇은 것, 마른 것’을 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적외선을 ‘앵프라루즈(infrarouge)’라고 하듯이 ‘앵프라맹스’라고 하면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초박형의 상태’를 뜻하는 말이 됩니다.

그러난 뒤샹 자신은 그 말을 실사가 아니라 형용사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어떤 구체적인 상태라고 하기보다는 작용이나 효과를 나타내는 말로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섬세한 어떤 작용을 뜻하는 암호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비로드 천이 서로 스칠 때 나는 미묘한 소리 같은 것을 그는 앵프라맹스라고 불렀습니다. 시인 김광균의 ‘설야’에서 ‘먼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와 같은 것이 한국적인 앵프라맹스의 정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뒤샹은 그의 노트에서 앵프라맹스를 설명하지 않고 64가지의 시적 이미지를 통해서 그 개념을 암시하려고 했습니다. 그 중 알기 쉬운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 비로드의 바지 : (걷고 있을 때) 바지 가랑이가 스치면서 나는 휘파람 같은 소리는 소리에 의해 표현되는 앵프라맹스의 분리이다. (청각적)
- 담배 연기가 그것을 내뿜은 입과 똑같은 냄새를 지닐 때 두 냄새는 앵프라맹스에 의해서 맺어진다. (후각적)
- (사람이 막 일어선) 의자에 앉을 때의 미지근한 체온이 깔려 있는 것은 앵프라맹스이다.
- 앵프라맹스의 애무 (촉각적)

사람들은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거나 합니다. 나는 타자와 늘 하나가 되고 싶어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고 끌어안습니다. 그럴수록 어절 수 없이 너와 나를 가로막고 있는 틈새를 바라견하고 안타까워하지요. 애타는 절망이 또다시 남에게 다가서려는 욕망을 일으킵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도 부르고 정이라고도 부르고 그리움이라고도 합니다. 보이고 잡히는데도 아주 얇은 앵프라맹스가 그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찢을 수도 녹일 수도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의 일입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 미끄러지고 빠지고 겨우 겨우 걸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감기에 걸려 열이 막 나는데 기다려도 어머니가 오시지 않아 혼자 누워서 앓고 있었지요. 천장의 그림들이 괴물처럼 보이고, 무섭고, 외롭고, 열에 들떠 헛소리까지 할 지경이 되었어요.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머리맡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면서 어머니의 손이 내 이마에 닿았습니다. 나는 그냥 눈을 감은 채로 있었거든요. “네가 이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이제야 왔구나” 하시면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 있는 내 이마를 짚어주셨습니다. 그때였지요. 어머니의 그 차가운 손과 열이 오른 내 뜨거운 이마 사이, 그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에 아주 엷은 막이 느껴지는 겁니다.

냉기와 온기 사이의 아주 얇은 틈, 그게 뒤샹이 말하는 앵프라맹스라는 것을 안 것은 훨씬 뒤 대학에 다니면서였지요. 그런데 뒤샹보다 먼저 나는 어머니의 이마를 짚는 손에서 그것을 느꼈던 겁니다. 인간으로서는 깰 수도 찢을 수도 넘어설 수도 없는 아주 얇디얇은 막이었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이렇게 그리워하는데 어머니가 날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데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앵프라맹스의 단층이 있습니다. 목숨을 건 남녀 사이에도 의리를 따지는 친구지간에도 그것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조금 전 자기와 지금의 자기 사이에도 있지요. 인간으로 태어난 준재는 누구나 그리고 매 순간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었지요. 어렸을 때에는 알 수 없이 그저 눈물을 흘렸을 뿐이지요. 어머니가 오셔서 반가운데도 그날 느꼈던 어머니의 손과 내 이마 사이의 얇은 막이 평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