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12

작성일 2014-05-01 첨부파일


환자의 초대에 응하기 - 1

한 번은 당뇨망막병증이 심해서 두 눈에 출혈이 생긴 환자가 왔습니다. 멀리 화천에서 몇 시간에 걸쳐 오셨을 것을 생각하니 뭐라도 잘 해드리고 싶었으나 마땅한 게 없었습니다. 다행히 눈 속 수술이 잘 되었고, 시력도 어느 생각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1년 정도 지나서 “이제 졸업하셔도 되겠습니다. 춘천에 있는 안과로 다니세요.” 하자 그 분의 아내가 “감사합니다. 언제 한 번 우리 집에 오세요.” 했습니다. 저는 “꼭 한 번 가겠습니다.”라며 시원하게 대답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정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한 동안 잊고 지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물론 환자와 친해지기 프로젝트 1(환자에게 전화번호 주기)을 했던 터라 ‘환자 눈 상태가 나빠져서 온 급한 전화인가보다’ 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뜻밖에 “선생님. 이제 방학이 곧 시작되니까 아이들과 한 번 오세요.” 하는 게 아닙니까. 과연 이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지 잠깐 고민이 되었지만 왠지 거절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꼭 가겠다고 했고, 가족들과 상의해서 날짜를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검색을 해 보니 화천 축제가 있는 주를 알게 되었고, 그 시기에 맞춰 주말을 택했습니다.

딸 둘과 오랜만에 기차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청량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에 도착하니 환자의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우리를 태우고 화천으로 향했습니다. 화천에는 산천어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수상 바이크를 타면서 축제를 구경했습니다. 부인은 다시 우리를 태우고 40분 정도 산길을 달렸습니다. ‘도대체 어디를 가시는 걸까?’ 궁금해 하던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오는 큰 댐이 나왔습니다. 댐 상류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으며 길은 끊겨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댐이 제가 초등학생 때 낸 성금으로 만든 ‘평화의 댐’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웅장한 댐이었습니다.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오래된 헬기와 탱크가 댐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호수 반대편에 빨간 지붕의 아담한 집이 딱 한 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북단 민간인 집이라고 합니다. 부인이 전화를 하자 반대편에서 작은 보트가 통통거리며 오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의 친정아버님이 몰고 오시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차를 세워두고 그 보트를 탔습니다. 보트는 아까 본 그 반대편 집으로 향했습니다. 보트가 없이는 사람의 발이 닿을 수 없는 그곳은 무릉도원이었습니다. 넓은 호수가 보이고, 두 개의 원두막이 세워져 있었으며, 산에서 시원한 물이 작은 골짜기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고양이가 예쁜 척 했고,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가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환자 아저씨, 아내의 친정 부모님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으며,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표시로 강 건너편에 차가 서 있었습니다. 건너편에 차도가 있긴 한데 물이 많아져서 지금은 잠겨있다고 했습니다.

저녁에는 그 강에서 직접 잡은 거라며 ‘배스’찜을 해 주셨습니다. 각종 맛있는 산나물에 밥을 비벼먹었습니다.

밤에는 원두막에서 수박을 쪼개 놓고 모두 모여서 두런거렸습니다. 이 집은 환자 아내의 친정집이었습니다. 부인과 형제자매들은 보트로 학교를 다녔으며,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거의 평생을 여기서 사셨습니다. 딸이 특수차를 조정하던 사위와 결혼을 한 후 사위가 배로 자재를 날라서 집을 새롭게 지었다고 했습니다. 방 하나를 주셔서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두부 만드는 것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습니다. 앞마당의 토종닭 한 마리가 아침상에 올라왔습니다. 식사 후 보트로 잉어 낚시를 했습니다. 그물을 던지자 잉어가 잡혔습니다. 조금 더 상류로 가서 옥수수 따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뭔가를 해도 태양은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점심 식사로 아까 따온 달콤한 옥수수가 올라왔습니다. 세상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조용한 원두막에서 꿀맛 같은 낮잠을 잤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따라서 닭, 강아지, 고양이 그리고 그곳 가족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습니다. 보트로 건너와서 춘천 역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청량리로 오는 기차에서 꿈만 같았던 주말의 추억을 되새겼습니다. 결코 가 보지도, 맛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환자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