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08

작성일 2014-03-28 첨부파일



환자와 친해지기 프로젝트 - 2. 환자와 식사하기

환자들과 친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 프로젝트는 불필요한 농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환자와 친해질 마음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볼만 합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인 환자에게 전화번호 주기를 해 보신 분들은 환자와 식사하기가 그 다음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화번호 주기보다는 좀 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것은 세상을 바꿀만한 잠재력을 가진 아주 사소한 일상의 일일 뿐입니다.

의사들은 대부분 의사들끼리 점심식사를 합니다. 대부분 평생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은퇴한 후 인생을 한 번 돌이켜 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아마도 일생 중 점심식사를 이렇게 단조롭게 한 일이야 말로 후회목록 1호가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왕이 혼자서 식사를 하는 것만큼이나 재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점을 찾는다고 해도 주변에 별로 없습니다. 그 메뉴가 그 메뉴이며, 이제는 그 식단들이 너무 익숙해져서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아. 누구라도 오늘 점심을 다른 사람과 먹어봤으면. 점심시간은 의사에게는 운명입니다.

이제 한 번 점심식사를 바꿔봐야겠지요. 메뉴는 같겠지만 같이 먹는 사람이 바뀌면 이것은 완전히 다른 점심시간이 됩니다. 이제 새로운 맛을 느껴야 할 때입니다.

처음 해 보는 시도니까 작전을 조심스럽게 세워봅시다. 먼저 점심 메뉴는 누구나 좋아하는 칼국수나 비빔밥 정도면 무난합니다. 가까운 평소 마음에 찜했던 식당으로 정합니다.

오늘 진료를 오신 분들 중에 점심 식사 시간에 가까울 때 쯤 오신 환자들을 잘 살펴봅시다. 혹시 최근 몸이 많이 호전돼서 당분간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는 분이 계시다면 좋습니다.

의사의 설명을 잘 경청하는 분이라면 더더욱 좋습니다. 연배는 비슷하거나 조금 많아도 좋습니다. 설명을 마치면서 ‘혹시 저랑 점심식사 같이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을 건넵니다.

사실 한 번도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참 쑥스럽겠지만 한 번 해보면 싫지 않은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답변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한 번 하겠습니다.” 또는 “감사합니다. 같이 하시죠.” 그런데 해 보면 두 번째가 많다는데 안심을 하게 됩니다.

사실 처음 시도했는데 거절을 당한다면 괜히 했다고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재미가 없는 법입니다. 그리고 한 번 거절당했다고 그만두면 그 옛날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던 첫사랑의 재탕이 되고 맙니다. 이럴 때일수록 용기를 내야 합니다. 고작 1년 중 한 번의 점심이 지나갔을 뿐입니다. 좋은 점심은 이렇게 힘듭니다.

그러나 환자들은 이런 제안을 매우 놀라하며 허락을 합니다. 이것을 ‘정조(情操)’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아름다움이나 선한 것을 대했을 때에 일어나는 복잡한 감정’을 의미합니다. 허락을 받는다면 이제 새로운 점심식사를 하게 됩니다.

환자와 식사를 하면서 어떤 얘기를 해야 할 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눈 상태가 좋아졌으니 이제 ‘졸업’이라고 하고, 혹시 안 좋은 증상이 생기면 다시 오시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환자가 바통을 받습니다. 집이 어디인지, 직업은 무엇인지, 가족들은 있는지,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되면 좋아하는 취미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감흥(感興)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마음속 깊이 감동받아 일어나는 흥취라는 뜻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반찬이 어떤 맛이었는지 모른 채 시간이 지나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우리 시대의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삼촌과 이모들과 식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세상의 음악가나 미술가를 만날 수 있으며, 소설가와 기술자들을 만날 것입니다. 매일 해야 되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달 또는 한 주일에 한번만 하셔도 충분합니다. 한 달 또는 한 주일의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상은 더 가까워집니다. 의사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게 되어 공공의 적에서 공공의 희망이 됩니다. 타인에게 약간이라도 마음을 오픈하는 것은 엔돌핀을 만들어 내 몸의 면역을 증강시킵니다. 나중에 지난 시간을 회상하게 될 때 이렇게 환자와 점심식사를 한 것은 내 인생에서 잘 한 것 중 손꼽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정조와 감흥은 바로 정감(情感)입니다. 환자와 친해지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세요. 정감 넘치는 의사가 세상에 따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